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Jun 26. 2020

예술가 친구가 한명도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친구

여름밤 부암동  오래된 정원 같은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우리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자신의 결핍에 대한 이야기와 트라우마 그리고 아직도 깨부수고 싶은 그런 단단한 자신을 부수고 다시 쌓아가는  이야기들은  정제되지 않아도 서로가 듣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늘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레퍼토리가 다른 우리는 지겨울 틈이 없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늘 변화하고 같은 사건에 대한 시선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손님이 뜸해지자. 카페 주인은 모기에게 뜯기어 가면서도 이야기에 몰두하는 우리를 실내로 불러들이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카페 안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마치자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밤이 무르익기에는 이른 10시였다.


 우리는 자연스레 주인장과 이야기를 썩었다.
카페 안은 주인의 다양한, 이야기가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오보에 연주자로 음악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한 카페 아저씨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담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
예술가 친구를 한 명이라도 둔 사람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예술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고. 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제가 예술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에 예술을 하면서 살잖아요?
예술가라는 직업자 체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예술가도 직업이고  밥벌이일 뿐입니다."
아저씨는 나의 이야기를 반박했다.

음악이라는 예술은 삶의 영역과는  다른 영역 입니다. 음악 안에서 언어는 다른 언어입니다.
음악속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찾고 음악의 본질을 알기위해 음악가는 한차원 다른 영역의 사고를 하지요. 이말은 곧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본다는걸 의미하지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 그건 너무나 지나친 우월주의 아닌가요? 모두가 다르게 사물을 보고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요.
음악가도 예술가도 표현하는 서로의 방식이 다를
뿐이죠! 그런 다름이 타인보다 위에 있다는 우월 의식은 예술의 한계를 좁히는 거라고 봐요. 예술의 범위를 넓히면 단지 우리는 각자의 자기표현을 좀 다르게 하면서 모두 예술가로 살고 있다고 봅니다!" 아저씨는 나의 끊질긴 반론을 즐기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끊질기게 설득했지만 단지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우리는  다른 이야기들을 즐기고 있었다.  아저씨는 유쾌하고 즐거운 분이셨다. 각자 우리가 정의하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맘껏 떠들고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단톡 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보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예술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는가?"

내가 정의 하는 예술은 음악, 그림 , 문학 .무용. 영화 이런 창작 활동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해야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어떤 한 분야에 미쳐서 자신을 오롯이 그 분야에 투영해서 살고 있는 그런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을 테고.....
자기 목소리를 조금은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이야기하는 사람 일 수도 있을 테고,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소통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아는 예술가 친구는 생활형 예술인이라서 늘 먹고사는 걱정을 입에 달고 산다.
예술가라면 뭔가 경제적인 관념 너머의 삶을 추구하면서 살 것 같지만 돈이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라는 이름은 예술도 돈으로 사고파는 가치 수단의 일부 일 뿐이다. 정말 돈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흔치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나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진다.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에술가는 소통한다.
 타인의 삶 속 세상을  그려 내려 다르게 소통하기 위해서 남들이 가지 않은 험한 길을 선택한 사람. 타인을 위해 대신 싸워 줄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
타인들을 위해 대신 울어 주는 사람.  타인들이 보지 않는 세상 너머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
타인의 삶 속 위로가 되기 위해  자신을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 가 자신 만의 목소리로 타인들을 향해 존재하는 사람.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 그래서 늘 자기 자신 인 사람.

그런 예술가가 곁에 있다면 좀 행복할 것 같기는 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비슷하게 라도 흉내 내 보고 살고 싶어 질 것 같기는 같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좇지는 않을 것 같다.
아름다움이 무언지 생각하면서 사유하는 삶을 살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예술가  친구는 나에게 없다.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이미 넘친다.

그들과 사적인 친구가 된 순간부터
그들은 단지 질한 친구일 뿐이다.

그들의 예술은 삶과 분리되어서  있었기에 훨씬 나에게 설득력이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직업으로써의 예술가가 존재할 뿐이다.

삶이 예술  자체인 사람은 없다.
사적인  삶은 그냥 질한 거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예술의 세계가 위대할 뿐이다.

예술가는 그냥 예술가 일 때 아름답다.
친구가 되지 않아도
이미 예술 그 자체로써
이미 나와 소통하고 있다면
예술가와 난 이미 친구인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림이 설레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