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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ug 25. 2021

폭력

모서리

엽편소설

"있잖아! 너 B팀 김정숙 씨 알지?

"누구?"

"왜 맨날 까만 패딩조끼에   얼굴에 항상 다크서클이 쫙 끼고 맨날 이어폰 끼고 다니는

여자!"


"아!  가끔 지나가다 인사해도 개무시하는 여자?"


내가 그들 옆을 지나쳐 가자.

그들은 차를 마시다 말고  나를 힐끗 보며  말을 멈추었다.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여자가

 상대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 자살시도를 두 번이나 했었데!"


그들은 내가  시야에서 멀어지려 하자

마치 B팀 팀장인 내가 들으라는 듯이  

다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 난 그 여자  저승사자 같아"


"야 저승사자는 멋있기라도 하지.

난 그냥  딱 좀비 같더라"


두 여자는 잠시 후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봄날.

 꽃잎처럼 흩날려  바닥에 떨어졌다.

난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발로 짓이겼다.


더럽게 남긴 흔적을 발로  지우고

눈살을 찌푸리며 창밖을 보았다.


연둣빛 푸르른 잎사귀에 손을 가져다 대면

초록빛 녹음이 묻어날 것만 같았다.


꽃놀이에 마음이 부산해지고. 꽃무늬 원피스만 보아도 마음은 계절에

미쳐서 날뛰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4월은 도시 노동자에게 가혹한 달이다.

 컴퓨터 화면에 꽃 사진이라도 띄워놓고 마음이라도 달래야 했다.


그때  김정숙이  지나쳐 갔다.


그녀는 자리에 가방을 놓고

긴 롱 코트를 벗고 검을 패딩조끼를 걸쳤다.

그녀 곁에서  겨울 응달에 매달린 고드름 같은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속눈썹 사이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나를 보는 듯했지만 스쳐가는 그림자처럼

어두 었다.


출근을 하고, 이어폰을 꼽고 고개를 숙이고 나면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겨울과 봄 사이 계절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은 새싹은 동그란 눈을 뜨고

대지를 향해 손을 뻗지도 못하고 웅크린 체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또 하나의 계절 속에 유배돼버린 그녀의 대지는

타인들의 계절마저도 가두어 버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와 함께 찻잔을  마주 잡았다.


"요즘 뭐 즐거운 일 없어?"


조용히 그녀를 한번 채근해 보았다.


이렇게 그녀에게 편하게 말을 꺼내기까지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일 년을 같이 일해도 늘 혼자서만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면서 잘 말을 지 않는 그녀였다.


가끔 잠깐이라도 얼굴 보며 함께 하는 시간에도 그녀는 일 이야기 이외에는 그 어떤 사적인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다.


혼자 일방적으로 수다를 떨다 자리를 일어날 뿐 그녀는 나의 수다에 피드백이 전혀 없다.


 의사표현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녀는 그저 다수에 묻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하세요. 모두가 원하면

저도 하는 걸로 할게요. "

그녀가 자주 쓰는 말이었다.


그녀에게 일 이외의 어떤 일에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은 바닷가 갯벌에서 가재를 건드리는 것과 같아서 그녀는 점점 자기 구멍 속으로 숨기만 할 뿐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가정폭력의 잔상!

남편의 폭력을 10년이나 참으면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폭력이 고통스러운데 피해자들은

왜?

 도망가지 않고 맞으면서 살지?

아이도 있는데... 아이가 불쌍하지 않나?"


어느 날은 자기 의사 표현이 서툰 그녀를 보면서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혼자 툭 내뱉은 말에

나는 당황했다.


 "저렇게 답답하게 대응하니까 맞고 살지......"


마음속에 튀어나 온 말을 주어 담으면서

그녀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움찔했다.


그렇게 1년을 기다렸다.

그녀는 아주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씩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고

말을 시키면 조금씩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고.

가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팀원들 커피를 배달해 오기도 했다.


 싱거운 농담도 한 마디씩 던지고

단톡방에 시시껄렁한 노래 가사를 올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화창한 봄날 그녀를 꼬들겨 내어

 밖으로 나왔다.


"너의 이야기를 한번 해봐"

커피 향을 그윽하게 깔고 자연스레 그녀 속으로 쑤욱 들어가 보았다.


"뭐가 그렇게 알고 싶으세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들이에요.

상담할 때 지겹게도 했고요. 겨우 잊었다 싶으면 또 생각나고. 이제는 뭐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긴 호흡을 하며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요즘 만나는 친구라도 있니?"


라고 질문을 하려다가 적절한 단어를 다시 찾았다.


"요즘 만나는 친구 있니?"


그녀에게는 단어 하나에도 다시 상처가 덧나서

찢어질 수 있었다.


이런 나만의 배려일지 모르는 언어의  성가심이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섬세함이   언어 사이에 흐르는 리듬처럼 조금 나에게 자연스러워진 것은 어쩌면 그녀와 나 사이의 길들여짐인지 모른다.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


그녀는 질문과 질문 사이에 또 짧은 침묵의 여백을 끼워 넣는다.


엄마가 아이를  다그치는 순간.

어린아이가 잠시 변명꺼릴를 찾는 그 잠깐의 찰나처럼

그렇게 잠깐의 침묵 뒤에 그녀는 입을 연다.


