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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l 30. 2020

나의 세상에 적응하기

그 길.

변해버린 나의 세상에서 적응하기.

학창 시절 늘 언제나 공부를 잘하고 싶게 만드는 선생님이 있었다.
가끔씩  과목 외에 딴 길로 세는 선생님의 수업에는 언제나 어떤 분야에 성공한 인물의  모험담이 있었고, 그 흥미진진한 위인전  스토리는 동기부여를 안겨주어서  그 모험담 속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그 동기부여에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나의 길을 가야 한다거나,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믿지 마라. 거나,  공부를 하는데  늘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일단은  순종과 성실이 기본이고 학교를 마쳐야지만 인간 구실을 한다는 맹목적 믿음이 늘 언제나 기본 전제로 깔려 있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의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 잠깐 마음을  책상 앞에 붙들어 놓지만 친구들과 놀고 tv 보면서 놀다 보면 공부는  금세 또 시들해졌다.
좋아하는 것도 이것저것 금방 싫증을 내고 1년 넘게 지속되는 게 없었다.
뭐든 하고 싶었고, 뭐든 할 수 있었다.  나의 세계에는 무안한 길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하지만 무엇하나 선택하는 건 힘들었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이거나. 시키는 길로 가야 했다. 뭐든 할 수도 있었고 뭐든 하고 싶었지만 나의 세계라고 할 만 곳에서 나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그저 나에게 주어지는 길을 걸어서 묵묵히 지금 까지 살아왔다.
나의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들조차도 그냥 떠밀렸던 것이지 내것은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는 기술은 늘어나는데   남들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기술이었다.
나로서  살아가는 기술은 백치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어떤 힘든 일을 겪으면 알게 된다.

내가 존재했던 세계였는지 아닌지.....
그렇게  절망의 순간에 부재했던 나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새롭게 나를 만나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운이 좋아  그런 상황을 벗어나서 다시 예전처럼 살기도 한다.

나의 부재였던 경험은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와 손을잡았다.
나로서 살아가는 기술은 그렇게 일종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된다.
처음 그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생활에는 써먹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점점 고립돼 버리는  결과를 안긴다. 하지만 그 고립이  선명한 나를 드러나게 만들어 주게 된다.
그렇게 나에게 익숙해져 가는 시간이 지나면.
변해버린 나의 세계는 이제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다.
나로서 살아가는 그 기술은 아주 복잡해서, 하나씩 알아가면  갈수록 비워야지만 채울 수가 있다. 하지만  채우는 것 보다 비우는 게 더 힘든 법.
그렇개 비우고 비우다 보면  눈앞에 펼쳐진 수천 갈레의 길들 사이로
너무나 심플해지는  한 갈래의 길이 보인다.
바로 죽음이라는 길이다.
 길은  곧 행복의 길이 되기도 하고.
평온의 길이 되기도 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는 길이 되기도 한다.

죽음의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은,

 나이듬이 아니다.
나로서 살아가는 기술을 닦으면

선명하게 보이는 길이다.

그 길 앞에 서면 언제나 나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남의 시선을 거두어내어도 당당한 내 모습만 보인다.

매 순간이 찬란한 나의 시간이 보인다.

우리가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는
모든 길은
그 앞에 서서 나의 목소리와 만나야지만
갈 수 있었다.

 진짜 그 길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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