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았던 과거 시간의 약간의 기억을 가지고
지금의 힘든 시간을 버틴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도
지금 이 정도는 그때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니
지금의 힘든 시간을 버틴다는 사람들도 있다.
좋았던 기억만이 우리의 현재를 버티게 하는 힘은 아니다.
힘들었던 기억 또한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끔 채찍질한다.
기억이란 그렇게
지금 속에서 재생산되어 새로운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좋았던 기억 때문에 지금이 더 비참할 수도 있고.
힘들었던 시간이 상처로 남아 지금을 괴롭힐 수도 있다.
기억이란 시간이라는 해변가에 잠깐씩 밀려드는 파도처럼 실체가 없지만
언제고 마음먹은 대로 데려 올 수도 있고 원치 않는 순간에도
눈앞에 나타나 서성 거리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살았던 시골집 뒤에는 대나무 숲이 울창했었다.
대나무 숲을 헤치며 친구들과 숨바꼭질 했었고.
대나무 숲에 숨었다가 잠이 들기도 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면 부엉이 울음 소리에와 함께 대나무 숲들이 함께 울어대는 난리통에 두려움으로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아야지만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유년의 든든한 기억의 줄기중 하나 였었던 대나무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였다.
가족 여행길에서 어린 시절을 꺼내보며 식구들과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중년의 내가 아련한 기억 속 어린 시절을 어제처럼 선명하게 이야기하자.
엄마는 내가 7살까지 살았었던 그 집에는 대나무가 없었다고 정색을 한다.
언니들도 "웬 대나무야 아카시아 나무지"
오빠는
침엽수림이 우거 지긴 했지만 대나무라고 할만한 나무는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대나무 숲은 어린 나의 환영 같은 기억의 창조물
내가 기억하는 대나무숲은 어린 나의 환영같은 기억의 창조물이었지만
대나무를 베어버리면 그 많던 추억들이 사라지게 된다.
오늘도 어제처럼 선명한 그 대나무숲은 무수한 시간속에서 굳건하게 나의 어린시절을 겹겹이 보호하면서 함께 동반자처럼 내 기억을 지배했지만
어째서 그 숲이 대나무 숲이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던 어린 시절의 기억 속 그 장소도 언니들과의 기억과 달라져 있었다.
아름다웠던 한때를 기억하는 내 머릿속은 어떤 상상력과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조금씩 기억을
왜곡시키기 기도 했다.
엄마는 나를 매몰차게 매질했던 순간들의
기억들을 삭제하고, 나는 매질이 끝난 뒤 사 주었던 달콤했던 쓔크림빵만을 기억한다.
코 찌질이 떼쟁이 내 모습들은 아빠 엄마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솜사탕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조르면서 길거리에 울고 있던 소녀를 기억하던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어린 나를 나는 이제는 아무도 모른다.
나 조차도 잊어버린 어린 나를 기억하는 어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다.
어린 시절의 대나무 숲은 그 생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내 순수한 기억이란 그 느낌만이 어쩌면
몸속에서 기억하는 가장 살아 있는 순수함인지 모른다.
호호 아줌마라는 tv만화를 보면서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었던 유년의 행복 속에는
된장찌개와 tv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에 늘 왁자지껄했던 집 곳곳에서 맡을 수 있었던 냄새까지도 선명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뇌는 몸 구석구석에 내 기억들을 저장해 놓은 건지 모른다.
눈이 내리던 밤 차갑고 시렸던 느낌의 흔적과, 여름바다의 뜨거움 , 철 지난겨울바다의 쓸쓸함 그런 기억조차도
가슴이 먹먹하게 그리운 시간들이 돼 버렸다.
그때 그 장소에 누구랑 갔었는지... 그때 행복했는지... 하는 기억은 생각이라는 환영이 덧입혀진 결과물이다.
몸은 그 기억의 느낌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별은 기억이 주는 가장 아픈 선물이다.
사랑하던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면 처음에는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다.
아주 좋았던 과거의 시간의 흔적은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나를 버티게 하는 시간으로 변한다.
결국 기억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기억 속에서
꽃길을 걷기도 하고 비포장도로길을 걷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몰리기도 하고
구름 사탕을 먹을 때처럼 행복하기도 한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된 내 소꿉친구들을 몇십 년 만에 만난다고 해도
내 기억 속에 친구들은 아직도 솜털이 뽀송하던 그때의 모습들이 더 정겨울 뿐이다.
그들은 잊히고 있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나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간 속에서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 존재의 근거는 결국 기억의 흔적뿐이다.
기억이 살아있는 한 나는 바로 나일 수 있다.
사람들은
빠져나가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일기를 쓴다.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지난날의 메모도 다 버렸다.
과거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면
잠시 머물기는 하지만 애써 기억 속에서 살지는 않는다.
왜냐면 지금이 내가 존재하는 가장 행복한 까닭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지금 이 순간도 기억을 따라다니고 있다.
기억을 머릿속에서 재창조해내는 주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생각이라는 행위의 순간들 속이다.
너는 자아가 뭐라고 생각해?
라는 질문에 난 늘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자아란 기억의 순간이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 순간의 과정이 자아일 뿐이라고..
하지만 난 늘 새로운 시간들 속에 살고 있다.
새로운 공기를 흡입하고 새로운 생각들과 새로운 일들 속에서 살고 있고
몸속 세포들 조차도 죽고 다시 새롭게 만들어진다.
행복한 기억도 불행한 기억도 모두 사라질 뿐이다.
지금의 나는 언제나 새로운 생각들로 또 대체되고
과거를 붙잡을 필요조차 없다.
꽃길과 비포장도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현재는 기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 느끼고 있는 기억만이 나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