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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ug 01. 2021

엽편소설

  그녀는 왜 그랬을까

폭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데 재즈음악모임  경성 멤버인 5살 위 향단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내일모레 토요일 내가 맛있는 거 살 테니  선비님 하고 셋이서 술 한잔 해요."


모처럼의 살가운 초대에 특별히 할 일도 없던 나는 " "라고  답장을 보냈다.


뜻하지 않은 초대에 가볍게 갔다가 우리는

그만 폭탄을 맞았다.


맛있는 오리백숙을 먹고  인생이 아름답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소녀 같던 그녀를

나는 네 번째로  만났다. 늘 무리 속에서 만나서 가벼운 농담만 주고받았기에

옆자리에 앉아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눈부처를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우리 모임의 리더 선비는  사적으로  향단이라 불리는  그녀를 번개에서 자주  만나서  서로 잘 알았지만  공식적 모임만 참석했던

나는 두 사람을 잘 알지 못했다.

처음 초대를 받고 나는 의아하게 리더에게 물었다.


왜 저죠?

왜 선비님과 점순이 우리 둘이죠?


우리는 모임 안에서 이름이 아닌 서로 닉을 부르고 있었다.


선비는  

"그냥 향단님이 점순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런 거 같네요"

라고만 답했다.


 우리 셋은  저녁을 먹고  녹음이 우거진 계곡에 자리를 깔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머릿속을

청정하게 비우고 있었다. 그렇게  늘 어느 만남이 그렇듯이 특별한

대화보다는

자연의 푸르름 앞에 "좋다"라는 말들을 연발하며

인생의 화양연화를 즐기다

헤어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빛이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그때  어둠 같은 짐승이 해를 등지고 몸통을 들어내듯 향단의 입에서

이야기들이 튀어나와 버렸다.

다시 주어 담지 못할 말이 계곡 물속으로 풍덩 빠졌다.


"나 처음으로 외도를 했어요. 남편이 아닌 남자와 바람을 폈어요."

물결이 우리들 얼굴로 튀었다.

"우리는 1년을 뜨겁게 사귀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 그 사람과 헤어졌고요.

우리 모임 사람이에요.

아직 이별한 지 얼마 안돼서  온라인상에서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선비와 난 서로 할 말을 잊고  눈만 휘둥그래져  있었다.


"근데 알고 봤더니 그 사람  쓰레기였어요.

나한테 접근하게 돈 때문이었어요.

사랑이 아니라. 

욕정과 돈 단지 그것 때문이었어요.

그런 인간의 유혹에 넘어갔던 내가 너무 싫어요."


평온하던 머릿속에 칼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든 이들에게 호감이었던   바로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었다.


선비와 점순 향단이 그리고  경성 모임이라고 이름 지어진 재즈음악 동회 모임 20명 우리 모두의  모던보이였던 허균 바로 그였다.

그는 유머러스하고 다정하며 매너 좋고   돈도 많아 늘 모임에서 지갑을 열었고,  배려 넘치는 매력남이었다.


그녀가 무수한 밤을 울었고 마음을 쥐어뜯었고

슬픔으로 베개를 적셨던 시간은

지금 그녀의 허탈한 목소리 속에 모두 담겨 있었다.


양파를 까듯 수위 조절이 안 되는 그녀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준비가 안된 그와  난   오롯이 충격에 휩싸여 이야기의 쓰나미를 받아내야 했다.


분위기에 취해서 우발적으로 나와버린 그녀의 진실 앞에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나는 그녀의 고백에 그녀의 편이 되어 그녀를 공감하고 위로해야 한다고 방향을 잡았다.

그녀는 지금 함께 분노하고 울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


"향단님 지금 괜찮은 거죠! 이제는 좀 뻔뻔해져야 해요.

향단님은 잘못한 게 없어요. 왜 자신이 싫어요.

인생에 한 번쯤 교통사고 같은 사랑에 빠져요

자신에게 외도라는 도덕적 잣대 들이대지 마요!"


나는 그녀를 공감하고 긍정했다.


"내가  서른이 되도록 연애 한번 안 해보고 지금 남편과 결혼했잖아요

난 남자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어요

그놈이 3개월 동안

끈덕지게 날 꼬셨어요.

서로 가정이 있으니까.

난 꿈쩍도 안 했어요.

근데  어느 날  남편하고 심하게 다투고 나서 그만 나도 모르게 넘어간 거예요.

우린 한 달에 한두 번 만났는데 너무 좋았어요.

 근데 8개월 정도 사귀고 나서 그때부터 자꾸 나한테 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돈이 없는 놈도 아니면서 자꾸 요즘 힘들다느니 뭐 그런 얘기를요."


