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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Sep 14. 2021

물 많은 여자 (13편)



작은 원룸 창 안으로 햇살이 부서지는 아침.

 속 쓰림과 함께  전갑련은 눈을 떴다.


지옥 클럽 6층 꼭대기의 집에서 박용재의 집 안방 침대 안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괜시리 혼자 얼굴을 붉혔다.


아침에 서로 한 공간에  있었다면  그 어색함이 어땠을지 생각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하고 작은 화장대 앞에 앉았다.

짐이라고는 작은 손가방이 전부인 방안에 유일한 고가품은 노트북 하나가  전부였다.


"뭐야  짐이 이게 다야"

친구 현숙이 집들이 왔을때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실망하면서 했던  첫마디였다.

그녀는 갑련의 손에  돈봉투를 쥐어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 너 이렇게  사는거 맘 아파서 못보겠다."

전갑련은 친구의 눈물 앞에서 당황했다.

그녀는  다시 돈을  돌려주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 야  홍현숙 울긴 왜 울어? 너 지금 이거 우정의 눈물이면

실수 하는 거다. 돈은 또 뭐냐 지금 나!  동정하는 거냐?"

 그녀가 손을 잡아 끌었다.

"계집애. 그냥 맘이 안좋아 .너 이렇게 사는게."


"홍현숙 니가 내 친구면  제발 니 기준에서 좀 날 보지마!

넌 나 전갑련을 그렇게도 모르냐? 나 돈한푼없이도 잘살아 왔어!

전갑련은 자신이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한번 어긋난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번 더 이런 값싼 싸구려 눈물 흘리면

내 앞에서 친구고 뭐고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갑아 내가 그런뜻이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왜이렇게 예민하게 굴고 그래?"

그녀는 친구에게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 번거럽고  피곤했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경제적으로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것도

불편했다.  


"현숙아 너한테 까지 내가  마음 아프게 하는 존재가 되는건 싫다.

그만 돌아가 오늘은 아무 얘기 하고 싶지 않다."

그녀들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지만  오늘까지 홍현숙에게 전화가 없었다.


그녀는 간단한 화장을 하고 서랍 장안에서 통장을 펼쳤다.


빠져나가지 않고 고스란히 곳간을 지키고 있는 돈.

그녀는 한때 이런 돈이 신기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인하곤 했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돈에 배가 불렀다.

많지 않은 월급을 받는데도 그게 쌓이니 목돈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허무가 밀려왔다.


밑 빠독이었어도,  달달이 은행 빚을 갚을 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올라왔다

고작 그거였다.

통장에 쌓이는 돈에 행복을 느끼고 또 기를 쓰고

모으고 싶은 욕망.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함이 그녀를 이 악물게 했다면

이제는 돈이 쌓이는 그 짜릿함에 그녀는 또다시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녀를 평생 옥죄고 있는 무서운 괴물 같은 돈.

그녀가 돈을 다 갚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외친 그다음부터 이제는 또 다른

새로운 괴물이 자신을 덮치고 있었다.


은행 빚을 다 갚고 3개월 뒤  통장의 잔고가 불어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와 어머니는 한가로이 점심을 먹고 공원 밴치에 앉았다.


" 갑련아 우리 이제부터는 열심히 벌어서 집도 사고 해외여행도 가자"


그녀 어머니가  어깨를  토닥이고 쓸어내리면서 했었던 이 말은

전갑련 인생의 시계 초침이 또한번 멈추어 버린 그날이었다.


그날 그녀 앞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첩첩 히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 과  명품가방을 사기위해  백화점에서 줄서있는 행렬들.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

그 모든 광경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멀리서 환청이 들려왔다.


도대체 얼마나 돈을 또  벌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뛰고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삶에 아무런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이 아파왔다.

손가락이 붓고 아파왔다.   물리치료사에게 손을 못쓴다는건 사망선고 와도 같았다.

엄청난 우울감이 하루를 지배했고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인생에 있허무라는 감정은 잠시스쳐가면 그만이지만

절망이라는 종착역을 만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



전갑련은  2개월 동안  죽은 목숨처럼  숨만 쉬고  살았다.

그녀는 그때  죽지않기 위해 결심했었다.

이제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그  두 달 동안의 고통의 시간이 빚에 허덕이던 시간보다  열 배는 더 힘들었었다.


그녀는 통장을 내려놓고, 다짐했다.


 이 괴물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돈만 버느라  앙 다물고 산 지금까지 충분히 구질구질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고.

그리고 더 이상 돈을 모으지 않기로 했다.

 돈이라는 괴물을 인생에서 추방하기로 했다.


그녀는  노트를 펼쳤다.


(겨울 냉동고를 열었다.

 차갑게 얼어있는  큰 고통의 얼음덩어리들이 산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망치를 가져와 한 조각을 내리쳤다.


