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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23. 2020

모든것이 산산이 무너질때

페마초드론

알고 지내던  선배가 대장암 말기로
투병 중이다.  
수술도 할 수 없어서
시골에서 요양 중인데  이제 1년이
지났다. 가끔씩   안부를 묻곤 하는데
그저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하세요.
라는 얘기밖에 할 수가 없다
희망! 기적이라는 신의 축복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그 희망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희망은  사람들이  붙들고 있어야 할 유일한
비팀 목인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6년 전 큰 사고를 당했다.
 회복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어야만 했다. 정신과 치료 없이 혼자서 오롯이 2년이란  힘든 시간을 보내며
희망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희망에 집착한 나머지  끊임없는 구원의
손길만을 갈망하며 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다.
지금의 내 마음 안에는 늘 희망이란 댠어와 절망은 나란히 한배를 타고 있다.
힘들었던 그때,
희망을 붙들고 지낸 시간 동안  난 절망이란 단어를 무서운 저주처럼 멀리했다.
지금까지 생각해온 습관처럼
중독된 생각의 틀을 하나씩
꺼내 바라보면
그 속에 희망 중독이라는 녀석이  신념처럼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희망과 절망을 너무나 극과 극으로
분리시켜  절대 만날 수 없는 상극으로
만들어버렸다.
말기암 환지들의 통계를 보면
스스로의 마음의 평화를 막고 있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한쪽에는 자신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치료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현실이 있다.
이둘중  치료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생각을   온전하게   받아들였을 때가 가장
편안했다고 한다.
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한밤중에도 불안과 초조함으로
맘이 뒤죽박죽이 되어 깬다고 한다.
희망은 지금 뭔가가 부족한 결핍에서 출발한다.
희망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나
자신의 상태를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
뭔가 나를 도와줄 어떤 것을 막 연하 바라는 마음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  뭔가 부족하다는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 희망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이제는 희망을 포기하는 자세가 완전한 긍정이라고 여겨진다.
기독교에서 주께 모든 걸 맡기세요.
라는것 또한 이런 맥락인지 모르고
해탈하십시오. 또한 이런 맥락인지 모른다.
희망을 포기함으로써  진정한
희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금의 불안정하고 힘든 현실을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은 견디어 나간다면
희망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희망을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지금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다.
선배에게 말하고 싶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단 한순간도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온전히 죽음을 받아들이세요"
그때 진정한 희망이 보일 거예요!
지금 이 순간 안에  희망이 있어요.
지금 행복하세요.
남은 시간 따위는 잊어버리고요.
지금이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있는 완전한 순간이고 즐거움이니까요.
희망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이 책은 티베트 불고 이수자인 페마 초드론이 저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불교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고통의 문턱에서 헐떡일 때 도서관에서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질 때 이 책은 절망을 희망과 같이
 끌어안을 수 있는 책이다.
마음 안애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게 해 준다.
우울한 마음도 두려워하는 마음도 모두 느껴야지만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고통을 받아들였을 때 마음 안에서의 변화를 경험하고 나면
고통과 평온이 같은 얼굴임을 안다.
아침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본다.
"오늘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보았나요?"
"아니요 못 봤는데요 실은 해 뜨는 거  보기에 오늘은 너무 바빴어요."
그러자 린포체는 웃으며 답했다.
"세상에 자기 삶을 못 살 만큼 바쁜 일도 있나요?"
때로는 사람들이 어둠이나 속도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년만년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원한을 품은 것처럼 보인다.
삶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을 없애려면 삶과 얼글을 맞대고 정면으로 부딪혀 보라고 말한다. 방안에 너무 더워 화가 나면 더위와 만나서 그 맹렬함과 괴로움을 느껴보라. 반대로 너무 추워 화가 나면, 추위와 만나서 살을 에는 아픔과 고통을 느껴보라 비가 와서 불안이면 그 축축함과 정면으로 부딪혀 보라. 창문이 바람에 마구 흔들려서 걱정이라면 바람과  그 소란한 소리를 생생하게 경험해 보라. 어떤 일이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거두는 게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추위와 더위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그것들은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영원하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밀물과 썰물은 끊임없이 오가며 낮과
밤은 교차될 것이다.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라
세상의 온갖 고통이 내 마음을
휩쓸고 자나 가도록 내버려 두어라
고통을 모두 자비심으로도 바꿀 수 있다.
두려움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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