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Jul 14. 2021

물많은 여자 (8편)

루피나


박용재는 벽 사이의 미닫이 문을 열었다.

동그란 작은 구멍이 나타났다.

"아직은 손님이 없을 겁니다. 입소문이 나야 하는데.

 사실 저도 처음 시도하는 거라 반응을 보면서 영업계획을 세울 겁니다.

 급여는 한 달 단위로 입금될 겁니다."


"구멍 너머에서는 절대 선생님을 볼 수없으니 안심하시고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구멍 너머를 보았다.


"아무것도 안보이죠. 물론 여기서도 사람을 볼 수는 없어요."


그녀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어 오일이 담긴 병을 꺼냈다.

두손가락 사이로 펌프질해서 오일을 손위에 문질렀다.


박용재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진동했다.

'이건 뭐죠.?"

"아로마 오일인데 , 에센셜 오일과 호호바 오일을  블렌딩 한

오일이에요. 레몬밤 오일은 한 방울에 몇만 원이 넘는 고가의 오일인데...

치유와 함께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죠."


"이런 게 무슨 도움이라도?"


"향기는 사람을 유혹하죠, 이곳을 기억나게 하고요.

지하실의 냄새가 아닌  향기를 따라 이곳으로 오게 만들어야 돼요."


"이곳 단골들은 춤과, 술,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매너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이런 서비스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도 아직 잘 모르겠고... 모든 게

시험대에 오른 기분입니다."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도움이 안 되면 어쩌죠?"


"그런 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되고 안되고 그런 건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이곳은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고,

그냥  선생님은 새로운 사람이  됐다고 상상만 하시면 됩니다.

나름 재미있을 겁니다."


"전 남자에 대해 아는 게...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삼십 대의 절반을 사채업자들의 그늘에 있던 그녀의 삶에 로맨스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박용재에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실전 경험이 없으니 영상들을 보고 책을 읽고 감각들을 실험해 보고 상상하는 게 전부였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걱정 없습니다.

단 아직 이런 정서에 익숙지 않은 손님들이 걱정될 뿐이죠.

반응이 안 좋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전  승산이 있는 일만 합니다.

제 안목을 한번 믿어 보세요."


그는 홀 안으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넓은 홀 안은  아직 영업 시작 전이라   사무실처럼 밝았다.

박용재는  직원들을 모았다.

갑련을 인사시키는  자리였다.

"자자 다 모였습니까?"

스트립걸 세명과 웨이터 세명 바텐더 주방에서 일하는 분 까지  서로가  한가족처럼 친근하게  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 모두 자기 자리고 가고,

스트립걸들만 남았다.


"오늘부터 섹시 쇼는 노출 강도를 낮출 거야!  되도록 상의탈의만 한다."


"저승사자 뭔 소리야! 스트립쇼에 옷을 벗지 말라고  난 가진 게 알몸밖에 없다고? "제니가  어깨에 걸친 한쪽 옷을 내리면서 웃었다.


 "예술성 있는 안무를 좀 첨가해서 에로틱한 느낌을

좀 잘 살려봐 당분간만이야. 오늘부터   지옥 클럽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거니까!  클라이 막스에 올랐을 때

가슴속에 품고 있던  명함을  손님에게 건네는 식으로 동선을 한번 짜 봐!

프로들이니까 각자의 안무를 즉흥적으로

연출해!"


그는 부드러운 감촉의 명함 크기의  종이를 나눠 주었다.


핑크빛 와인잔 그림 안에

쓰인 문구를 보며 제니는 웃었다.


"루피나

물 많은 여자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 촌스런 문구는 뭐야.

물 많은 여자라니....."


다른 여자가 수근거렸다.

"야 너 바보니? 물 빼는 여자잖아!"


전갑련은 그녀들의 말에 개의치 않고 룸으로 돌아왔다.


첫 손님에 대한  설렘과 부담 걱정으로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9시가 되자

조명이 바뀌고 끈적한 음악이 홀에 깔리자  무희들이 홀 위로 올라갔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섯 명의 30대의  남자 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

 붉은 조명 아래 관능적인  무희들의 춤에 그들은 넋을 잃고 있었다.

침을 삼키고 넥타이를 풀며 탄성을 지르자


그녀들의 가슴에서 명함이 꽃잎처럼 날렸다.

명함을 주어 든 남자들은 웨이터를 불렀다.

 

"물 많은 여자가 뭡니까?"


"오늘부터 저기 보이는

 방에서 펼쳐지는 쇼타임입니다.


홍보기간에는 무료입장입니다.

일단 한분만 입장 가능하고요.

빨간불이면 대기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서로 웅성거렸다.

"뭐야!  공짜라고?"

세명은 빠지겠다고 하며  흥미를 보이지 않자.

나머지 세명은  서로 제비뽑기를 하듯 순번을  정했다.

첫번째 남자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파란불이 켜진 문을 열었다.

 

피팅룸보다 조금 더 큰 공간 안에는

탈의 가능한 가운이 옷걸이에 걸려있고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남자는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문이 열리자 전갑련은 긴장했다.  허리띠 푸는 소리  바지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붉고 단단해진 물건이 원안으로 쑥 들어왔다.


너무 긴장한 탓이 었을까! 그녀는 하마터면 신음 소리를 낼 뻔했다.

손으로 감싸안자 팽팽해 졌다.

그녀는 미끄러운 오일을 따라 두손으로 마사지했다.


피팅룸 안의 남자는 온몸으로 쾌감을 느끼면서

 코끝에서  퍼지는 향기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따뜻한 손의 감촉이 어색함과 낯섬의 경계를

뚫고 풋풋한  연둣빛 잎사귀를 머금은

향기는   봄날의 들판 속으로 달렸다.


 풀잠자리가 어지럽게 날렸다. 온몸을 간지럽히는 향기는 다리를

타고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정맥의 핏줄을 따라서 머릿속은 온통 새하얘져 가고 풀 팥에 누운

풀잠자리는 하늘 위로 날다가 그만 밝은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깐의 어둠 잠깐의

흐림 그리고

온몸을 타고 오는 하얀빛에 그는 환희에 찬 절정으로 신음하다 모든 것이 정지됐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완전한 무!

그것은 삶의  쾌락이 아니라 죽음의  절정 같았다, 거대한 텅 빈 세상은

잔갑련의 손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자 끝이 났다.

그는 현실로 돌아왔다.


잠시 넋을 잃고 정신을 차렸다.  나른한 몸의 감각 사이로 다시 풀향기가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왼손은 휴지를 감싸 안았다.  구멍에서 휘어진 남자가 사라지자

휴지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마치 목련꽃 잎사귀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액냄새와 아로마향이 가득한 방에서 나와

 바깥공기가 맡고 싶어 졌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남자는  바지를 올리고 엉거주춤

 모습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일행들은  이제 춤추는 여자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야 너 저안에 들어간지 30분이나 지났어.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정신이 없어. 술도 깨고. 기분도 이상해. 개운하긴 한데...

그는 갑자기 이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두운

조명들이 갑갑했고

여자들은  슬픈 음악속에서 흐느적거렸다.

그가  일어났다.

"야!  나 그냥 집에 갈래. 아무래도 이런 기분으로는 술 마시고 싶지 않아."

"뭐야! 도대체 뭔데....."

"야야 우리도 그만 가자 오늘 술맛 다 버렸다."


일행은 한동안 술렁이더니 술값을 계산하고 사라져 버렸다. 홀안은 텅비었다.


박용재는 그들을 지켜보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피팅룸 안은 빨간등이 켜지고 한동안 바뀌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