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장욱진
말귀가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식으로 해석해서 감정이
상해서 상처 받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런 사람과는 피곤하니
인연을 끊으면 좋지만
가족이거나 늘 한 공간에서
마주해야 하는 관계라면
대화할 때 늘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럼 신경을 쓴다고 소통의 장이 좋아질까?
잠깐은 좋아지겠지만 늘 갈등의 연속일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말귀가 안 통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각자가 서로를 보기 때문이다.
상대도 똑 같이 날 말귀 안 통하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이럴 때 서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어르렁대다가 잘잘못을 가려보겠다고
제삼자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자 누구 말이 많은지 한번 들어봐"
라며 서로 자신을 변론 하지만.
절대 결론이 날 리가 없다.
어느 한쪽이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왜냐면 둘은 서로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자신이 옳다는 걸 확인받고 싶을 뿐이지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친구들 모임에서
약속 시간에 가끔 늦게 나오는 친구가
오랜만에 일찍 나왔다!
나는
그저 무심코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일찍 나왔네"
...............
모임이 끝나고 나서 그 친구는 나에게
조용히 따로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나의 인사말에 기분이 많이 상했다는 것이다.
"그냥 왔어! "라고 할 것이지
"일찍 왔네 "라고 해서 자신이 얼마나 무안했는지
아느냐는 것이다!
뾰로통하게 상한 마음을 드러내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는 그저 인사를 한 것뿐이다.
그것도 반갑게..... 단 1프로도
늦는 그녀와 연관시켜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 어린 변명을 해도
상대의 뾰로통한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이럴 때 세 사람의 내가 튀어나온다.
냉정하게 무시하는나!
'조금 억울한 나!
"일단 뭔지 모르지만 내 말에 상처 받은 그녀를
보는나!"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떤 상황의 내가 더 클까?
냉정하게 무시하는 나라면.
"그렇게 받아들인 거면 그런 거겠지
그럼 그렇게 생각해 그게 네가 편한거라면!"
라고 얘기하고 뒤돌아 서면 된다.
물론 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런 뜻이 없었다는 게 중요한 사실이고
친구가 상처 받았다면
말귀를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친구의 몫인 것이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냉정한 나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늘 억울한 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사과를 한다.
하지만 억울함이 밀려온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이런 것 까지 신경 쓰며 살아야 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가끔 늦는 건 아나 보지
얘가 좀 예민한 구석이 있지
그날인가? 일단 뭔지 모르지만
사과부터 하자!.......
"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니 미안.
화 풀어 정말 그런 뜻 아니었어!"
다행히 상대가 내 사과를 받아주는 걸로 훈훈한 마무리가 되더라도.
마음속
억울한 나는 계속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했는지
찝찝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의 사과로 분위기가 좋아졌으니
오늘의 사과는 모두를 살린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사과를 바로 영혼 없는 사과라고 한다.
사과!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런 사과는 옳고 그름을 전제로 한다.
영혼 없는 사과라면 표면적으로 잠시 져주는척
하는것이다.
영혼이 있는 사과란 어떤 것일까?
먼저 잘잘못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준다는 걸 의미한다.
억울한 나를 먼저 챙겨야지만
자유로울 수 있다.
상대가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면
먼저 상처 받는 건 언제나 나이다.
잘못이 있다면 상처 받은 나를
방치해두는 스스로에 대한 무심함이다.
내가 나를 먼저 챙겨야지.
그때 상처 받은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나의 말로 상처 받은 거라면 잠시
생각해보자.
오랜만에 일찍 나와서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의 표정이 굳어있었다거나
무표정했을 수도 있었을 테고
뭔가 여의치 않은 미묘한 상황이 있었을지 모른다.
선의를 가진 말에도 사람들은 상처 받는다.
하물며 무심히 던진 말은 상황을 변질시키는 힘이 있다. 억울한 내가 아닌 상처 받은 사람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바라보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에게 불리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때 너그러운 마음으로
영혼을 담은 마음으로 건강한 사과를
미안해 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영혼 없는 사과를 하게 되면.
늘 언제나 상대에게 맞추게 되고 눈치를 보는 일이
생기고 대화에 있어 같은 패턴을
되풀이하게 된다.
그러다가 인내심에 한계가 오면
극단적인 말이 나오고
큰 싸움으로 진전하는 상황이 올 때도 있다.
억울한 나!
그녀는 늘 억울한 마음이 쌓이고
내 탓이라는 열등감이 안에서 스스로 자책하는
나를 만들고 있었다.
다름이 아닌 옳고 그름의 정의 아래서는
난 그런 적이 없으니까라며 억울한 마음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름이라는 정의는
사람을 먼저 본다.
친구 또는 배우자 아니 자녀가 될 수도 있다.
상대가 나의 말로 상처 받았다고
하지 않은가!
상대의 상처를 먼저 다독거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공감하는 게 먼저다.
그다음 진정성 있는 대화로
상대를 설득하고 시간이 지난 후
상황이 달라진 후에
너 무예 민한 거
아니냐며 슬그머니 치고 들어가면 된다.
상대가 기분 나쁘다고 호소하는데
당당하게 무시하고 가 버리면 되지만
내 마음 편 할 리 없다.
분명 어이없고 억울한 마음이 올라온다.
이때는 나의 마음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핍감 내지는 열등감이
억울함이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마음이 너그럽고 열려있을 때는 어떤 말을
들어도 각을 세우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이 되어 공감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에게는 어떤 말도
신경을 거스르게 할 수 있다!
내 마음이 넉넉하면
억울해하지도
냉정하게 무시하지도 않고
너그럽게 상대를 공감해 줄 수 있다.
건강한 사과를 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의 결핍 또한
볼 줄 알아야 한다.
억울한 나!
냉정한 나!
상처 받은 나!
이 세 사람은 늘 배역을 바꾸어가면서
우리의 관계 우위를 점령한다.
서로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면
함께 말귀가 안 통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본다면
말귀가 안 통하는 사람이란 세상에 없다.
단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뿐이다.
그때 언제나
여유로운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잘못된 상황을 다스리는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