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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17. 2020

나의 사랑 레베카

의심

누군가 의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믿어"
그리고 믿음에 주문을 걸고 확신을 가져본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배신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청소년기에 엄마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엄마는 널 믿어" 그때 엄마는 내가 허튼짓 안 하고 공부만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과 바람과 희망을 담아 믿음이라는 말속에다가 나를 가두곤 했었다.
어린 나는 엄마의 믿음을  저버리기 힘들었다.
그래서인가! 믿음이란 단어가 가끔은 너무나 억압처럼 다가온다.
내 입에서도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올 때
 참 무섭게 여겨진다.
믿음은 언제나 의심을 전제로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대로 타인을 움직이고 싶을 때, 타인에게 확신이 없을 때
타인에게 의심이 들 때, 그때 조용히 자신을 채근하는 단어가 바로 믿음이라는 단어이다.
믿음의 밑바닥에 의심이라는 마음이  머리를 쳐들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단어로
늘 포장하는 것이다.
정말 믿는다면 자유롭게 풀어주지
"난 널 믿어"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을 것이다.


여기 끊임없이 증폭되는 의심의 퍼레이드를 이어가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악녀의 화신 같은
이름
레베카!



소설을 읽으면서 며칠을 의심과 믿음의 광기가 폭풍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무엇이 믿음이며 무엇이 우리를 의심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려 하는가!
왜 자유롭지 못하고 의심과 믿음이라는 광기에 휩싸이는가!
믿음이라는 단어도 광기처럼 사람을 파멸시킨다.
의심만큼이나. 위험하게 인간을 갉아먹는다.

별 기대 없었고 사전 지식도 없이 봤던 뮤지컬 레베카!
옥주현이나 알리를 기대했지만 장은아 주연이라는 티켓에 실망감을 안고 공연이 시작됐다.
하지만 장은아의 장 덴버는 최고였다.

주인공 나는 청초한 목소리에 너무나 착하디 착한 케렉터에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몰입감도 없고 개성도 없는 신데렐라에 지쳐 갈 무렵 중반에 드디어
덴버부인이 등장한다.  사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덴버부인의 비중은 약하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주연급이다. 댄버 부인을 위한 댄버 부인의 뮤지컬이다.
그녀의 확신에 찬 몸짓 연기 카리스마적 목소리 광기 어린 절규는 뮤지컬 레베카의 별미이다. 공연이 끝나면 몰입해서 긴장하며 봤던  농축된 감정이 댄버 부인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절정에 치달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이런 감정의 폭발은 처음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따라다니는 레베카의 유령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로  허기를 체우 기도 충분하다.
지금 봐도 전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세련된 영화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레베카는 악녀인가?라는 의문을 감출 수없어.
결국 소설을 펼쳐야만 했다.

