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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un 13. 2021

물많은 여자( 3편) 개정판

물리치료사

아침을 챙겨 먹고 전갑련은   병원으로 향했다. 의왕시 월암에 있는


요양원은 녹지공간이 어우러져  시설이 좋고  깨끗했다. 이제 막 점심을 먹고 나온 김선미는 전갑련을 반갑게 맞았다. 흰색 병원 가운이 햇빛을 받아 더 깨끗해 보였다.


전갑련이 갈지자걸음을 걸으면서 몸을 비틀었다.

""물리치료사님? 오늘 밤  제 몸도   손좀 봐주실래요.


생전 처음 산에 갔더니 온몸이 쑤셔요., "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언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요즘에는 새벽에도 출근해?."


"Vip고객 예약이 있었어."


" 어제 어디서 잤어? 전화도 안 받고.."

전갑련이 잠시 망설이자. 김선미가 떡이랑 과일을 전갑련에게 내밀었다.


병원 마당에서는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김선미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건넸다.

배드민턴장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주위가 산만해졌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여자가  울상이 돼서 소리쳤다.


"도대체 이게 뭐야 악~~~


아! 똥 냄새  도대체 누구야"


울상이 된 여자는 배드민턴  채를  던지고

치매병동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치매 병동에서 어떤  환자가 똥기저귀를  던진 것이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쩐다니 아이고 김간호사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네.."


 김선미가 웃음을 참으면서 깔깔거렸다.

입안에서

송편이 파편처럼 튀었다.


"보통사람들 세상 살면서 똥기저귀에 뒤통수 맞을 일은 로또 당첨보다 더  확률이 낮을걸."

전갑련은  잠시 심각해졌다.


"남에 일 같지가 않네 치매만 안 걸려도

세상 곱게 살다 죽을 텐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우린 떡이나 먹자."


"이건 웬 떡이야? "


" 우리 병원이랑 협약을 맺은 장례업체가


아침에 가져온 음식들인 가봐"


"언니 요즘은 장례업체에서 이런 것도 줘?"


"주말에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데.

그래서 감사하다고 병원에 간식을 많이 보냈다네.."


"언니도 참 말 한번 건조하게 한다


"계집애야 그럼 병원이란 곳이


그런 곳이지 사람 죽어나가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언니 참 아이러니 하지? 누군가의 아픔이 또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전갑련이 부드러운 시루떡을 입에 넣었다..


"너 어제 등산복 입고 나가더니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서울에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도  없다면서.....


"그냥 너무 늦어서 근처 여인숙에서 잤어. "


"혼자?  야 안 들어오면 안 들어온다고 연락을 했어야지.... 아니 산에 간다고 간 애가 안 오니까 무슨 사고라도 생긴 줄 알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아니."


"별일 없었어.  애도 아니고 40이 넘은 아줌마한테 뭔 일이 생기겠어.

언니 나 다음 달에 서울 근교로 이사할 거야"


"웬일이야 어머니가 전주를 떠나신대?"


"아니 난 이제 혼자 독립할 거야! "


"집도 다 알아봤어. 인덕원에  작은 월세방 하나 얻기로 했어"


"남동생들 이제 좀 살만하다면서 지들이 저지른 똥 네가 평생 일해서 다 치워줬는데 방하나 얻을 돈도

좀 어떻게 안 해 줘?

 도대체 가족이란 게 뭐니?"

"난 이제 가족이란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해

다 내가 선택한 거야!

개들 이제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말고 자기들 인생 사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


"갑련아  요양보호사 월급으로는 여자 혼자도  먹고살기 힘들어.

너 그 손 때문이라면

내가 조금 편한 물리치료사 자리 한번 알아봐 줄게 너 정도 케리어면 요양보호사 월급보다는 두배는 받을 수 있어!


"언니 나 이제 병원은 지긋지긋해. 돈에 눈이 뻘게져서 남에 살 문지르면서  내 인생 허비하는 것도 싫고,


그만큼 개고생 했으면 이제 내 인생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남은 인생 살고 싶어"


"병원에도 요양보호사 자리가 많아 수입도 훨씬 괜찮고"

핸드폰 진동벨이 울렸다.

그녀는 문자를 확인하며

김선미에게 말했다.


"언니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내 친구 현숙이 알지. 방 하나 괜찮은 거 나왔나 봐  그 얘긴 나중에 하자.

이따 저녁때 봐..  "


 인덕원 가는 버스 속에서  끝도 없이 지나치는 아파트 단지들을 보면서

정갑련은 생각했다. 저 많은 집중에 내 집하나 없고, 몸뚱이 하나만 달랑 서울로 올라왔지만 왠지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자신이

이 도시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그저 무거운 짐을 덜어낸 자유만으로도

그녀는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었다.


그때 다시 진동이 울렸다.


휴가는 언제 끝나세요.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


친구 홍현숙 아니었다.

"저 지금 서울이에요. 이선생님  다음 주 초쯤 내려갈 거예요."


 사회복지사 이현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병수 할아버지

보호자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전쌤이 안 오시면 식사를 안 하시겠다고. 어제부터 곡기를 끊으셨데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어떻게 좀 다시 이병수 할아버지 댁 일을 좀 맡아주실 수 없겠냐고요?"

울상이  된 이현경의 얼굴이

떠올라, 전갑련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 이선생님.

할아버지는 걱정 마세요.