나는 일차원 적인 질문을 던졌다.


 "향단님한테 직접 돈을 요구했단 거예요?"


"아뇨 그런 직접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선비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녀와 내 이야기만 듣고 있다 한마디 꺼냈다.


"그냥 둘이 좋아하다가 헤어진 거잖아!  서로  잠시 즐기다가 유효기간이 끝나서

헤어졌으면 된 거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향단 씨  그 사람 모임 사람이면 퇴출시키기를 바라는 거야.?"


선비의 질문은 명료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냐?

그냥 좀 괴로워서 어디 얘기할 때도 없고 누구한테ㅡ상의도 못하고

두 사람이면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잘못한 거 알아 내가 바보지 그런 쓰레기 같은 놈한테...


우리는 서로 약속한 듯이 서로 반말이 됐다.


"언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냥 잊어.

 잠깐 사랑하다 헤어진 것

뿐이야, 그놈이 쓰레기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모든 사랑은

끝나면 쓰레기가 되는 거야!"


나는 흥분하며   힘주어  말하면서  내가 그녀의 편임을 강조했다.


문득 그녀 의  손가락 사이로 빛나는 반지와 팔찌가 시선에 들어왔다.

나는 걸리적거리는 것을 싫어했다.

반지는 늘 한번 끼면 잊어먹기 일 수여서 아예 껴본 적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녀의

목에는 금도금 목걸이 외에도 옥으로 된 구릿빛 목걸이가 두 겹으로 빛나고 았었고,

옷에도 스파클 무늬의 십자수가 빛나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꽤 미인의 반열에 올랐을 뻔 한 미모였다.

마른 몸매가 왜소해 보였지만 균형 잡힌 몸매였다.

갑자기 그녀의 시선이  나의 온몸을 스캔하더니

나의 풍만한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는 잠시 오싹하는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입꼬리가 축 쳐지더니

경멸하는 조의 어투로 말을 이었다.


"글쎄 그놈이  한 달 전에 나보고 가슴수술을 좀 하는 게 어때?

그러는 거야.

처음 만날 때는 일본 만화 여주 같은 내 납작한 가슴이 이쁘다고

주무르더니 이제 와서 가슴 수술을 하라고 그러는 거야

쓰레기 같은 놈이...."

나는 마치 내 가슴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 마냥 느껴져서 잠시 가슴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선비가 끼어들었다.


"늘 모임을  이끌다 보면 이런 게 문제가 생기는데.... 리더로서 쫌 내 역할에 고민을 하게 돼

다 큰 어른들이 뭐 서로 좋아서 그러는 건데... 내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되는지 그것도

애매하고... 서로 알아서들 잘 마무리해."


"난 이제 괜찮다 졌고 얘기하는 거 뿐이야.   오늘 괜히 분위기 때문에 두 사람한테

고백해 버리고 말았네... 두 사람한테만 이야기하는 거니까 두 사람은 그냥

안 들은 걸로 해 줘!"


선비는 이런 이야기가 불편해진 듯 시계를 보았다.


주위에는 돗자리가 걷어지고 나들이 객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슬슬 일어나자고 이야기하고

리더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일어섰다.


그녀와 나 단둘이 남았다.


향단이 엉덩이를 들어 내옆에 몸을 밀착 시키고

나를 지긋하게 보더니 갑자기

쌀쌀맞은 표정으로 변했다.



"자기 지난번 모임에서  허균  맞은편 모임에 앉아 있었지?"


"네 언니 그랬던 거 같던데..."


"그날 쫌 뭔가 이상했어.  허균이 문자를 쓰면

자기 카톡에서 진동이 울리고 자기가 카톡을 확인하더라.

그리고 자기가 카톡에 뭔가 쓰면 허균이 또 맞은편에서 문자를 확인하고!"


나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점순 씨 솔직히 말해 허균이란 둘이 사귀지?

그때부터 이상했어 허균이 큰 가슴 운운하면서... 날 피하기 시작했거든

부쩍 모임에서 자기한테 친한 척하고...."


"언니 도대체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예요? 설마 절?"


그녀의 사랑은 끝난 게 아니었다.

집착과 함께 새롭게 시작되었다.


단지 가슴이 크다는 이유로  허균이 나에게 친절했다는 이유로 나는 그녀의 표적이 되어

한동안 그녀의 추궁을 받아야 했다.


아 슬픈 사랑이여.

슬픈 애정행각의 끝이여!

나는 사랑이 싫다.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사랑이 밉다.

우리의 사랑은 어디에서 표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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