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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ug 05. 2020

변화하는 관계들

이성적인 친구



설득의 3요소가 있다. 한 사람의 인품 , 이성, 감성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호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득에 있어 제일 중요한 요소는 상대의 마음의 상태를 먼저 읽는 것이다. 이성, 감성이 관여하기 전 자신의 모든 오감을 동원해서 내가 설득하고 충고하려는 사람의 심리상태나  그 사람의 내면 심지어는 취향까지 읽을 수 있다면 적절한 언어를 찾아서 이성적으로 근하고 감성적으로 공감하고 때로 말보다는 침묵하여  경청했을 때 상대에게 더 큰 호감을 얻을 수 있을 때도 있다.


 사람을 읽는 마음! 이 마음을 인품이라고 한다.


 이성과 감성은 대화중에도 금방  드러나지만 인품은 오랜 시간 함께 있어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인품의 정의도 내리기 힘들다. 인품이란
단지 선하다. 배려있다.라는 영역이 아니라, 좀 더 고유한 그 사람의 깊은 내면 일 것이다.
감성 지성보다 더 높은 영역 즉 영성과도 관련된 부분인지 모른다.

오늘 내가 6개월 만에  만난 A는 이성적으로 똑 부러지는  성격의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변하는 건지
지난 1년 사이 그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당당하고 까칠하면서도 냉정했던 그녀가
, 자신의 결핍과 불안한 내면을  나에게 조금씩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과거 내가 알던 그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 대해 과거의 생각에 대한 기억의 지배를 받으며 그 사람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사람은 이런 성향이 있다 라고 규정하고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람에 대한 인식 대부분은 나와  타인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인 인식일 뿐!
객관적인 인식이 되지 못한다.
관계는  상대적이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전혀 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왜 저 사람만 만나면 난 주눅이 드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잔소리꾼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나라는 독립된 사람은 일관성이 있다고 여겨지지만
모든 사람을 똑같이 일관성 있게 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타인들 또한 그런 인식론으로 나를 대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인식하는 기준은 나의 관점일 뿐이고 나의 정의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월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는 나의 시각에 맞추어서 사람을 인식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상대가 변할 수도 내가 변할 수도 있다.


 그 선상에서 나의 오랜 벗인 A를 과거의 기억에서 소환해 보았다.
그녀는 이성이 강했고 난 감성이 늘 앞섰다.  매사에 정확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다름에 서로 끌렸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갈수록 그녀는  이성적 논리로  나의 감성을 비꼬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녀는 좀 "이성적으로 구체적으로 얘기 좀 할 수 없니 넌 늘 애 메모호해!  그러니까 네가 사람들한테
오해를 사고  우유부단해서  당하는 거야!" 하며 돌직구를 날라곤 했다.
그녀의 이성적 논리를 반박할 만한 능력이 없던 나는 조용히 그녀의 말들을 경청했고 나의 오류를 수정할 방법을 찾곤 했지만, 그녀를 만나고 헤어지면 마음이 늘 찜찜했다. 뭔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답답함!
늘 내 마음에 흠집이 난 체  집으로  오곤 했다.  그녀는 섬세하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가끔은 그녀의 이성이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거침없는 성격이 부담스러워질 무렵이면 그녀와의 거리를 두고 그렇게  쉬어가면서 우리의 인연은 유지되었다.


지난 몇 년간 글 쓰고 사유하면서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나 또한 나의 표현에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나도 논리 정연하게 반박하는 여유가 생겼다.
솔직함과 여유가 깃든 반박은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그녀가 자신의 이성을 거두어내고 나에게 감성이라는 생소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속에 꾸역꾸역 쌓아 놓고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는 방어기제만 무성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충고는 가끔 논리에 맞지 않고 억지스러움이 있음에도 상대의 분위기를 읽지 않고 쏟아내는 솝관이 몸에 베여 있았다. 과거 늘 그녀의 생각들을 긍정해 주었던 내가 그녀를 반박하며 파고들자 처음에는  그녀도  당황하기 시작했고 한동안은 그녀도 나와 거리두기를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관계는 나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변화했고,
서서히  그녀의 결핍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주 조심스럽개 그녀의 마음을 두드리니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대의 내면의 걀핍을 마주 한다는 건 내가 강해야 져야지만 대면할 수가 있다. 늘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해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
상대의 이쁜 모습만으로는 상대를 알 수가 없다.  "충고 잘하는 그녀"는 나  스스로 만든 것이다.  때로는 충고를 차단하고 거부해야 할 필요도 있었는데.... 그대로 듣기만 했던 나!
하지만 변화하는 나에게 이제 그녀의 충고는 대수롭지가 않다.
돌직구로 날아오는 날것 그대로의  충고든
이성적으로 논리 정연하게 파고들면서도 감성적인 따뜻함으로 다가오는  충고든 충고의 스킬은 중요하지 않았다.
듣고 있는 나의 심리상태가 중요하다는 걸 많은 시간을 들여 알게 되었다.
 충고는 아무리 진실을 담고 옳은 이야기여도 나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비수가 된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은 인품이 넓어져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관계에 서툴다고 관계를 차단하지 말자. 관계는 끊임없이 배워가는 과정이다.
이성과 감성이 서툴러도 인품이 좋은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평온한 이유는
그 사람이 주는 너그러운 여유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인품이 바로 그 사람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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