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Apr 04. 2020

자연은 코로나로 휴식하고 있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스페인에 거주하는 작가가 얼마 전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읽게 된 소설이다.


노인은 아마존에 정착할 당시 젊은 아내와 함께 였다.
아마존의 개척을 위해서 남미 정부들은 개간을 하면 집과 농지를 준다고 광고한다.
노인은  아내와 함께 오지로 들어와서 농사를 짓지만 , 결국 아내는 척박한 아마존의 자연 앞에 쓰러진다. 아내를 데려간 땅을 저주하며 혼자 남겨진 노인은  그 땅을 떠나려고 했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 준 수아르족 원주민에 의해 50년간 그 땅에서 다시 살아간다. 수아르 원주민의 지혜를 접하고 수렵과 낚시로 버티면서 살아간다. 자연과 공존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야성의 냄새를 맡고 살아가면서  노인은 행복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백인들의 침범으로  노인은 수아르 원주민들의 생활터전에서 독립하게 되고.
문명과 아마존의 경계선 같은 엘 이딜 리오라는 작은 마을로 돌아와 정칙 하며  늙어간다.
그동안 노인은 수아르족과 몇십 년을 지내면서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선거 투표권자 이름을 읽으면서 아직도 천천히 조금씩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이대목부터 이 소설은 뭔가 쫄깃한 느낌의 맛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소설이 시작된다.
노인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그러면서 읽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끼고 신문 잡지 이런 텍스트를 읽기 시작하는 구절에서,
문명의 가장 큰 혜택은 바로 책이라는 사실을 소설 안에서 절감했다. 기하학, 수학. 잘 알지는 못해도 단지 텍스트가 주는 기이한 경험을  오랜 시간 문명을 떠나서 생활했던 노인에게 가장 갈급했던 건 글을 읽는 시간  바로 인간이 사용하는 위로와  언어의 달콤한 맛이었다.  남녀가 만나  불행과 시련을 이겨내고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소설 안에서 노인은 삶의 의미를 맛보았다.
남자들의 욕지거리 같은 대사와 밀름의 살벌한 생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다가 전혀 다른 엉뚱한 매력 속으로 빠지게 하는 장면은 노인이  책을 펼치는 순간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차가운 눈을 소설 속에서 상상하면서
사람들이 그 순백의 눈을 밟고 지나다닌다는 사실에 노인은 화를 낸다. 요기서 한참을 웃었다.

노인은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음 저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 상회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챠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 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가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p44


그때부터 노인은 치과의사에게 책을 빌려 몇 달 동안 읽도 또 읽는다. 노인은 "인간의 언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가를 깨닫고 그 구절의 필요성이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노인은 아마존에서 낮에는 서서 책을 읽고, 밤에는 해먹에 누워서 별을 보면서 꿈을 꾼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정말 평화로운 일상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개간이라는 이름이 아닌 개발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그곳에 백인들이 나타 난다. 광산을 노리는 노다지꾼과 밀렵꾼. 그리고 저우에서 판견한 관리(전형적인 탐관오리). 그들은 자연의 질서를 해친다..
 결국 백인들의 탐욕으로 아마존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다. 백인들이 들어와서 살쾡이 새끼들을 죽여 가죽을 모은다,. 모피코트용으로 팔기 위해서 이다.. 결국 새끼들을 잃은 어미 살쾡이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깨트리고 먼저 선전포고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쾡이로부터 죽을을 당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의 공포는 삶을 위협한다.

이쯤 되면 요즘 코로나와 대치하고 있는 우리들의 공포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자연생태계에  인간의 탐욕이 부른 인과응보인가!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진 않는다.라는 주제를 던진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청새치를 잡는다. 청새치의 살이 상어에게 모두 뜯기고 뼈만남아 돌아왔어도 노인은 마지막 남은 삶의 존엄성을 스스로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증명해 보인다. 인간은 어쩌면 이런 존엄성이 있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존엄성은 인간이 가진 모든 행동양식을 대변한다. 문명의 혜택 여부로 판단할 수가 없다. 아마존이란 열대 밀림 안에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어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안다. 존엄이란 생명의 숭고함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생명을  뺴앗는 방법에도 존중과 숭고함이라는 게 있다.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은 그런 생명의 존엄을 알기에 물고기 한 마리도 그냥 죽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개발이라는 폭력을 문명이란 달콤하고 편리한  사탕으로 유혹한다. 개발에 눈이 멀어 자행하는 폭력 앞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동물과 자연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의 존엄성인지 모른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인디언들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야먄성은 곧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 짐승과 같은 존재로 치부하고 마음껏 살육을  일삼는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마존 또한 선진국의 시각에서는 원주민과 아마존의 짐승 또는 자연 자체가 모두 야만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시각에서 보면 아마존에 침범하여 원주민에게 함부로 대하며 동물을 재미 삼아 죽이고 정글을 파괴하는 그들이 야만인으로 보일 것이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4시간 만에 단숨이 읽게 되는 재미난 야성미 넘치는  소설이다.
또한 환경에 대해 두려움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p. 143
아까부터 무엇인가가 노인에게 그 짐승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그 짐승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노인은 암 살쾡이에게 당한 희생자들을 보았지만 그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은 수아르 족 인디오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터득할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그들의 시각일 수도 있었다.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그때서야 노인은 눈앞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발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 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설사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도 미란다나 플라센시오를 물어 죽인 경우만 봐도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행위였다.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가고 있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백인들의 더러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짐승의 시체를 강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엽총도 함께 집어던진다. 세상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그 금속성 짐승이 물속에 가라앉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 연애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P 180
연애소설 속에는 베네치아가 나온다.
베네치아에 왜 곤돌라가 필요한지 왜 늪 지위에 건설되어있는지 토론을 한다.
노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베네치아에 대해 상상한다.

p. 93
단조롭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늑한 기분에 젖은 채 읽는 소설은 시작부터 마음에 들었다.
<폴은 모험에 따라나선 친구이자 공모자인 사공이 다른 곳을 보는 척하는 동안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했다. 그 사이에 부드러운 방석이 깔린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수로를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노인은 그 부분을 큰소리로 반복해서 읽었다. 곤돌라라는 게 수로를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고 있었다면 보트나 카누 같은 게 분명한데 그 이상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울러 폴이라는 주인공은 친구가 보는 곳에서 여자에게 <뜨겁게> 입을 맞춘 것으로 보아 그다지 좋은 녀석이 아닌 것 같았지만, 딴은 작가가 처음부터 나쁜 인물들을 확실하게 지적해 준 덕분에 복잡한 생각이나 쓸데없는 동정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키스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뜨겁게> 할 수 있지?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코로나가 휩쓸고 간 베네치아는
섬과 섬 사이
관광객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그곳 무수한 다리 밑
수로에는 이름 모를
물고기 때와 학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한다
왜일까?


그동안
인간이 자연을 거슬러
인간의 행복만을 추구한
탓으로 오랜 세월
쫓겨났던..
아니 생존 번식을 위해
스스로 떠났던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문득 생각해봤다...
뭔가 싸~하면서도
희망 같은 메시지!


물고기, 학 대신
곤돌라가 휘젓고
인간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차 올랐던 그곳에 자연의 소리가 그득하다.
지금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떨면서 경제활동을 자제하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때, 지구의 또 다른 생명체들은 오래간만에  조용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바이러스 덕분에....

매거진의 이전글 책이 등 돌릴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