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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l 13. 2020

한 땀 한 땀

그림

책을  펼친다.

휴일 오후. 가벼운 읽을 거리를 찾다가 스마트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다.
그림 에세이이라기보다는  자기 작품  해설집 같은 책이다.

27년간  직장인으로 살던 작가가 오십이 넘어서 그림에 도전해서 전시회를 열고 그림으로써 밥벌이를 하면서 살고 있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리면서 더 좋아하게 됐다는 작가는  
나무가 보여서 그리기 시작했고,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속에 오래 머물러 그  시간을 그림 속에 담았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의 설렘과 마음 한구석  쉼표 같은 걸 찍을 수 있게 하는 휴식을 준다.

그녀의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한 땀 한 땀이 생각난다. 정말 한 땀 한 땀이다.
흰 도화지가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건물이 보이고  한 땀, 한 땀,
그려나간 흔적들. 그림이 아니라. 그녀의 시간의 흔적들.
 인내하면서 지나온 시간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 조차 그렇게 하나의 선으로 겹쳐지고
또, 겹쳐지면서 몰입해서 쏟아부은 시간의 끝에 완성되는 하나의 인생 같은 그림 한점.
마치 내 인생의 이야기들을 한 점의 그림 속에다가 응축해서 담으려는 의지가 였보이는 듯했다.
마음속에 모든 것을 비우지 않으면 이런 그림은 나올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한 땀 한 땀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루를 쪼개어 쓰는 시간 속에서  모자라는 여가시간을  쓰다 보니.
 이런 여백의 고문 같은 긴 작업이 예상되는 그림을 그린 다는 건 시간 낭비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다.

한 시간 안에 글과 그림을   끝내고 싶은 데드라인을 정해놓고서 10분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  아침시간 나에게 주어진 한 시간 남짓의 시간에 글과 그림을 완성한다는
약속에  짓눌려서 그림은 직관으로 그려내는 작업에 가까웠기에  긴 시간 매달리는 그림을 그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마음에 담고 있는 이야기 중 그림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여유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긴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용해야 한다.
긴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용하다는 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가 머릿속에서 사랑스럽게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건
내 시간의 포기가 아니라 나무에게 나를 빼앗기는 시간과도 같은 것이다.

시간도 잊을 만큼 내가 포기하고 있는 걸 잊을 만큼 그 시간이 좋아서 일 것이다.

전시회를 보러 간다는 것은 그렇게 화가가 좋아했던 내면의 시간과 마주하는 일 일 것이다.

화가와 내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물과 나 단둘만이  남게 되는 시간 속에 있다.
책 속의 그림 안에서 긴 시간 머물면서
나의 시간 속 그림에 대한 편견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림에 구속된 글
 글에  구속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글과 그림이 이제는 어떤 시간을 포기하는 순간이 아니라

좋아하는 순간 속에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손 끝에서 함께 춤추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 본다.

한 땀 한 땀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 내  마음을 저축하는 여유로 그려지고 싶다.
나도 이런 여유를  마음으로  허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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