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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y 03. 2020

날 만나서 즐거웠니?

대화


차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지인이 "잘가!"
라는 작별인사 대신 문득 낯선 질문을
했다. "오늘 나랑 만나서 즐거웠니?"  뜬금없는 질문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당황하는 나!  어떤 대답을 해야하나?
 "당근이쥐 그걸 질문이라고 해?"
라고 눈을  흘겨 본다. 이사람 매번 만날때 마다 이런 질문을 하면 난  아마 이사람을  
의심할지 모른다 왜 매번 확인하려고 들지? 어린애도 아니고..., 꼭 즐거워해야만 하나?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고 신나게 떠들면 됐지! 뭐 즐겁지 않으면 안 만나려고 하나?


나와 대화하는 게 좀 즐거웠니?
오늘 날 만나길  잘했지?
이런 질문을  해 본 기억이 있었던가! 만남에 있어 늘 언제나 내가 주체인 나는
오늘 즐거웠니?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면 했지 상대에게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즐겁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난다.
그러기에  "오늘 좋았어"라는 인사는 인사는 늘 느낌표이다.
내가 즐거우면 상대도 즐거울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나는 괜찮은데 넌 어떠니?라는 질문은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꽤나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다.
"네가 괜찮으면 나도 좋아"가 아니라.
내 의사를 먼저 이야기하고 상대에게 묻는다.
누군가와 시간을 보낼 때 , 다양한 주제의식과 대화가 되는 즐거운 상대는
서로 자기 이야기를 자기답게 풀어내는 사람이다.  다름 안에서 사유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차 한잔을 마시고 마주하는 카페 안에서  상대의 이야기 속에 빠져서 경청하다 보면 나를 잊기도 한다.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생각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상대의 이야기 속으로만  몰입하게 될 때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상대의 대화 속으로 상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대를 만난다.
내가 내가 아니 바로 상대가 된다. 내가 나를 느끼듯이 상대를 느낀다.
이런 대회 속으로 깊이 빠질 수 있는 대화의 주제들은 오롯이 너와 나의 이야기 속에서 가능하다. 세상의 가십거리를 가져오더라도 나의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나의 필터가 덧입혀지면 험담은 평론이 되는 것이다.
때로 누구를 만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할 때도  있다.
누군가의 험담이 즐거우려면 좋고싫음의 문제 아니라 다름의 문제를 놓고 우리 스스로를 대비시켜서 동질감을 가져야 한다. 함께 싫어하는 동질감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그 대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동질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관점도  중요하다.
그렇게 떠들어대야지만  뒷 간화 뒤에 오는 공허감을 줄일 수 있고, 나도 너도 서로를 통해서 깊은 존재 감안으로 들어와서 서로가 주체가 되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오늘날 만나서 즐거웠지?라는 질문은 언제나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 되기도 해야 한다.
우리가 독서하고 문화생활을 하는 이유는 사유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서로가 만나서 보내는 시간 안애서 멋진 서로의 주체를 느낄 수 있는 건  사유의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
"오늘 널 만나러 나오는데, 꼭 나를 만나러 가는 것 같더라. 너를 통해서 만나는
나는 오늘 또 어떤 생각들을 뿜어낼지 궁금해 지거든."
"넌 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해 주고,  너와 함께 있으면 내가 지루하지 않아."
나라는 모든 주체가 만나서 함께 서로 자신이 되는 시간.
그런 자기 자신을 내어 보이고 비우는 시간은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상대의 이야기가 즐거워서 빠져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는 나를 빌견하고,
새로운 사유를 끌어내는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대화를 나눈다.


오리! 널 만나서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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