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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n 16. 2020

세상의 모든 다이애나

넷플렉스 드라마 빨강머리 앤이 시즌 3을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시즌 3은 줄거리가 원작과 다르게 산으로 간다고 많은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나는 산으로 가든 달나라로 가든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든 어디든 따라가서 미로 속으로 빠져들어 갈 마음이 들만큼 스토리의 묵직한 힘이 좋았다. 물론 앤딩은 늘 행복하다.
하지만 인물들이 서로 핥퀴고 상처 입는 과정들이 아프지만 너무나 따뜻했다.
앤은 어찌 보면 조울증 환자인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보육원에서 무시와 경멸을  이 기기 위해 혼자만의 세상에 숨어서 늘 행복한 상상만을 하며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살아왔다.
  타인의 무시를 참으면 더 짓밟힌다는 본능을 터득해서인지 모른다. 앤은 참을성이 부족 하다.
타인의 불행에도 감정이입이 너무 과도하게  된 나머지 폭발한다. 이런 불안정한 앤이 시즌 3 에도 잘 드러난다.


문화적 차이 때문인가. 한국의 아이였다면 묵묵하게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앤은 저항하고 공격한다. 때로 병적으로 지나친 반응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런 앤이 조금은 불편했다.

한국의 평균적 여자들은 어쩌면 모두 앤의 친구 다이애나를 닮았다.
참을 줄 알고 도덕과 사회규범을 따를 줄 알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게 미덕이고.
자신보다 먼저 사회나 가족  타인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  모든 다이애나들.

이런 다이애나는 앤을 보면서 조마조마하고 안도했을 것이다.
"난 성숙한 아이야! 어디를 가더라도 예의 바르고 분위기를 맞추며 모나지 않잖아.  앤은 불쌍해.
어쩌면 저렇게 불안정한 자신을 광고하고 다니는 거지" 라며


지구 어디를 가더라도 관계란 비슷하다.
반응하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너무다 과하다 싶게 반응하는 앤을 보면서 드라마니까 그렇지 라는 생각은 접는다. 모든 스토리는 나와 관련되는 실사판이다. 플롯의 형식만 다를 뿐이다.
 서로 상처주더라도 자유롭게 표현되는 말들이 그런 대본을 쓸 수 있는 자유로움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흑인들을 친구로 삼으면 안 되고 , 인디언들을 가까이해서는 안되고. 친구의 불행에 관여해서는 안되고. 여자는 시집을 가야 하고 , 남자들에게는 순종해야 되는 시대적 상황에
앤은 계속 왜라는 질문을 던지다. 그리고 행동한다.
싸움이 있고 질문이 있는 곳은 언제나 서로의 마음에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다.
빨강머리 앤은 역시 변화의 물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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