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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n 07. 2021

물 많은 여자(2편)

낙원 여인숙




최형국은 눈을 감았다.

술에 그리 취한 것도 아니었다. 달빚이 그녀를 삼키고  있었고  기억은 선명하지만
그 느낌은 자꾸만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았다.
3년 전부터 참석하는 산악 동호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10명 정도의 일행들은 산행이 끝나고 도봉산 아래 막걸릿집에 자리를 잡았다.
야외 테라스에서 마시는  막걸리 맛은 산행 후에는 꿀맛이었다.


일행들은 오르막 내리막을 오가며  남자들은 여자의 손도 잡아 이끌면서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자연스레 비슷한 연배의 여자와 남자들이 술잔을 기울였다.
최형국은  최종국이라는 가명을 섰다.
 편의점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맞은편 여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전갑련이라고 해요."  경상도 억양이 조금 섞인 말투였다.
여자는 쭈뼛거리며   수줍어했다.
살집이 오른 몸과 화장끼 하나 없는  얼굴 때문에
시장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를 연상케 했다.


"갑련씨라고 했나요?
오늘 처음 오신 거 같은데 그래도 산을 잘 타시는군요"   총무를 맡은 김병기가 그녀의 잔에 막걸리를 채웠다.
"걷는 거 하나는 자신이 있는데 살이 자꾸 붙어서
요즘은 숨이 차요 오늘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얘기하다가 최형국을 흘깃 쳐다봤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맑고  톤이 높은 목소리에
 뒤끝을 흐리는 약간의 사투리 억양은    여고생 같은 풋풋함과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였다.


최형국은 산행 내내 남자들하고만 말을 섞었다. 전갑련이 늘 두세 걸음 뒤에서 열심히 숨을 헉헉 거리며 따라오는 걸  의식했지만
곁을 두지 않고  남자들하고만 대화를 나누었다.
"실례 좀 할게요.
옆좌석  여자가 일어나자 최형국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길을 터 주었다.
샤넬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화장이 잘 먹는 예쁜 얼굴이었다. 도봉산 초입부 터부터 최형국 일행에게 따라붙으며 형국에게 관심을  보이더니 결국  최형국 옆자리에  앉았다. 큐레이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미술에 관한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었다.


등산복인데도 세련된 패션으로 깡마른 몸매를 우아하게 보이게 했다.
형국은 그녀에게서  미역 오리처럼 마른 죽은 아내를 떠올리고 있었다.
형국은 기분이 다운되는 걸 막으려고 애써 전갑련에게 시선을 던졌다.


전갑련은
막걸리 한잔에 상기된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빰을 손으로 감싸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코로나 정국에 경제난을 타계하기 위한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들이 남자들 사이에서 오가면서
술자리는 무료함이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자들은  하품을 하고 있었고,
취기가 오른 남자들은 2차를 외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산자락에 풀내음이 퍼졌다.
9시가 가까워오자 한두 명씩 빠져나가는 사람도 생겼다.
그때 전갑련이 수저를 높이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근데요.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다들 산에는 왜 기를 쓰고 다니는 거죠?
얼마나 더 오래 살겠다고 그렇게 유난을 떠는 거죠?"
순간 술자리에 정적이 감돌았다.
"전요 오늘부로  산하 고는 바이 바이 할 겁니다.
어차피 내려오는 거 뭐하러 올라가는 건지
힘들기만 하고 재미하나 없는 산에 왜
기어오르느냐고요.
다들 힘이 남아 도시나 본데....  그 힘 좀  
딴 곳에다가 남들한테 좀 좋은 일에 쓰는 건 어때요?."
전갑련은 혀가 반쯤 꼬부라져 있었다. 술주정인지 그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게 횡설수설했다.


총무가 당황하는 얼굴을 하고 일어났다.
"우리 신입께서 오늘 술이 좀 과하셨나 보네요."
"제가  오늘  산에 오려고 돈을 얼마나 많이 쓴 줄 아세요?  뭔 놈이 등산복이 이리
비싼지 왜 산에는. 꼭 등산복을 입고 와야 되는 건냐구요. 전 도대체 그게 이해가 안 돼요."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떨구었다.


