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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l 11. 2020

망가지는 하루

괜찮다.

망가지는 하루도 괜찮다.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요. 전 그랬던 거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이 동네도 망가진 거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거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권나라)
나의 아저씨 중에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중 이 사는 위로와 치유의 화법으로 주고받는 대사이다.

잘 나가던 영화감독이 망하고 나서 청소부가 되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계단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예전의  신인 여배우를 만난다.
해필  가장 잘 나가던 시절  연기가 안된다고  냉정하게 잘라낸 여배우를 만난다.
여자는 여전히 지금의  배우 생활도  바닥을 치고 있다.
빛나던 천재의 몰락에 행복해하는 여자는
감독님이 망해서 속이 시원하다고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여자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는   청소부가 된 남자가 불행해 보이지 않다는 걸 느낀다.

내가 상상했던 10년 후의 모습 20년 후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는데....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세상이 말하는 주류에 끼지도 못하고 재능은 그저 평범의 범주에서 늘 벗어나지를 못해서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화려했던 인생의 기억이 있어야지 비교 대상이 있을 텐데...  젊은 날의 꿈만 화려했던 것 같다.  한 번도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이 없었는데도. 늘  망가져서 살고 있다는 패배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건 아마도 젊은 날 내 꿈의 기대치가 아주 높게 창공에  빛나고 있어서 인지 모른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밥벌이에  바빠서 꿈도 이루지 못하고.
내 직품하나 없이 늙어 버렸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진짜로 망가지고 말았다.  건강을 잃고   관계는 단절되고. 끝없는 추락으로 떨어졌다.

한번 제대로 망가져본 이후로.
지금 글이라는 걸 쓰면서 , 성공을 목표로 하던  내가 바라던 꿈은 아니지만 나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지금  나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알게 되었다.
망가져봐야 아는 게 인생이구나!
내가 나의 작품이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망가질까 봐 전전 긍긍하면서 세상의 틀속에서 꼭두각시처럼 살아왔는데...
어떻게 창작이라는 게 나올 수가 있었겠는가!
평생을 앵무새처럼  남의 단어만 흉내 내고 새장 속에  갇혀 살고 있었는데.

망가져서 사람들로부터 왕따도 당해보고. 외면도 당해보고.
그렇게 바닥을 쳐보고 나니  망가지고 난 후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망가진 인생이    꼭  불행하지는 않는구나!
망가짐 안에는 어둠만 있는 게 아니라.  진짜 빛을 찾아내는 방법이 숨겨져 있었구나.
망가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어둠이 빛보다 더 강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낙오자들끼리 모여도 즐거울 수가 있구나!
낙오자라는 건 나 스스로가 붙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었구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은 망가지는 이야기도 멋지게 쓸 수 있구나!
어둠속에 있어도 빛나 보이는 구나!
그래서 망가지는 이야기가 더  더 재미있을 수 있구나!
 망가진 다는 건 자유롭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기도 하는구나?

아직도 더 망가질 일만  남아있는  인생이라고 해도
위안을 받는다. 다른 색채의 빛을 찾아낼 수 있는 설렘으로
또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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