주인공 ‘나’는 가난한 고아이고 21살이며 반 호퍼 부인의 비서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반 호퍼 부인을 따라간 여행지 몬테카를로에서 46살의 부유하며 우수에 찬 남자 ‘맥시밀리언 드 윈터’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달달한 데이트를 이어가다가 결국 맥심이 청혼을 함으로써 이어진 사랑이었다. 그런데 행복에 젖어 밝은 결혼 생활을 꿈꾸는 ‘나’에게 그녀를 말동무로 고용했던 ‘반 호퍼’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왜 그가 너랑 결혼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설마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빈 저택의 공허함이 괴로운 나머지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까지 온 거야. 네가 들어오기 전에 자기 입으로 그 얘기를 하더구나. 도저히 혼자서는 거기서 살 수 없다고 말이야…….” -p95
안 그래도 자신이 상상했던 결혼 과정과 달랐던 터라 약간 벙져있던 ‘나’에게 ‘반 호퍼’ 부인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후에 ‘나’의 심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소설에서 나오는 ‘맨덜리’는 죽은 ‘레베카’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자신을 멘델리 저택의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집사 덴버부인은 무섭기조차 하다.
덴버스 부인은 언제나 레베카와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집 안의 규율은 여전히 ‘레베카’의 지시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레베카와 자신을 비교하고 괴로워한다. 특히 맥심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더 깊은 절망으로 빠져든다. ‘나’는 맥심이 여전히 레베카를 사랑하며 그녀를 잊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도회 사건’이 일어나면서 자신은 단지 그녀의 빈자리를 대신할 대용품이며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덴버부인의 말이 맞았다. 모든 면에서 옳았다.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게 던진 말, ‘설마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지? 빈 저택의 공허함이 괴로운 나머지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까지 온 거야’라는 그 말은 반 호퍼 부인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이성적이고 진실한 말이었다. 맥심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나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p351
하지만 사건의 반전은 일어난다.
맥심은 과거 레베카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증오했고 결국 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나에게 고백한다.
맨덜리’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무대라면 ‘댄버스 부인’은 그 긴장감으로 주인공과 독자들을 몰아붙이는 인물이며 ‘레베카’는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레베카는 죽었지만 읽는 내내 살아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댄버스 부인의 말대로 레베카는 아직도 이 집 안에 있다. 서쪽의 침실에, 서재에 , 거실에, 홀 위쪽 발코니에. 정원 곁방에도 아직 레베카의 비옷이 걸려있지 않은가. 정원에, 숲에 , 해변의 돌집에도. 레베카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그 향수 냄새가 계단에 어려 있다. 하인들은 여전히 그 명령에 복종하고 우리는 레베카가 좋아했던 음식을 먹는다. 레베카가 위의 머리빗, 의자 아래의 슬리퍼, 침대 위의 가운……. 레베카는 아직도 맨덜리의 안주인이다. 여전히 드 윈터 부인이다.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과거의 모든 것이 다 보존되어 있는 이곳을 비틀거리며 헤매는 불상한 바보에 불과하다. -p352
레베카는 추리소설이다. 뮤지컬과 영화가 로맨스라는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소설은 심리나  내면의 추리에 가깝다. 끊임없이 나라는 주인공은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남자를 의심하면서 레베카라는 여인을 질투하고 덴버부인에 의해
조종당하는 듯하다. 나약한 인간의 의심은 강자에 의한 의심이고
강자의 조그만 변덕도 약자에게는 상처가 된다.
하물며 귀족이면서 부유하고 매력적이기까지 한 남자와 결혼한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어린 여자는
전부 인의 모든 잔상이 남아있는 집에서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레베카는 단지 이름으로만 존재하는데도 그
거대한 힘에 숨을 쉴 수가 없다.
아름답고 귀족적이며 지적이고.
우아했던 레베카라는 여인은

덴버 부인과 하인들이 이야기 속 완벽한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하지만 남편 막심에게는 많은 남자와 놀아나고 자신을 농락하고. 수치스럽게 했던  희대의 악녀 같은 모습으로.....
무엇이 진실인지. 사기인지 소설 속에서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레베카의 그 감당할 수 없는 일탈 같은 삶이 한 남자에게는
소유할 수 없었기에 저주처럼 느껴졌는지.....
어쩌면 나약한 남자 맥심이 악마였는지... 아내를 죽인 자신의 죄를 변명하기 위해 레베카를 악녀로 만든 건 아닌지... 레베카를 숭배한 나머지 레베카가 죽은 뒤에도 레베카의 영혼을 믿음처럼 알고 살아가는 덴버부인의 광기는 섬뜩하도록 무섭지만 아릅답다.
사랑하나 만 믿고 의심과 확신과 믿음 속을 널뛰기하듯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흔들리는 주인공이야말로 가장 레베카가 증오했던 인물은  아닌지..... 그녀는 과연 앞으로 남편 맥심과 함께 행복할까? 사랑이라는 위험한 놀이에다가 자신을 베팅하기에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확신이 없어 보인다.
소설은 레베카의  상징과도 같았던 맨 델리 대저택이 불타면서 끝난다.
하지만 독자들의 마음에 의심의 작은 불씨를 심어 놓는다.
사랑도
믿음도
모두
의심에서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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