제가 장담하는데 하루 이틀 그러다 마실께예요."


"아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얼마 전 까지도 보호자분이 할아버지가 10년 만에  눈에 띄게  호전되셔서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그 할아버지는 이제 저 없이도 괜찮을 거예요. "

"아니 다른 수급자들도 전 선생님한테 하루만이라도


시간 좀 빼 달라고  서로 저한테 부탁하는데....;


저희야 원하시는 분들을 연결해 주면 좋지만

다른 분들도 모두 열심히 하시는데 수급자들이 전 선생님만 찾으니  형평성 문제라는 것도 있고 곤란하네요.


이병수 할아버지  며칠 전 그 사건 때문에 다른 요양사도 그 집에는 안 가겠다고 하고

제가 중간에서 난처해 죽겠어요."


전갑련은  이병수를 떠올렸다.

방아쇠 수지 증후군이라는 직업병을 진단받은. 전갑련은 미련 없이 물리치료사를 그만두었다.


이제는 무리해서 돈을 벌 필요도 없었다.

손을 쓰지 않는 편한 일을 찾아보다 친구 홍현숙의 권유로 요양보호사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20년 가까이 운동치료를 하면서 그녀의 손은 혹사당했다.  손이 망가져갈수록


그녀의 손끝에서 근육들은 치유되었고 인대들은 탄력성을 찾아가면서 그녀의 손은 신들린 듯 근육조직을  점령해  나가며 승리를 쟁취했다.


사람들의 감사인사는 그녀의 케리어를 보장해 주었다.


그녀가 힘든 시간 버 틸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자신을 필요로 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사채빚을 다 갚고 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녀의 손은 백기를 들었다.

더 이상은 일을 안 하겠다고 파업 선언을 하고 아프기 시작했다.


돈이라는 자본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그녀는 이제 쉬고 싶어 졌다.


 이제는 돈이 아니라

뭔가 보람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보수는 적어도 요양보호사는 그녀의 적성에  잘 맞았다.

80을 바라보는 이병수 할아버지는 그녀가 맡은 수급자 중 한 명이었다.


1년 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그녀가 직업적으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인간의 몸은 나이가 들면서 근육들은 노화하지만 감각들은 더 예민해진다는 사실들이었다.

특히나 노인들의 근육은 아주 섬세한 손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민하게 그녀의 손에 반응했다..

그녀는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숙련된  물리치료 경험을

살려 그녀만의 마사지법으로 수급자들의

신경통을 완화시켜 주었다.


어르신들의 근육들은 여기저기 염증이 있거나 신경계통의 질병이 함께 있었다. 건강한  젊은이들의 근육과는 구조부터가 달랐다.

압이 들어가지 않는 마시지를 받은 어르신들은 그녀의 손에서 활력을 찾았고 그녀의 손맛에


중독되어 갔다.

이병수 할아버지를 그녀가 맡았을 때는 거동이 불편해서 누워 지낸 지 5년이 가까웠다. 아내와 사별하고 난 직후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건강은


육욕이라고는 약간의 식욕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씩  근육들을 풀어주고 따

듯한 공감과 말벗이 되어주면서 할아버지의 감각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누워 지냈기에 근육들의 감각은 죽어있었다.


그녀의 마사지는 모든 근육들에게  하나하나씩 생기를 주었고. 6개월이 지나자  이병수는 조금씩 걸어 다니기까지 했다.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전임자는 이병수를 맡은 지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다.


"저요 너무 무서워요.  일주일째  인가!

인기척을 내고 할아버지 방문을  열었는데.

할아버지가  제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글쎄 손으로... 그걸 잡고.  서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할아버지가 자존심이 세고  성미가 고약하고 입이 걸어도 참고 그냥 성질 더러운 노인네거니 했는데.  어떻게든  잊고서


다시 해보려고 했는데. 할아버지도 어색해하시고

전  자꾸만 그 시커먼 게 떠올라서 도저히

그 집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


전갑련은 불편한 심기로 터질듯한  그녀의 표정을 마주하면서

인내를 가지고 설득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갑련의 시선으로는

그녀는 아직 경험 부족이었다.

요양보호사는 남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사람을 대해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비록 남자와 한 번도 살을 섞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손쉽게 마주하는 남자의  육체는  전갑련에게는 익숙했었다, 운동치료를  하면서 그녀의 병원 주 고객은 젊은 운동선수들이었다.   그들의 근육은 그녀의 손에서 자신들의 욕망으로  꿈틀대며

오만했었다.


이병수 노인은 탄력 잃은 육체 위로

꿈틀대던 핏줄들은  늘어져 있었다.

쭈글쭉글한 근육들을 마사지할 때

노인은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전선생님 이 늙은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산송장이 됐는지 모르지만

나도 한때는 여자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그런

사내 였습니다."

 말라들어가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의 눈에서 살아나는   그녀는 향한 욕정의

눈빛과  미묘한 감각의  변화를 매일매일 노인의 표정에서

전갑련은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이병수는 오로지 전갑련의 손길 하나에만 의지해서 섬세하게 그녀와 소통하고

치유하는 손길에서 자신의 과거 기억들을 하나하나씩   재생하고 있었다.


삶의 등불이 꺼져가는

마지막 불꽃같은 그 횃불을 잡고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늙은 사내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날만큼 그녀의 손이 대견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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