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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n 25. 2020

기다림이 설레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기다림


나이가 들면서 조금 슬픈 건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면서. 현실에 만족하는 습관이 길들여지고. 무언가 기다리는 것들이 자꾸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자율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기다리는 일이 늘 전부였다.
크리스마스가 끝남과 동시에 1년이나 남은 성탄절을  또  기다리고. 소풍날을 기다리고 빨리 어른이 될 날을 기다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고, 새 학기를 기다리고 늘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그 기다림으로 하루하루가 즐거웠었다.  
나이  머금은  기다림이란 늙음이라는 시간에 자꾸만 가까워지는 시간이  당겨짐을 느낀다.
성탄절이 또 오면  한 살 더 먹게 되고  손꼽아기디라던 여행을 하고 나면  또 언제 이런 즐거움이 오나! 싶고  즐거운 일들을 기다리면 그 시간이 더 빨리 오는 것 같고, 기다리면 늘 기대했던 것보다 틀어져서 즐거움이 줄어드는 걸 느끼고 만다.
막상 기다리고 기다려서 찾아온 그 순간이 되면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가버리기도 하는
기다림의 배반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기다리는 일이 점점 줄어들다가 이제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게 본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나를 비켜간 기다림의 즐거움을 다시 어린 시절의 그것으로 돌려놓을 수 없더라도 설렘을 안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백들을 좀 차곡차곡 넓히고 싶을 때   그 기다림의 설렘을 부활시키는 마법.
 상냥하고 귀여운 빨강머리 앤을 마음속에 데려와 본다.
앤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전요 뭔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즐거움의 절반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즐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란 틀림없이 나만의 것이니깐요."
  이 말은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표현이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아주 멋진 의미를 담고 있다.
 기다림이라는 미래를 지금과  현재를 동시애 즐길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앤은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다.  기다림의 배반에도 실망하지 않는다.
 실망을 또 다른 기다림으로 바꾸고. 다시 현재를 즐기는 상상을 시작을 할 줄 안다.
앤에게 상상이란 기다림과 현재를 동시에 즐기는 아주 창조적인 시간이다.
어른들은 상상이란  현실적이지 못해서 허왕된 생각으로 우리의 뇌에 바람만 잔뜩 집어넣는 다고 생각 하지만 상상이란 뇌가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색채를 만들어주는 장조적이 행위이다.
상상은 우리의 시간을 예술가의 시간으로 바꾸어 준다. 현실을 잊게 해 주는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버티게 해 주는 자신의 일부를 만들어준다.
이러한 앤의 상상은 실수를 하더라도 당당하게 부딪히는 용기를 선믈했다.
앤은 늘 언제나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고아라고 자신을 멸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참지 않는다. 천박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자신 안에서 외치고 있는 이야기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앤의 상상력은 늘 언제나 앤이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만드는데 쓰인다.
그 상상력이 자신을 보호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타인들을 공감하는데 쓰인다.
앤은 그래서 기다림의 허무 뒤에도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상상력으로 언제나 스스로 창조한다. 이런 앤과 함께 있다면 그 누구라도 앤의 세계에 물들지 않을 수가 없다.
앤은 고아원에서 드디어 독립해서
자신을 입양해 줄 나이 든 남매를 기차역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매슈는 일손을 도울 사내아이를 기차역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사내아이는 없고.
기차역에는 자신과 빨강머리 여자애 단둘뿐이다.
빨강머리 여자애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릴
틈도 없이 달려오는 빨강머리 여자애.
여쟈애가 무서운 숫기 없는 매슈 아저씨는 당황한다.
앤은 매슈의 손을 잡고 인사한다.
만나서 정말 기뻐요. 혹시 저를 데리러 오시지 않는 건가 겁이 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온갖 상상을 다하고 있었거든요. "
앤은 하얀 벚나무를 가리키면서.
"아저씨가 안 오시면 저기 길모퉁이 있는 커다란 벚나무에 올라가서 거기서 밤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건 전혀 무섭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는 앤을  어떻게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었을까!
앤과 마릴라 매슈, 이렇게 이들 가족의 탄생은
실수에 의해서 시작된다.
여자애라면 겁부터 먹었던 매슈 아저씨가 앤을 데리고 에 이번 니 초록색 집으로 가는 동안.
앤은 행복에  들떠서 폭풍 수다를 쏟아낸다.
기쁨의 언덕이니, 꿈의 하얀 다리니 동화 같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앤에게
매슈는 마치 마법처럼 어린 여자애 공포증에서 풀려난다.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늘 지나쳤던 다리가 기쁨의 언덕이라는 즐거움이었다니....
이 아름다운 길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앤과 함께 라면....
일손이 필요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그가 이제는  한 아이의 인생에 도움을 즐 수도 있다는 자신감과  존재감을 갖는다.  이 아이에게 나라는 존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사랑의 불씨를 심어준다.
빨강머리 앤의  오랜 기다림은 이렇게 기다림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를 생존하던 매슈와 고지식하고 완고한 마릴라 아주머니의 세계를 바꾸어 놓는다.
그들에는  이제 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이 기다림이라는  선물이 된다.
나에게도 앤은 그런 존재의 시간 같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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