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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n 30. 2020

충고하는 남자

단절

에곤 쉴레 그림.


관계의 단막극.(여자들편)


" 우리 넷이서 만나서 얘기를 좀 해 보는 건 어떨까!
태연 씨는 자신의 그런 점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좋은 점 정말 많잖아.  어디 가서 이런 친구를 만나!
밥 잘 사지. 똑똑하지. 잘생겼지. 그리고 무엇보다
리 셋을  좋아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씩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한 번도 자신의 이런 점을  진심으로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은주는  그에 대해 처음에는 비꼬듯이 이야기했지만,
이야기를 더 해 갈수록 진심 어린 애정이 안타까움으로 변해 갔다.

우리는 지금 한 사람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대로 한 사람을 무관심으로 돌리고 모른 척해야 하는지, 관계 속에서 배제해야 하는지...
포기해야 하는지...  한번쯤은 기회를 주어 한 건 아닌지... 많은 질문들이 오갔지만.
나는  선뜻 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정민이가 결론을 내리듯이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은주야 사람은 안 변해. 십이 넘으면 이제 완성된 인격체야. 자신이 지적질이나 하고.
 마마보이 같은 떼쟁이인 줄 왜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살아온 거야. 앞으로도 그렇고.
지적질하고 자기 얘기가 옳다고 하면서 늘 대화의 중심에 자신을 톱으로 끼워 넣으려는 사람은 우리 모임 자체의 본질을 흐리잖아. 우린 중제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필요해. 남에 얘기는 듣는 척만 하고  태연 씨는 자기 이론이 맞다고 우리를 설득시키려고만 하잖아. 힐링이 아니라. 태연 씨가 끼면 논쟁이 돼버리잖아. 우리가 논쟁을 하려고 만나는 건 아니잖아!
사람은 절대 안 변해. 이야기해봐야 헛수고야!"

나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혹시 그런 생각 안 해 봤니? 우리가 좀 이상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는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했어. 그 말 인즉 그들과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어. 그는 우리와 안 맞는 것뿐이야. 다른 사람들 틈에서는  인정받는  사람 일 수도 있어.
우리랑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파헤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가 상처 입을 수도 있잖아. 그냥 이렇게 거리두기 하면서 자연스레 잊혀 가기를 기다리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는 이야기를 꺼내놓고는 속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싶었다.
상처를 입은 그를 생각하니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늘 자신을 강철 멘탈 이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우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가 언제 지적질을 했다고 그러세요. 그냥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죠.  그러니까.
저한테 좀  잘해줘 봐요.  저 생각보다 배려 있는  사람이에요.  지적질했다면 앞으로 안 그럴게요. 저 미워하지 마세요.  제 말만 안 하고 이야기기도 잘 들을 께요."

그리고 또 늘 언제나처럼 지적질을 하고 자기의 생각을 밀어 붙 힐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인식만 하고 있어도  고정불변의 인간이라는  틀에서 조금은 방향만이라도 전환될 것이다.

우리는 그가 우리 입맛에 맞는 그런 친구 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라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겉돌지 않고 함께 자신의 결핍을 내보이고 솔직하게 관계라는 틀 안에서 자신이 힐링하는 시간을 함께 누리기를 배랬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착각을 한 것이 있었다. 우리가 그를 우리의 모임 안으로 들인 건
그가 겹핍투성이고 찌질해서였다. 우리와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우리보다 대단한 존재이고. 우리를 케어해 줄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착각했다. 우리가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이고 질한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 내며 허당의 모습을 보이니까!
우리를 너무나 손쉽게 여기고 자신이 우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쉬운 존재라는 착각을 한 것이었다. 그는  질함을 아닌 척했고. 자신의 결핍을 감추었다. 우리는 점점 솔직해져 가는데....
자신은 점점 포장지를 덧 씌우고 우리에게 충고하려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들었다.
관계 안에서는 자신을 솔직하게 내어 보이지 않으면 가식이 드러 난다.
그는 숨길 수 있다고 착각했다.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면 자신이 나약해진다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살았다.  양육강식의 세계를 살아온 전형적인 가부장 제도 안의 남자였다. 우리가 함께 모임을 제안했을 때 그는 신나서 들떠 있었다.
동호회 커뮤니티에서 우리는 태연씨를 처음 만났다. 4년 전 사고로 딸을 잃고 상실의 아픔을 안고 힘들어하는 태연 씨를 우리 셋은 연민으로 보듬어 주고 싶었다. 태연 씨에게는 아직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고 우리들의 결핍도 치유하자는 의미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넷이 만나면서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보자고 만든 모임이었다.
대화는 서로가 솔직해야 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아닌  불완전한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라는 틀을 깨부수고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견고하게 자신이라는 기존의 성안에서 오만하게 우리를 재단하려 들었다.

그는 우리 와의 관계를 사회생활의 연장 선상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의  오류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와의 관계 설정 자체를 잘못한 것이었다.

관계 안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변형시키지 않고서는 함께 성숙할 수  없다.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거 어쩌면 그는 그것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자신의  알을 깨부수지 않으면 솔직해진다는 거  어쩌면 그 의미 자체도 모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을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해 왔다. 솔직하다는 건 책임 질 일만 생기고 남에게 책 잡히는 거리만 주기 때문에. 숨겨야 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는 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강한 척. 아닌 척. 남자인 척. 척척 하느라 그것이 진짜 자기 모습인 줄  알았지만 우리들 눈에는 그의 결핍이 투시도처럼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부정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흉내를 내고 있었다. 모임 안에서 모노드라마를 찍는 순간조차도 그는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착가 속에 빠져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들의 모든 이야기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부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태연 씨 문자 , 전화를 그냥 그냥 계속 씹기만 할 거야?
어쩔 거야? "
우리는 침묵했다.
그때  정민이 말했다.
"난 말이야 태연 씨가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거 인정해.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인정해.
 지적질하는 거 그럴만하다고 봐!
우리가 얼마나 답답해 보이겠어. 우리 셋은 좀 맹하잖아! 현실감각도 없고, 나약하고, 그리고 태연 씨 말처럼 이용당하기 딱 좋은 그런 여자들이라는 것도 인정해.
근데  난 태연의 그 똑똑함이 지루해!
지루해서 미치겠어,  난 그 지루함 때문에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우리 그냥 태연 씨 버리자.  난 말이야 똑똑한 지적질보다 참을 수 없는 건 바로 그  지루함이야!"

우리는 만장일치로 이야기를  끝냈다.
우리는  그 지루함을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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