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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y 10. 2020

비루한 인생

인생과 인간


결국은 너와 나의 스토리로 모두 끝날 일들의 기록
너 없이 혼자 남으면 나 혼자만의 상념으로 끝날 일들의 기록.
어느 날 쓰기롤 멈추면 그렇게 잊혀갈 날들의 기록.

아마도 몸이 아프거나 힘들면 제일 먼저 손을 놓는 게 글이겠지....
이까짓 것 써봐야 뭐하나.....
그렇게 글에서 멀어지고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고통과 싸우는 시간 만계 속되다가
죽어가게 될 거야.
눈감는 마지막 순간에 문득 깨닫겠지. 글을 쓰지 않는 순간이나 쓰는 순간이나 고통은 마찬가지고. 시간도 마친가 지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번한 건 내가 아픔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혼자 모든 것들과 등져버린 마음뿐이었다고.....


고통의 순간에 자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위대한  작가이다.
죽음을 직시하면서 쓴 글은  자기 자신이다.
삶이 찬란할때 쓰는 글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소통하기위해 쓰여지지만
나를위해 쓰는  글은 삶의 끝자락에 쓸수 있는 글이다.
마지막순간 까지 나와의 대화가  되풀이 되어야한다.

 이 비루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이 찬란한 생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이렇게 살다가 가는 인생.
마지막 순간에, 느껴지는 것이 가족과 남은이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뿐이라면,
인생은 조금 하찮은 것 같다.
그 애틋한 사랑 따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많은 사랑의 슬픔과 사람, 눈물 속에서 맞이하는 임종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인간 자체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살아오면서 인생을 살았다면 죽음의 때가 가까워 오면 인간이라는 자유로움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흔희들 아프면 기족밖에 없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가족의 사랑이 있어 생의 고비를 넘기고, 불치병을 고칠 수 있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진실일 수 있어도  그 이야기는 가족의 사랑을 희생으로 강요하거나
가족의 사랑에 집착하게 만들어 가족의 헌신을 기대하게 만든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초상집이 된다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맥락이다. 죽음 가까워 오면 인생에서 이제는  졸업하고
인간이라는 모습으로 회귀해야 한다.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차라리 혼자 쓸쓸히 버림받고 길거리에서 쓰러져가는 어느 노숙자의
자유로운  
마지막 순간이 인생의 종지부를 찍고 인간으로 화려 하게 날갯짓을 하는 시간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 모오든 일들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일들이지만
언제나 그 사랑으로부터 자유로 워야 한다.
사랑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인생은 비루하다.
내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가슴 절절하고 애틋하고. 숭고하지만  사랑안에서 자식에게만 매달리며.
인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비루하다.

사랑이라는 직무가 끝난 뒤에는 조용히 내려놓는 것,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냉정해지는 것......
동물들처럼  비루해지지 않는 것...
그래서 인간도 동물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삶과 죽음 사람도 모두  생명의 순환으로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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