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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06. 2020

사귑시다. 까짓꺼!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관계라도.

단절

사귑시다. 까짓꺼!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관계라도......

밋밋해진 관계의 싱거움 때문에, 집착처럼 붙으려는 관계의 걸쭉함 때문에,
한 발짝 물러서 거리두기를 했던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가물가물해지면.
언제나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새로운 관계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밋밋함의 싱거움도 집착 같은 걸쭉한 질퍽거림도 아닌 팔딱거리는 싱싱함으로 또다시 가슴을 설레게 하고 마음을 뜨겁게 한다. 인연의 선상에  거쳐간 사람들과  이런저런 공식으로  사귀고 이별이라는 방정식을 풀고 만남이라는 문제지를 또 받는다.
관계라는 과정 속 답에 늘 머뭇거리고 힘들어했던 문제풀이는 언제나 갈등의 순간에.. 기다림과 거리두기라는 많은 예문들을 제시하고, 화해와 성숙이라는 답을 찾기도 했지만, 이제는
관계 단절이라는  명쾌한 답을 아주 빠른 시간에 찾기도  한다.
힘들었던 관계 문제를 이별 방정식으로 가볍게 풀고 나서도 상처 하나 없이 냉정 해지는 내 마음을 보면서 당황스럽게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문제는 관계의 단절의 과정이다. 조금 더 성숙하고 멋지게 단절하는 법은 적절한 타이밍에서 마음이 빠져나오는 것! 유효기간이 있는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관계의 갈등을 부딪혀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관계에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다. 무언가 늘 찜찜한 관계는 냉정하게 바라보면 숨겨진 마음들이 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추어주고 있었던 게 선명해진다.
마음이 너무나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관계도 있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고 라는 룰이 적용되는 관계도 있다.
하지만 관계 단절의 이유가 선명해지면 마음은 한결 유연하고 냉정해지고 여유로워진다.

박수 칠 때 떠나라 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준다. 때로 관계는 최고의 정점이 되었을 때 삐걱거린다.  즐겁고 행복할 때 틈이 , 생긴다.  그 즐거움의 순간

편해서 여과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어떤 행동이  상대를 상처 입힌다.  견고한 믿음은 흐들린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기를 한다.

그 즐거움 속
긍정 모드 속에서  살고 있는 나는
늘 언제나 좋아요. 를 남발하고 상대를 칭찬하는데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을 때가 있다.
긍정의 피로감일까?  목적의식 있거나 스스로의 결핍일까?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성일까?. 그 완전한 긍정 속에는  나르시시즘의 뿌리가 있을 수도 있다.
 정답 속에 갇혀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긍정의 틀 안에서만 안주하려는 나르시시즘은 스스로를 병들게 한다. 자기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나르시시즘은 다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열려있다. 자신의 사랑만큼 타인의 방식을 수용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관계 맺음에 두려워하지 말자.
이별 방정식을 제대로 풀어가려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귀어보아야 한다.
관계는 사귀는 것  이기도 하지만  역시 배워가는 과정이다.

오늘 아침에는 가끔씩 꺼내보는 책 속에서의 한 구절을 발췌해봅니다.


가깝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란다.
   지금은 멀어서 외롭겠지만 나중에는 외려 고맙다고
   그럴 걸.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울 때쯤에는 너무 가까우면
   서로 다치고 상처를 입게 돼.
   햇볕과 바람이 드나들고 통하려면 사이가 적당하게
   벌어져야 해.
   그래야 마음껏 가지를 벌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수
   있거든"


   마음껏 햇볕을 쬐지 못해, 자유롭게 팔을 벌리지 못해
   그늘지고 외로워진 자리, 사이가 적당하지 않아서
   몸과 마음을 다친 흔적.

   좋으면 가까워지려고 애쓴다. 멀어질까 봐 꼭 붙든다.
   그렇게 가까워지면 가까운 만큼 아프게 되고, 사랑한
   만큼 상처도 입는다.
   감정의 거리만큼 딱 그만큼 기쁘고 그립고 외롭고 버거
   운 것이 사람과의 사이다.
   가을배추 아주심기는 40센티미터, 토마토 옮겨심기는
   50센티미터인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가
   명료하게 정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나에게 말한다. 약간의 거리를 둬야겠다고.
  그러면 서로 편해지겠다고.
  당신은 약간의 거리 저편에 숨는다.
  그 약간이 어느 만큼의 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에 끼어든 약간의 거리감은 이제 여간해서는
  좁혀지기 힘들 것 같다.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적당한 거리를 주겠다고.
  그러면 둘 다 자유로워지고 좋지 않겠느냐고.
  나도 당신도 관계의 불분명한 거리 때문에 속상하고
  다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당신과 거리를 두는 대신 당신에게 거리를 주려
  고 한다.

  거리를 두는 것과 거리를 주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두는 것은 한계를 정하는 일이지만, 주는 것은 자유의
  범위를 늘려주는 일이다.
  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초보자는 대퇴부 고관절이 굳어서 낑낑대도 이마가
  무릎에 닿지 않는다.
  무릎이 이마에게 한계를 둔다.
  내 몸인데도 내게 저만치 거리를 둔다. 숙련자는 온몸의
  관절 마디마디에 거리를 준다.
  늘려서 거리를 내준다.
  그러면 무릎이 배와 이마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신체의 부위들이 서로 닿고 만지고 비비며 친해진다.

  거리를 둔다, 는 건 마음을 단속하는 일이다.
  당신은 더 이상 다가서지 않을 것이고, 상처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관계는 무의미해질 것이고 사랑으로 진화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례하게 대하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당연
  히 그래야 한다.
  그에겐 사이가 없다. 숨을 쉴 수 있는 거리가 없으므로.

  내가 당신에게 거리를 준다, 는 것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서로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권한을 늘려준다는 것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거리를 주면 관계의 너비와 둘레가 확장된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생동하는 자유의 거리를 내주
  겠다.
  그리움의 힘은 믿음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안심해도 좋다.


  당신과 나 사이에 최적의 거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을 안다.
  당신과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서로에게 천국을
  보여줄지 지옥을 보여줄지는 당신과 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신이 봄날을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이유는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재느라 때를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어떤 씨앗이라도 심으라는 뜻이다.

관계의 물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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