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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an 01. 2021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

어젯밤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다. 잠든 까닭인가.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 16번(OP.135.F장조)을
새해 아침에 꼭두새벽부터 듣는다.

이 곡은 1825년에 완성됐다.
이 작품은 현악 4중주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다.
보통의 현악 4중주가 5악장. 6악장에 걸쳐 7악장까지  있는 대신  4악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4악장은 악보에 자필로 쓰인 힘들게 내린 결심이란 표제가 붙는다.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 이 미스터리한 문구의  표제와 동기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많은 추측과 해석으로 예술가들을 자극하여 영화나 소설 등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 베토벤의 쳥각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또한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을 예감하며 혼자 고립된 시간 속에 있었다.
그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처절한 고독 속에서 내면의 소리만으로
음악과 소통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망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던 공간이 바로 음악이라는 마지막 피난처 였다.

베토벤이라는 한 인간이
살아온  삶에 대한 감탄과 갈망 후회와 숨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클래식은 긴 호흡의 음악이다. 한 시간이 넘는 곡을 다 들어야지만 그 앨범에 담긴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 악장만 끊어서 들을 수가 없다.
모든 악장 속애 담긴 서사를 듣고 나서야 음악이 주는 위안을 오롯이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잊고 마음을 녹여 내다 보면
베토벤도 죽음을 염두에 두고
시간을 잊고 이곡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심정은
두려움과 연민이라는 단순한 감정뿐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서
행복한 순간을  본다던가 부러운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죽음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무관한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회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면의 열매 같은 순간이다.
생이라는 인생이 꾳이었다면 죽음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가졌던
수많은 일들이  내면 속에 저장되고 축적되어 죽음의 시기가 다가오면 그 내면에 축척된 사유와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축제 같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육체적 고통이 죽음 앞에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음악이 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지 않는다는
감정의 죽음을 먼저 겪는다는 사실이 두렵다.
죽음 앞에서도 모든 감정들이 생생하다면 죽음을 기꺼이 행복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예술가들의 죽음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까지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일상을 변함없이 보내는 강인함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세계가 흔들림 없이 계속되는 신의 영역인 것이다.
죽음은  고통스럽다. 이 고통을 받아들여야만 하나?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

현악 4중주 16번을 들으면서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베토벤의  감정선을  느껴본다.

최후의 만찬에 빵과 포도주 그리고 영혼의 만찬인 음악.
마지막 순간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들으면서 감동의 시간을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으로 기억하면서
눈 감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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