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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pr 14. 2020

무시무시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

고립

무시무시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


"언니야!  이 드라마 보고 나랑 대화 좀 하자"  친한 동생의 권유로 단숨에 정주행 한  드라마.
 커리어 우먼 선우는 완벽한 가정이 있다. 그녀가 노력으로 일구어놓은 가정은  아름 디운 성이었다. 어느 날 그 성이 산산이 무너진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싶은 로맨티시스트 남편은 자신의 두 마음을 사랑이라고 믿는다. 남자의 나르시시즘은 철저히 거짓으로 일관된 생활을 유도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여자와 결혼한 무능한 남편이  어린 부유한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아이까지 임신을 하게 되는데,
이런 사실 만으로도 청천벽력 할 일인데, 부인 몰래 집 담보로 대출을 받고 몰래 비자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에 여자는 복수를 결심한다. 내 인생에 남편만 도려내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겠어!라는 대사를 되뇌면서......
기대할만한 복수극에 피가 끓는 카타르시스가 생겨나면서 드라마를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이 이상하리만치 흥분되는 감정은 지고지순한 여인을 배신한 남편이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그런 기대감이 아니었다.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권선징악의 도덕주의적 안도감도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쇼윈도 부부가 낱낱이 파헤쳐지는 스릴도 아니었다.
이 드라마가 여타 다른 불륜 드라마와 차별되는 것은.
주인공의 철저한 고립이다. 위선과 가식으로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주인공의 행보가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자신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레이스에 인간의 본성이 파헤쳐지는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사회적으로 유능한 의사이며 지고지순하며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그녀 선우는 완벽한 여자였다.
성공한 인생이며  사랑받는 아내. 다정한 엄마. 우정 어린 친구들이 곁에 있고,아끼는 이웃 동생을 둔, 존경받는 의사였다. 하지만 실상은 모두 그녀의 착각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질투하고 그녀의 가식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던 사람이 없었다. 2년 동안 그녀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일에 모두가 동조자였고 그녀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남편의 뒷조사를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철저하게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아니 스스로가 혼자서 완벽한 가정 완벽한 자신의 인생에 도취되어 살았다는 걸 알게 된다.
보통의 불륜 드라마에서는 남편의 배신 뒤에는 늘 든든한 여자의 지원군들이 버티고 있다. 내편인 자식들, 든든하게 나를 지원하는 시부모들, 배신당한 나를 다독이는 친구들.
하지만 이드라마의 반전은 철저한 주인공의 고립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시어머니에게 울면서 하소연 하지만 너의 숨 막히는 완벽한 틈 안에서 내 아들이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다며 며느리를 공격한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위로 따위는 없다.
 고등학생 아들마저도 남편의 불륜을 감싸면서 아빠가 배신한 사람은 엄마이지 내가 아니야! 난 아빠와 살겠어 엄마는 나랑 놀아 준 적도 없이 늘 일만 했잖아! 늘 나랑 다정하게 놀아준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야! 라며 아빠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돼!
라며 주인공을 당황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우리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절망과  욕망의 방향은 어디로 흐를지... 모든 인물들이 그 심리를 따라  생생하게 서로 반응하고 갈등한다.
남편의 불륜 따위는 이제 아무 문제도 아니다 서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생존을 건 싸움이 시작된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지고지순하던 그녀 선우는 사이코처럼 변한다.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내팽개 친다.
내가 느낀 카타르시스는 위선과 가식을 벗어던지는 인물들의 당당한 민낯을 가감 없이 본 까닭 이리라~~
지성을 갖춘 주인공이
이성을 잃어가면서 까지  집착하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점점 파국으로 몰아가면서 지키고 싶은 게 과연 무얼까!
처음에는 가정이라는 성을 버리고
아내라는 자리를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마라는 마지막 자리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결국 그녀 또한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 허수아비에 불과한가!
이제 6회밖에 하지 않았는데... 벌써 드라마가 끝난듯하다.
이쯤 되면 그다음 전개가 궁금해지긴 하는데.... 이제부터는 뭔가 수습의 단계로 접어들지 않을까 싶다. 추락한 인물들을 조금은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연출자의 상냥함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한다.
진정 우리 인생에서 지켜야 할게 무엇인지....

자신을 잃으면서 까지
지금 지키고 있는것 또한 무엇진지.


드라마를 보면서  무건운 마음속에서 밀란 쿤데라가 생각났다.

끝없는 남편의 외도속에서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테레자의 무거움!


아이러니하게도 무거움의

세계에 있던 테레자와 토마스

의 최후에서 그들이 느낀 건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이였다.


무거움 속 가벼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적 조화야말로

삶을 가장 잘 드러낸다.


‘슬픔은 형식이요 행복은 내용이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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