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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y 23. 2020

어머니의 죽음은 거부와 상실의 기억이었다.

죽음

차라리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그때 어머니의 암선고 소식은 꿈같았다.  살아 오면서
나자신의 죽음보다도 더 많이 생각해보았던 것이 가족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믿어지지 않았다.
1년 반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어린아이처럼 자식들의 애정에 기대어서 집착하면서 살았던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앞에서는 의연하고
담담하셨다. 수술도 안받으시겠다고 하셨고  더이상 자식들의 애정도 집착하지 않고 냉정하고 건조하게 일상을 보내셨다. 이른여덟! 살만큼 살았으니  편안하게 돌아가시고 싶다고 하셨다.  대장암 말기선고는 마치 한 인생의 단한줄의 보고서 같았다.
여기서 당신인생은 마무리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을 정리하십시요.
홀몸으로 7남매를 키운 고달픈 삶을 살아온 어머니는
친구도 별로 없었고 사람을 믿지 않는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헌신적인분 이셨다.
1년반의 시간은 나에게  암울했었다. 무얼해도 즐겁지가 않았고 무얼 먹어도  맛이 없었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야 했고 매일매일 그런 기분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나서 느낀건 의외로 어머니의 죽음후의 일상은
기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서 회색빛 감각들이 색채를 되찾고 감정들도 제자리로 하나씩 돌아왔다.
삶의 집착은  어머니보다  오히려 내가 더 심했던것 같았다.수술을 애원해기도 하고, 암에 좋다는 음식을 드시기를 강요했고. 효도랍시고 아픈사람을 많이도 끌고 다녔었다.
하지만 늘 언제나 보고서를 받은 엄마보다 더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은 언제나 마음안에서 부작용을 일으킨다.  미각도 촉각도 감각도 잃는다. 슬픔과 불행을 공부해야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래서 조금은 그강도를 줄일 수 있는거라면   첫번째 수업은 바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될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시간은 슬픔을 올바로 느끼는 시간이 될것이다.
그리고 애도하고 슬퍼하는 시간이 될것이다. 이런 시간들을 충분히 가진다면  우리에게 닥치는 불행을 친구같이 끌어안을 수있다. 우울증에 걸리지않고 그시간을 통과할 수가 있다.
 차라리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엄마를 너무나 사랑해서 였을까? 엄마의 암선고와 함께 붕괴된 나의 세계는 냉정하게 보면 엄마를 향한 내사랑의 강도가 아니었다. 내안의
거부와 상실의 고통이었다.
어릴적 아버지를 잃고 또 엄마마져 잃으면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그 두려움이 어머니의 죽음과 맞물려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때 느꼈던 그기분의 농도와 색채를 기억한다. 아버지의 죽음이후로 드디어 내 억눌린 감정들이 엄마의   부재 이후에 함께 쏟아져 나왔다. 엄마의 임박한 죽음은 내 삶의 단면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마치 엄마로 부터 완전하게 독립한뒤 내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엄마의 죽음이후  일상은 되찾았지만.
끝나도 끝나지 않은 시간은 엄마로 부터  완전하게 독립하지 못한채 살았는지 모른다.  삶에서 힘든순간이 닥치면  거부당할까봐 몸이 오그라든다. 어릴적 아버지를 잃은  트라우마는 내몸 구석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때 느낀 그 감각들을 아직도 고통으로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거부와 상실은 나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고
존재자채로도  내가 나일수 있는 이유에대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그 암울한 색채와 감각을 일상에서  가끔씩  느낄때  한서린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가족이라는 세상속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았던 여자는 말년을 자식들의 애정만을 갈구하면서 살았다.
나의 상실의 아픔은 어머니의 눈물과 닮아 있다.

내 입속에 맛난걸 넣어주여 주린배를 찬물로 달래는 엄마가 아닌 차한잔을 행복하게 마시고 있는 그녀를 더느끼고 싶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그 사랑의 무게보다는
한 여자  존재를 느끼고 싶다.
한여자를 알지 못했으므로 엄마라는 카테고리  밖에서 한번도 바라보지 못했던 어린나는  이제야 성장해서 진짜 어른이 되었다.
서툴게 그녀의 인생을 이해해 본다.
그 사랑의 무게가 이제는 가볍다.
그저 웃고있는 수줍은 미소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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