최형국은  그녀가 더 이상  분위기를 망치는 걸 막으려고 습관처럼  나서고 말았다.
 "산에 왜 오느냐고요? 갑련씨  같은 이쁜 여사님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전 산에 옵니다.  편안하게 손도 잡아주고 땀도 닦아주고, 살 냄새도 맡고,
매일 보는 마누라 얼굴 말고,  꽃도 보고,  님도 보고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지요. "
최형국이 묵직한 어투로 미소를 보이며 이야기를 던지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남자들의 작은 야유가 터졌다.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전갑련은 최형국을 노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봄밤 풀내음이 산자락을 덮자 , 새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자자 이제 슬슬 집에 갑시다."총무가 계산을 끝내면서 왔다.
전갑련은 화장실을 간다며 먼저 나가고 일행들은  2차를 가는 팀과 지하철로 귀가하는 팀으로 갈라졌다. 최형국은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기 위해 도로를 걷고 있는데. 전갑련이 휘청거리며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속도를 늦추었다.


"괜찮으세요? 집이 어딥니까.
택시 잡아 드리겠습니다. "
"저 하나도 안 취했어요. 고맙습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갑련은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라서 잠시 그녀를 지켜보던 최형국은
뒤돌아 섰다. 그때   뒤에서 그의 팔을 그녀가 잡았다.


"혹시 최순남 여사를 아세요?"


전갑련의 뜻밖의 질문에 그는 어리둥절 대답했다.


"저 갑련씨  뭐라고요?"
"아 모르시는구나."
"누구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아뇨 그냥 혼잣말이에요."


실망한 듯한 표정의 그녀는 시무룩해졌다.
"전 사실 최종국이 아닙니다."
"뭐라고요."
 전갑련은  장난하듯 똑같이 최형국을 따라 했다.
"저도 혼잣말이에요." 최형국도 따라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 웃었다.
" 뒷동산 말고는 가 본 적도 없는 제가 오늘 산에 왜 온 줄 아세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최형국은 그녀의 말을 자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최종국 씨? 전 오늘 누굴 좀 만나기로 했어요 산에서요."
근데 그 사람이 안 왔어요. 절 바람 맞혔다고요."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기다리세요 택시 잡아드릴게요."


멀리서 보이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고 최형국은  도로 위로. 뛰어갔다.
잠시 후 뒤돌아보니 그녀는 밴치를 향해 뒤돌아 걸어가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택시를 보내고 잠시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팝나무가  눈꽃송이처럼 핀 나무 아래  벤치는
꿏잎들이 벚꽃처럼 날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든 채 미소를 머금고 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술에 취한 게 아니라 봄바람에 취한 듯 황홀해 있었다.
통통한 붉은 빰은 윤이 났고. 콧날은 오뚝하게 윤곽이 선명했으며  입술은 도톰했다.
이쁜 얼굴을 아니었지만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살집이 오른 몸매는 뚱뚱하기는 해도 등산 복안의 곡선은 살아있었다. 마흔이 넘은 여자처럼 보이지 않는 수줍은 미소가 불빛 아래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술 취한 여자가  혼자 쓸쓸히 앉아 있던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잠시 최형국은 술독에 빠져  자신을 놓아 버렸던 지난 시간이 오버랩됐다.


강아지 한 마리가 낑낑대며 울고 있는 것 같아 그는 다시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저랑 저기 편의점에서 한잔 더 하실래요"
턱으로 편의점을 향해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 었다.
그는 가방 안에서 생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다. 물을 밖으로 뿜었다.
"뭐예요. 이거 소주잖아요."
"술 더 마시고   싶다면서요"
그녀는 한 모금을 마시더니 최형국에게 생수병을 건넸다.
"참 편의점 사장님이라고 했죠!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세요."
"저야 모르죠 저한테는 4월 6일이라는 것 밖에는요"
최형국은 다시 가방애 생수명을 넣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 얼마 전 자유의 몸이 되었고, 오늘은  바로 그 첫나들이를 하는 아주 감격적인 그런 날이에요."
"어디 교도소에서 출감이라도 했나요?"
"네?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15년 동안 진 사채빚을  얼마 전 다 갚았거든요.  하루도 맘 편히 놀지도 못하고 이 손이 문 들어지도록 일만 했어요.
1년 전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뭐라는 줄 아세요.
제 손을 보더니 식당일을 하시는 건가요? 묻더라고요. 이렇게  손을 혹사시키면
다시는 손을 못쓸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최형국은 그녀의 손을 보았다. 작고 도톰한 손이었다.


