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혀지지 않는" 나"라는 소설

소설같은

by 토끼

사탕 하나가 입속에서 완전히 녹는 시간은 대략 십 분 정도 걸린다. 입안에서 혀로 데굴데굴 굴려 단맛을 음미하는 시간 동안은
잡생각을 잊는다. 어린 시절에는 사탕 하나가 주는 행복은 삶의 전부를 걸고도 모자랐다.

입속에서 오래 영원히 녹지 않는 사탕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상상을 하다가.
사탕이 다 녹아 버리면 행복도 끝나버릴 것 같아서 침을 아껴가며 사탕을 먹곤 했다.

단맛이 주는 서사는 없다. 그저 단맛 그 자체일 뿐이다. 그곳에는 늘 해피엔딩뿐이니까!
사탕이 다 녹 고난 입속은 허무가 밀려왔지만.
다시 반짝이는 사탕 하나를 입속에 넣고서

길고 긴 단 꿈을 꾼다.

신호등 앞에서 이삼분을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 앞에서도
사탕이 입속에서 녹는 즐거움은

늘 여유로웠다.

사탕은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되기 시작할 때의 그 설렘처럼 녹는 과정을 음미하는 맛이었다.

어떤 시작의 첫 설렘은 사탕을 입에 넣는 순간처럼 소설을 펼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 다음 페이지를 뒤집지 않는다. 사탕을 빨듯이 천천히 한 페이지씩 활자들을 빨아먹는다.
그렇게 묵묵하게 줄거리 안에서 호기심을 키우면서 끝까지 읽어 가다 보면 어느새 소설은 끝이나 있었다.

페이지를 뛰어넘지 않는 버릇은 사탕을

녹여먹는 여유처럼 책읽기의 맛을 즐기게 해 준다.
인생의 미지수를 견디는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과 함께
작가의 의도를 따라 스토리 속에서 인물 한 사람 한 사람 속으로 빠져들어 가다 보면 신이 우리의 인생을 어떤 의도로 흐르게 할지를 아는 것처럼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떤 주제로 이끌어 갈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뻔한 결말이 아니길 작가에게 기대하지만 때로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끝까지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게 영화이며 소설이다.


뻔한 결말을 향해 인물들이 가는 길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뻔한 결말은 우리의 예고된 운명임을 알면서도,
그 뻔한 운명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책 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리의 일상도 사랑도 욕망도 삶도 뻔한 결말인 줄 알면서 소설처럼 빠져들어가게 된다.


사랑이 별거 아닌 걸 알면서 목숨을 걸게 되는 아이러니처럼 타인들의 삷속으로성큼성큼 들어가는 건 우정도 사랑도 모두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결말을 확인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소설을 읽는 즐거움처럼 그렇게 언어를 흡입하듯 관계 속 시간들과 마음들을 흡입한다.

마지막 앤딩을 모른 채로.....

너와 나의 관계가 언제 까지 갈 수 있을까?
흔하디 흔한 스토리가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특별하게 과정을 즐기고 싶어서
혼자 침묵하면서 너를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은 식은 후에 서로에게 무관심 해 지겠지?
사탕처럼 굴려 빨아먹었던 우리의 달콤했던 시간들.

내 인생의 청춘은 그렇게 가 버렸고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들의 끝인
질병과 사고로 끝나는 죽음이라는 거부 할 수 앤딩이 점점 가까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인간의 생은 죽음의 여정으로 가는
대서사시를 많은 기억의 경험으로 화려한 소설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너와 나의 이야기는 기억 속에서
또 의미 있는 것들로 빼곡하게 채워질 것이다.

아직도 내가 가치 있게 훼손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들, 그 선명하게 언어로 새겨진 마음속의 언어들이 내소설을 나만의
명작의 반열에 올려줄 것이다.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목숨까지 버릴 수도 있었지만, 시간에 쓸려 현재 서로 물고 뜯기 바쁜 사이가 되어 있어도.
결국은 서로를 떠날 수 없는
거지 같은 소설처럼 끝날 수도 있다.

그저 순간의 시간들 만이 빛이날 뿐이다.
집착은 순간을 방해하고,
소유는 자유를 방해하고,
돈은 순수를 방해하고,
아름다움은 숭고함을 방해한다.

내 앞으로의 인생 소설!

끝이 보이지만 여전히 긴 호흡으로
그다음 장은 넘기지 않는다.

길고 지루한 재미없는 소설을
흥미롭게 써 내려간다.
사탕을 빨아먹듯이
다시 천천히 입안에서 굴린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아무도 모른다.
너와 내가 만난 이유도 모른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도
모른다.

아주 고약한 작가가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 소설처럼 나의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은
죽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간을 영원으로
앞으로의 삶 속에 끼워 넣을 것이다.

그 누구도 쉽게 읽히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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