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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Sep 28. 2020

공황장애 열차.

간이역.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딱히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도 귀찮기만 하다. 몸 여기저기는 늘 아프고 알 수 없는
증상들이 손님처럼 찾아온다.  찾아오는 손님은 저항하지 않고 맞아주면 또 사라진다.
길게 머물면  나절  여유롭게 짧게 머물면 몇십 분 놀아준다.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생각을 붙잡고 놓기를 반복한다.

이런 생활이 두 달째로 접어든다.  이제 적응이 된 건가!
정신없이 하루를 이것저것 누리면서 지냈던 두 달 전의
나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지인들을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 가장 자유롭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일상이 심플해졌다.
무기력하다고 해서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머리를 쉬고
내속으로 깊이깊이 들어오면 된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즐거운 일이 없다고 딱히 나쁠 것도 없다.
즐거움이 무언지에 대한 인식이 즐거움의 의미를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몸에게 잠시 저당 잡힌 시간을 즐기는 법은
몸의 고통을 느껴주는 것이 최선이다.  
약 따위는 먹지 않는다.
고통을 잊으려고 이것저것 다른 것에 정신을
쏟는다고 그 증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충분히 느껴주면서 몸과 대화하는 것도
시간을 즐기는 법이다.  공황장애는 늘 다양한 증상들이 찾아온다.
왜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그래 라는 단어만 있을 뿐이다. 그래 왔어? 잠시 놀자. 한번 온 증상들을 온전하게 느껴주면  며칠 내에 그 증상은 사라진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몸은 요술 같다. 다음에 올 손님은  또 무얼까!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이 재미난 반응들을 집중해서 즐기는 법을
알고 나면  무기력한 하루의 다른 이면이 보인다.
무기력함 속에는 언제나 내가 살아서 나의 모습으로 나를 본다.
존재의 의미는 그때 더 절실해진다.
시간은 행복보다는 고통이 늘 승리한다.  고통의 시간 뒤의 행복의 강도가 세다.
감정은  고통 속에서 몸에게 신호를 보내고

신체증상들은  엄청난 기세로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또 줄줄이  쓰나미로 나를 공격하려고 기다린다.

몸의 증상들을 느껴주고
생각들도 거부하지는 않는다.
차단하지도 않는다.

감정의 민낯들을 보면서 미소 짓는다.
그런다고 내가 너희들과 싸울 줄 아니?
난 너희들과 내 마음 안으로 들이고 순한 양처럼 길들일 거야!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몸의 이렇게 많은 다양한 신체적 증상들의
향연 앞에  새로운 경험을 하며 내 마음이 하나씩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본다. 나는 잔다르크처럼 앞으로 가기도 하고.
순교자처럼 가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가기도 하고.
망나니처럼 가기도 하고
미친 여자처럼 두려움에 떨며 가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간이역 같은 평온함을 만난다.
그것에 또 새롭게 성숙된 내가 앉아 앗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면서.....
아직 이 시간과 여행 중이다.

이 흥미로운 여행을 행복한 시간 속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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