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그것은 천부적인 재능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찬란했던 삶은 끝이 났기 때문에 완벽한 나를 지키려면 반드시 스스로 소멸해야 한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던 헤밍웨이의 자살은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자살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의 유서에서 보듯 그는 존재의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소멸해야 한다고
마지막을 썼다.
존재의 이유! 그것은 스스로 존재가치를 느끼면서 일상을 산다는 걸 의미 한다.
하지만 스스로 존재가치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소멸의 이유는 너무나 타당하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존재의 가치는 그만큼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젊은 날은 스스로에게 존재의 증명 따위 할 필요가 없었다.
며칠 밤을 새워도 몸은 끄떡없고. 마음먹은 일은 뭐든 가능해 보였고 세상을 내 손안에 다 가진 듯
자신감은 넘친다. 어디를 가도 젊음은 부러움의 대상일 테고, 실수해도 기성세대들은 그저 경험 부족으로 너그럽게 넘어가 준다. 더 큰 존재감과 , 쾌락을 맛보기 위해서 모험을 즐기고
세상의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경험을 쌓기 위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배우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도 한다. 더 많이 알고 싶고 ,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갈망만이 가득하다. 사랑에 빠져 온 젊음을 바치기도 하고. 열정에 빠져
일에 파묻혀 성공이라 결과물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달려온 레이스를 속에는 존재 자체가
치열한 삶 속으로 내던져지기 때문에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할 시간 적 여유 조차 없이
세월은 간다.
늘 어딘가에서 존재는 증명받고 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정의 책임자로서, 모임의
일원으로써, 사회의 주인으로써 존재를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느낄 새도 없이 어딘가에 자신을 끼워 맞추어 살아가기에도 바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롭고 늘 사람들 틈 안에서 북적이면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는 안전하게 함께 가고 있었다.
하지만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쌓여가는 줄만 알겠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사회는 경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늘 새로운 강자들이 나타나면서 내 존재감을 위협한다. 공들였던 사람들은
환경이 변화와 함께 변심하고 그렇게 모래알처럼. 손 안에서 빠져나가고, 소홀해지면 금방 잊혀 가고
배운 것들은 많았지만, 위기가 닦치면 늘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하나를 제대로 해야지 밥 벌어먹고살 수 있고... 제대로 된 그 하나가 없다면 늘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기만 할 것이다.
젊음을 투자한 세월은 안정된 생활을 보상받았지만, 이제 세상으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사회는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사회는 이제 나에게
존재감을 증명할 필요도 없으니. 조용히 존재해 주기만을 바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처럼
노인에게 기회를 주는 기업은 없다.
성공한 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돈과 권력이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보호해 준다.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을 존경과 동경, 경외감으로 바라볼 테고.
때론 갑질을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것이다.
타인들에게 자신의 , 권위를 내세우면서 , 젊음 못지않은 존재감을
돈과 권력으로 구질구질하게 증명해
보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것들에 의탁해서 눈을 감을 것이다.
돈과 권력 명예는 그 자체만으로도 타인들 속에서 존재감을 확인받을 수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지위나 권위 돈이 주는 존재감!
금수저로 태어났거나 젊은 날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부와 권력은 타인들 속에서 언제나 우위를 점령한다.
고개 숙이지 않아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테고, 어디서나 대접받을 수 있는 달콤한 존재감!
아마도 살아서 우리가 욕망하는 것의 실상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부정을 보아도 눈감고 악마와도 거래하고
천사와도 거래하고 영혼은 스스로를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 권력이 떨어져 나가고, 명예가 떨어져 나간다.
끝까지 움켜쥐고 있으면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줄 가장 든든한 동반자는 돈이다.
돈은 병상으로 자식들을 불러들이고. 사람들도 불러들인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재산을 유언을 통해
나에게 가장 잘했던 피붙이들에게
남기고 눈을 감는 인생이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권력자들의 모습들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그 시절.
돈 따위 없어도 빛나던 젊음의 존재감을
누군가는 이렇게 정의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
꿈을 이루고 , 부를 거머쥐고,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 때문에 젊음은 빛이난 다고 한다.
그 가능성은 보편적 인간이 가지는 염원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능성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태어난 목적은 모르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생명이 지닌 고유한 목적이다.
동물처럼 번식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스스로의 자유의 지대로 삶을 선택한다.
존재감은 가능성 때문에 빛나는 것 따위가 아니다.
그 어떤 지위나 위치 안에서 얻은 존재감은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는
자신을 보호할 뿐이지 스스로를 사랑하는 존재감을 배우지 못한다.
사회적 존재감은 타인들에게서 자신을 지키고 공격하는 존재감이다.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존재감은
그 모든 것을 잃었더라도, 모함당하고 , 오해받고 , 질타당하고, 멸시받고,
실수해서 손가락질받아서
버려지더라도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키려고 할 때 필요하다.
우리가 가능성에 모든 걸 투자하더라도 나의 가치를 세상에 내어주지 않는다면
존재감은
뿌리를 내리고 나를 지킬 것이다.
나이 들어서 아무것도 없더라도
뿌리를 내린 존재감을 우리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젊음은 더 가치 있는 나를 즐기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가져야 하고.
늙어서는 나를 세상이 만든 것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나의 존재감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사회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내적 노력 없이 만든 존재감이 아니라
나 스스로 외로움과 아픔 상처와 고독과 문학예술을 통해서 얻은 그
순수한 나만의 것들로 나의 노년을 존재감으로 지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진 것들을 나누어 주고 자유롭게 비상하지 않으면 지금 가진것에 치중해서 아직도
나를 가능하게 해 줄 그 존재감에만 집착하다가
우리는 눈감을지 모른다.
자신이 가진 물질에 잠식당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이용하지도 않고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 지킨 존재감이야말로
나를 지키는 든든한 자산이다.
오늘이라는 시간만이 쓸 수 있는 마음의 자산인 글!
지금의 이 존재감은
늘 든든하게 내 곁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