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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Oct 29. 2020

두려움 껴안기

바닥

몸과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구원자를 간절히 원한다.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이 두려움을 구원자를 통해 떨쳐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든 어느 역사든 구원자들은
전지전능하다.
구원자들은 때로 영웅의 모습 이기도 하고
평온한 성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선 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에개 닿아 내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보지만,
눈앞에 당장 나아지는 건 없고. 순간적인 평온함이 있을 뿐이다.
구원자는 잠시 잠깐 나에게 평온함을 안겨주지만
 집착하면 할수록  더 큰 두려움과 좌절. 절망을 만들어낸다.
구원자를 찾으면 찾을수록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확신만을 안겨줄
뿐이다.

인생에 있어 극복하기 힘든 순간은
 마음의 평온이 무너진 바로 그때이다.
불안은 그 틈을 공략해서 마음을 지배한다.
평온함이 사라진 그 자리에 온갖 불안들이 살며시 들어온다.

영웅과 성인의 두 가지 모습을 지켜보자.

전쟁터에서 무장을 하고 수백 명의 병사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가!
죽음 앞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 나가 적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용맹한 남자가 보이는가!  그때 전쟁터 한 모퉁이에서
피가 튀거나 말거나 비명이 들리거나 말거나 싸우거나 말거나 후루룩 가락국수 한 그룻을 고요히 먹고 있는  남자가 보이는가
이두 남자 중 누가 영웅이고 누가 성인으로 보이는가!
이 둘의 고통점은 둘 다 죽음을 극복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영웅은
죽음과 싸우고 있는 자.

성인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

누가 더 고수인가!  우리는 어느 쪽이 더 우리가 선택하기 쉬운가!

둘 다 우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 어떤 두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절대적 평온을 가진 자이다.

절대적 평온을 가진 자는 어떤 사람인가!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선 자.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인 자.
죽음을 뛰어넘은 자들이다.

우리는 평온을 찾아 헤맨다.
행복 안애서
즐거움 안에서
기쁨 안에서  그렇게 헤맨다.

평온을 찾아 헤맨다는 건 평온과 싸우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처음부터 우리의 마음 근본은 평온한데.....
원래 평온하던 마음을 둘쑤시고 있으니 싸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마음은 평온을 권태로 착각하고
무언가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맨다.
그 길에서
허무를 만나고 쾌락을 만나서 잠시 이상한 형태의
평온에 머물기도 한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평온과의  위험한 동거이다.


때로 마음의 평온은 최악의 고통 뒤에도 조용하게 찾아온다.
더 이상의 겪을 고통이 없어 보이는 체념의 상태
이제 더 이상 아파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꺼지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찾아온다.

그토록 애절하게 바랄 때  나를 비켜가던 그 평온은
힘을 빼고 널브러져 있울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내 안으로 자연스레 찾아온다.

영웅이 될 것인가!
성인이 될 것인가!
구원자를 찾아 나설 것인가!

그러기 전에

마음 밑바닥을 들여다보자.
원래가 고요했던 그 자리

마음은 항상 그 자리로
돌아온다.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는가!
그러면 좀 더 고통스러워해도 찮다.
가락국수 면발이 불어 터져도 괜찮다.
전쟁터에서 가락국수를 맛있게 먹으려면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기다리는 자에게만 그 맛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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