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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n 17. 2020

나를 정의하는 낙인 효과

싸움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 사람한테 전달하지 마. 그냥 모른 척해. 너희들 사이에선 다 말해주는 게 우정일지 몰라도 어른들은 안 그래. 모른 척하는 게 의리고 예의야. 괜히 말해주고 그러면 그 사람이 널 피해. 내가 상처받은 거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이선균)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이선균)
그러면 누가 알 때까지 무서울 텐데. 누가 알까? 또 누가 알까?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람은 또 언제 알게 될까? 혹시 벌써 알고 있나? 어쩔 땐 이렇게 평생 불안하게 사느니 그냥 세상 사람들 다 알게 광화문 전광판에 떴으면 좋겠던데. (아이유(이지은))
모른 척해줄게. 너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들어도 모른 척해줄게.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주라. 모른 척해주겠다고. (이선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이다.
 나의 아저씨에는 좋아하는 대사들이 참 많은데. 한동안 이 대사 들이 마음에 아렸던 적이 많았다.

한때 나의 아픔 이기도 했던 3년전 한 관계의 상실은  내 글쓰기의 주요 소재였다.  지금도 여전히 이 이야기를 소재로 쓰곤 한다.

사려깊고 온화하고, 신중하며, 모든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는 속깊은 사람.
나에게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수식어였다.
이꼬리표는
관계속에서 나를 늘 빛나게 해 주었다.
"너 없으면 너무 허전해"
"니가 안끼면 무슨재미니"라는
그말들이 관계속에서  늘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었다.


어쩌면 이런사람이 되려고 무던이도 노력을 했는지모른다.롤 모델을 정해놓고 그 어떤 사람이 되기위해  스스로를 맞추는것!
어쩌면 내 인생모조리를 그렇게 살다 갈 수도 있었다.
나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전까지는......

5년전 함께 일하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다.  선배가 조심스레 5년전 함께 일했던 사람들 소식을 묻는다. 모든사건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을텐데, 뭐가 궁금한걸까?
난  편하게 내 이야기를 했다.
"왜 거길 관두었냐구요? 싸웠어요.사람들이랑...."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아무이야기도 언급하고 싶지않았다.
더이상의 이야기는 이제 하고 싶지않았다. 싸웠다는 한마디면 됐다.
무슨 고상한 미사여구가 필요하며
무슨 구구절절한 합리화가 필요하며
무슨 얽히고 설킨 오해의 스토리가 필요할까!
이 말 한마디가 이제 충분히 나를 대변해 주었다.
"싸웠어요"
상대가 이 말로 어떤 생각을 하건 말건 이젠 중요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이 말만큼 속시원하고 짜릿하고. 나답고, 간결하고, 구질구질하지않고  지금 나를 대변해주는 명확한 단어도 없다.


2년전 내모습이 오버랩되며 지나갔다.
난 그 애를 미워하지않아요. 그 애도 사정이 있겠지요. 서로 오해 한 것 뿐이예요. 누가 누굴  배신했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로가 너무나 민감 했던 것 뿐이예요........참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들을 주절 거렸었다.그때 난  사려깊고 온화하고 신중하고 속깊은 사람이었으니까!
언제나 나는 그런사람이었다는 착각속에서 살았으니까........
하지만 난 이제 그냥 나일 뿐이다.

"그래서 싸웠을 뿐 이다."
이 한마디면 충분  하다.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내모습이 아니라
내마음의 거울에 비춰지는 내모습이 만들어낸 단어에
나는 이제 나라는 사람의 정의를  조금은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아니 정의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늘 변하고  있으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관계들를 건강하게  유지했던건 나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 능력이 모든걸 엉망으로 만들고 난뒤.  나는 그 능력이라는것의 허상을 믿지 않는다.
능력이란 단어 뒤의 실패는  피해자라는  단어와 가해자라는 단어도 함께 따라 다녔다 .

스스로 그런 상처를 대면하기 싫어서
그때  그 친구들을 피했다. 불편해서 피하고 두려워서 피하고
분노해서 피하고 이유는 사람마다 각기 달랐다.  모른척하는 위선이 더 싫었다.  그 모르는척함이  얼마나 날 힘들게 했는지  그 침묵을 피해 도망다녔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침묵이 의미를  이해한다.  누군가 날 손가락질하고 오해해도 침묵 할 수 있는
평온함은
내안의  나약함을 끌어안고 나서야 가능해 졌다.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순간조차도
내가 얼마나 부서지기쉬운  연약한 순간인지 이제는 안다


타인은 나의 반영이고 투사이다.
우리는 모두 이 연약함을 숨기기위해 잊기위해서  어쩌면 밖으로 떠들어대고 있는지 모른다.

모르는척해주고
오해받더라도
침묵해주는거
견딘다는거

정말 강하고 성숙된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어떤 경우인지 제각각 다르고 알수 없으며 그 정의도 각양각색이지만.

관계속에서 그 무게를 견딘다는건
스스로의 연약함을  받아들여 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지만
모두가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속에서
상대를 기다려 주고
버티어 낼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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