"빛을 다 갚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는데.. 근데 기분이 어떤 줄 아세요.
하루가 지나니까 뭔가 할 일이 없어진 것 같고. 무료하고 갑갑하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어요. 지금껏 이 빚만 다 갚으면 이제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 줄 알았는데...
난  이제 무얼 할지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아요. 무기력 그 자체가 돼 버렸어요."


최형국은 언제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인생이라는 게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야 되는데...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건 타인을 즐겁게 해야지만 내가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모순 속에 빠지게 되거든요."
그녀는 네온사인이 보이는 불빛을 향해 계속 이야기를 하다
최형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 누구를 만나러 오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최형국이 질문을 던졌다.


"전요...."
갑련은 잠시 머뭇거렸다.


"저  오늘 처녀성을 버리려고 산에 온 거예요"
전 아직 남자하고 한 번도 자 본 적이 없어요."

마흔을 훌쩍 넘겼는데 말이죠"


최형국은 대화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아 농을 던졌다.


"설마 지금 저보고 이 시간에 산속으로 같이  들어가자는 건 아니죠?."


그녀는 웃지 않았다.


무안해진 형국도 잠시 침묵했다.
" 산에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어요."


그녀는 아이처럼 손을 번쩍 들어 골목길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여인숙 있잖아요. 냄새나고 어두운 퀴퀴한 곳에서  비가 내리는 날
전  남자랑 히루종일 섹스만 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녀는 술이 취한 게 아니었다.
발음은 정확하고  눈빚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안 오지만 봄밤이고 오늘 저한테는 축제 같은 밤이고.
하룻밤 보내기에 꿈같은 밤이죠"



최형국은 늘 언제나 자신이 여자를 유혹했지만 지금 이쁘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지만
슬프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유혹하는 이 여자에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글쎄 사람을 잘못 고르셨어요.
전 사실...."
그가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꺼내자.


어느새 그녀는 여인숙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밤마실을 돌아다니는 미친 여자같이
바운드도 없이 좀비 같은 걸음으로  낙원 여인숙이라는 간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피리 부는 목동을 따라가는 아이들처럼  최형국은 전갑련이라는  마법에 걸려 뒤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지금 전갑련이라는 동화나라 속에 발을 들여놓은. 딱정벌레 한 마리 같았다.
그저 그녀를 따라가는 것 말고는...
어두운 골목을 따라 말없이 둘은 걸었다. 전갑련은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다.
최형국이 따라오지 않아도 그녀는 그날 밤 그곳에서 혼자 잠을 청했을지 모른다.


그날 밤 최형국이 느낀 안락함은 쾌락이 아니었다.
발기부전의 사내는 여인이 열어젖힌 첫 경험의 환타 지속으로
암컷 사마귀가 수컷 사마귀를 포획하듯 그렇게 포획당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대범했고. 최형국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것은  그녀를 따라서 여인숙으로 걸어가는
어린아이가 엄마의 자궁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늙어가는 여자의 몸이 아니라  
꽃잎이 시들어 비틀어 말라가거나 짓이겨져 더럽게 밟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안락한 길 위를 구르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판타지 같았다.
둘은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죽음과 죽음의 길로 들러가는 낙원의 문으로 함께 들어갔다.


안락 여인숙은  존재하지 않은 곳처럼 최형국을 미지의 세계로 빨아들이고
부르르 떨게 했다. 옆방에서는 중국교포가 틀어놓은 라디오 음악에서 중국노래가 밤새 울어대고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마지막 굉음을
끝까지 내고 달린 기차처럼 끝을 향해. 땀이 범벅이   되어 둘은 쓰러져 잠들었다.
창가에는 동이 트고 있었다. 깨끗한 이불 위에는 그녀가 누웠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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