"아뇨 전

사람을 아무도 안 만나요.

별로 할 얘기도 없고  대화라는 게 전부 자랑질하고 자기 알아달라고 인정 욕구만 넘쳐나는 얘기들 뿐이라서. 어쩔 때는 그들의 얘기들이 전부 진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일까. 의심스럽고. 또 이런 수다들이 다 의미 없이 느껴지고

전 사람을 만날 필요를 못 느껴요.


차라리 그 시간에  혼자 있는 게 좋아요. 혼자 드라마 보고 음악 들으면서 재미있는 쇼프로 보면서  그냥 웃으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저한테는 훨씬 유익해요."


 잠깐의 대답이 끝난 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체념하는 몸짓으로

고개를 떨구며 미역국에 수저를 넣고 젖다가 밥을 말고 또 그렇게 말문을 닫는다.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었던 그녀와 단둘이 늦은 점심을 먹으며

마치 또다시 처음 만난 사람처럼 새로운 기억이 세팅된 것처럼

지난번 성큼 가까워졌다고 느꼈었던 우리의 거리는 다시 멀어진 걸 느낀다.


또다시 그녀 사이로 폭력남편의 잔상이 파동처럼 느껴진다.


  자살시도의  흔적들이 또 지나쳐 간다.


나도 조용히 식사만 하면서 그녀의 침묵에 묻혀 고개를 떨구며 밥을 먹는다.


수저를 놓으며 그녀가 진지하게 묻는다.


"팀장님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시간이  뭐가 즐거운 거죠?"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걸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니......


어떤 얘기를 해야 하나?


사람들과의 대화가 왜 즐거운가!


갑자기 며칠 전 그녀가 나에게 불쑥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한테서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죠?"


라는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난 그녀의 불행한 이야기를

위안삼아 들으려고 했었던 건가 왜 이 짧은 순간에 이 이야기가 떠오른 건지......

그녀의 답을 기다리는 눈빛을 읽으며.


난 조심스레 답해야 했다.


"나도 너처럼 한때 사람을 멀리했던 긴 시간이 있었어. 근데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이 좋아!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웃고 떠드는 사이  난 내 모습을 보거든 나한테 말 걸고 있는 내 모습

난 이럴 때 즐겁고 난 이럴 때 아프고 이런 모든 내 모습으로 본다는 게 난 좋아.

사람들과 얘기하면 그들이 내 모습을 보여주니까!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순간도

난 나를 긍정할 수 있어서 좋아. 난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를 해"


그녀는 나의 대답에 아무런 피드백도 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들었다.


또다시 침묵이 흐르고.


 우리는 마지막 밥그릇을 비우자 식사도  함께 끝이 났고

그녀와의 시간도 끝이 났다.


식당을 나오자 그녀는 다시 내가 열어젖히지 못하는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끝이라는 듯 그녀는 앞서서 조용히 걸어갔다.


어차피 이런 서먹함을 감수하고라도 함께 식사를 제안한 건

나였으니까 난 그녀와 나의 이런 방식을 어느새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 그녀라는 사람을 내 생각대로 재단하려는 마음을 중지했다.


그녀에게 나의 시간과 마음을 주고

우리가 나눈 대화가 스며들어서

내 입맛대로 그녀를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자르고 붙이고 꿰매는 행위로써 그녀가 나의 일부가 되었다고 자부하고 만족한 미소를 띤 적도 있지만.

내가 그녀를 어떻게 안다고 하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변화를 주고 위안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나의 그녀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그녀를 위한다는 나만의 의미와 강제적인

마음으로 인해 그녀를 더욱 채근하고 그녀의 생명력을 더욱더 사그라들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무관심이 그녀를 더 위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오만과 편견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가 가지고 견고하게 기반을 다져둔 무수히 뾰족하고 기이한 오만과 편견들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이 무방비하게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녀가 수저를 놓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은 아프지만 날 안심시켰다.

그녀는 이제 진짜

자신의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난요 모서리가 너무나 많은 사람이에요. 난 내 모서리를 들키는 게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모서리를 둥글둥글하게 해야 한다고 나한테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그래서 용기를 내어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전 또 그들의 모서리에 찔려요. 그렇게 또  모서리에서 피가 나요.

그래도 노력했어요. 모서리가 둥글게 되기를 바라면서요.

근데  그거 알아요?

전 둥글어지기는 커녕 더 많은 모서리들이 생겨 났어요.

어느 날은 하나가 더 생기고 또 다른 날은 더 많이 생겨요.

그리고 이제는 그 모서리가  날 찔러요.

근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모서리를 둥글게 하라고만 저한테 늘 이야기만 해요.

아직도 이렇게 아픈데...."


그녀의 뒤에서 속도를 맞추어 걷는다.


무심한 봄볕이 내리쪼인다.

 말없이 그녀 곁에서 걷는 시간에 익숙해지고 있다.


또한  마주 보면서 기다리는 법에 편안해져가고 있다.


날이 너무 좋았다  봄 벚꽃잎들이 떨어진 자리 열매들이 푸른 잎들을  떨구어  내고 있었다.


난 또 며칠 후 그녀와 눈 맞추며 밥을 먹을 것이다.


#소설

이미지는 다음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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