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앤딩.

자책

by 토끼

부부의 세계 앤딩이 올라가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예상했던 앤딩 그대로였다.
지선우는 결국 이태오를 파멸시킨다. 계획적으로 한 개인의 인생을 힘가진자와
유리한 패를 쥔 자가 협업해서 알거지로 만든다.
지선 우와 이태오의 장인은 일종의 거래를 한다.
또 한 여자의 불행을 막기 위해 한 남자를 버리는 냉정한 선택이 결정되고.
이태오는 이혼당하면서 여다경의 가족으로부터 쫓겨나고 지선 우와 아들에게조차 외면받으면서 끝이 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게 결여되면서 역시나 원초적 욕망을 여과 없이 쏟아내었다.
그 나머지 뒷수습을 시청자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
한국적 정서와 어긋나지만 누구나 궁지로 몰리면 할 수밖에 없는 행동들을 가감 없이 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파국의 끝판왕을 보는 듯했다.
물 흐르는 대로 상대를 상처 주면 나도 아프니.... 그냥 여기까지... 그래 우리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자... 그렇게 마무리되는 게 우리나라 드라마나 문학이 주는 보편적 정서이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는 자신의 욕망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마지막 회까지 피 튀기는 전쟁을 한다.
앤딩까지 남탓만 하는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는 이태오는 부부의 세계의 진정한 승리자이다.
모든 걸 다 잃고 폐인이 되어 지선우에게 동정표를 얻자 아들이 있는 앞에서 지선우에게 자신을 받아달라고 용서를 구한다. 인간의 예의나 지켜야 할 자존심 따위는 없다. 오로지 본능뿐이다. 자신이 살고자 하는 본능. 하지만 당연하게 외면당하자. 지선 우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차에 뛰어든다. 마지막 관심 유도 작전인지 자포자기 인지 모르지만 보는 내내 처절했다.
죽지도 못하고 경멸의 대상이 되어 마지막 바닥이 드러나는 순간 아들은 한때 자신의 우상 같은 아버지의 실체를 목격하고 절망한다. 그렇게 이태오는 모든 것을 망친다.
지선우에 대한 복수를 그렇게 끝을 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얼마나 찌질한가! 지선우또한 마찮가지다. 할만큼 했으니 아들과 자신의 삶을 살면 될 일인데 왜 이태오를 파멸까지 시키는 카드를 꺼내 든 건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처음부터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기로 작정한 드라마의 원래 의도대로 이야기는 전개되었다. 그리고 결론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진짜 우리들의 민낯이라고.. 이태오 와 지선우. 그리고 불안정한 모든 등장인물들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부부의 세계가 아닌 관계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어느 선까지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가!
부부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파헤치면서 자신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과 , 자식이라는 이름, 우정이라는 이름을 얼마나 왜곡하고, 이기적으로 이용하고 합리화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주었다.
이태오가 마지막으로 한 행동에서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건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인간이 선택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
손가락질받아 마땅하지만 나는 이태오에게 갑정이 입이 되었다.
처음부터 가해 자애서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가해자였지만 자신의 잘못의 본질을 모르고
타인의 감정에 기생해서 기회를 잡으려는 이태오의 본능은 나의 모습에도 투사되었다.
참담한 마음 뒤에는 그런 내 모습이 어른거려서 인지 모른다. 그렇게 몇 시간 뒤 찾아드는 설명되는 안도감. 그렇게 마음이 정리되는 작은 위로가 나를 안심시켰다. 이태오의 파멸이 끝은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물고 뜯고 너덜거려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우리의 모습을
다시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자신의 욕망을 여과 없이 보이고 인간의 품위를 잃는다 해도.
그 과정을 기억한다면 다시 사랑도 인생도 새롭게 시작 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태오는 잘못의 대가를 치렀고 지선 우도 마찬가지였다.
악을 처단하는데. 잘못의 댓가는 어디까지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5월 광주 항쟁의 원흉인 전 씨는 스스로 눈물 한 방울을 흘린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반복되는 실수와 잘못을 거치면서 우리는 타인들의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그 비난으로 우리는 쓰러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진짜 쓰러지는 이유는 스스로의 자책 때문이다. 그 자책 때문에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겨냥한 자책은 시간이 흐른 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찌질함을 끌어 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품격이 빛이 나는 것은 자신의 찌질함을 안고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안고서
시간을 버티면 다시 살아갈 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버티는 시간이 성숙함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한번도 자신을 자책해본 적이 없는
인간이야말로 인간의 품격을 상실한 인간이다.
인간의 품격은 망가져보아야지만 자책해보아야지만 선명하게 드러난다.
부부의 세계는 그래서 막장이지만 불편한 현실앞에서 품격 있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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