 얼음을 눈꽃빙수로 갈아서 만들었다.  위에다 팥을 뿌렸다. 그리고 맛있게 먹을 계획을 짰다.

앞으로 남은 인생  얼음창고에 쌓인 얼음은 충분했다.

눈꽃빙수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간단한 메모를 끝냈다.


통장에 찍힌 400만 원.

그녀의 소비기준으로 400만 원이라는 돈은  한 달 월세를 내고도  6개월은  놀고먹어도 되는 돈이었다.


우유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그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오전에 김광숙 할머니를 케어하는 일 말고도 오후에 다른 수급자를 알아볼까 망설였지만

그만두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6개월은 가슴 떨리는 뭔가를 하자."


핸드폰에 다해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 할머니가 계속 다른 수급자로 교체해 달라고 고집을 피우시네요.

전화 주세요.)

그녀는 노트북에서 할머니 파일을 열었다.


김광숙 할머니, 70, 가족이 없고,

노인성 치매가 진행 중이며, 인지능력은 아직 조금 있으나, 폭력적이며 타인들을 멸시하는 언어와

불안장애 기타 뇌경색 초기단계 진입단계가 의심됨.

현재 기초수급자이지만 , 비교적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 집에 다녀간 흔적이 있음. 서류상으로는 아들이 없지만 아들이 있다고

횡설수설하며, 누군가 자신의 돈을 갈취해 갔다고 의심하고 돈을 찾아야 한다고 중얼거림.


방문일지는 간단했다.


짧은 신호음이 들리고 핸드폰 속  다해가  받았다.


"네 전 선생님 반가워요."

구다해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 구선생님 할머니 문제로 좀 물어볼 게 있어요. 할머니 형제분이나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자식은 없고 여동생 하나 하고 남동생이 하나 삼 남매시네요."


"혹시 할머니가 생전에 무슨 일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야 모르죠! 저희 센터로 옯기신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네. 일단 오늘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를 한번 더  설득해 볼게요."


싸워를 하고

붙박이장을 열어 옷을 고르던 그녀는 등산복을 만지작거리다. 꺼내 들었다.


최형국의 손길이 구석구석 어 있는 낙원 여인숙의 밤이 떠올라

잠시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문득 어젯밤 박용재를 향한 자신의

수 없는 감정의 아찔함도 이런 뜨거운 욕정의 흔적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남자와 몸을 섞는다는 일이 이렇게 온몸의 세포들을 깨우는 일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와 함께  모멸감도 올라왔다.

최형국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처음 전주의 병원에서 우연히  최형국을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은  컸었다.


그녀는 빚을 다 갚은 상태였고,  그 홀가분해진 마음 뒤로 어릴 적  첫사랑으로 남아 있는  남자아이를 우연히 조우한 것이다.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산악회 동호회 모임에 참석했지만.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자기 인생의  가장행복했었던  과거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그녀가 동경하는  멋진부모.

멋진 집  멋진차.

최형국은 그녀에거 백마탄 왕자였다.

서울에서 전학 온 얼굴이 하얕고 손이 긴 남자아이를 몰래 좋아했던 그런 어린시절을

떠올리면서 가끔은 지옥같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불현듯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남자들의 성기를  수백 번도 더  잡았으면서도 성적으로 둔감했던

그녀가 그를 유혹했던 이유는

그에게 성적 충동을 느껴서도

애정을 느껴서도  직업적 호기심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광이 번쩍이는 차를 타고 사라지던 최형국의 마지막 모습에서 질투와 동경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에 대한 묘한 반발 의식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는  분명  금수저 집안의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을테고, 자신은 잊혀졌고.

 부유하게 살고 있을 남자의 가정에 대한 묘한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그녀는 손 안에서 그를 굴복시키고 싶었다.

그녀의  이런  삐뚤어진 마음과 달리

그와 보낸 그 밤은 꿈처럼 달콤했다.


이중적인 그녀의 마음은 어린 시절의 최형국과

현재의 최형국 둘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밤 이후로 그녀는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만약 최형국이 자신과의 옛 기억을 떠올렸다면 아마도

학교 동창들을 수소문해서라도 자신을

찾아냈을 것이다. 최순남 여사를 아세요? 하는 그 질문을 한 번쯤은 떠올렸다면 말이다.

하지만 6개월이나 지나도록 그에게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김광숙 노인의 집을 향해

 20분 정도 걷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은 최형국의 희미해진 육체 위로

어젯밤

화려한  독수리 문신 속에서  꿈틀대고  있던 술 취한 박용재의 건장한 육체로

오버랩되어 그의 근육 속에 파묻힌 나체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느새 할머니의 집 앞이었다.


노인은  그녀의 벨소리에 차분한 눈빛으로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러닝 차림인 노인은 처진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전날 기품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전갑련은 불길했다.


기고만장해 있을 노인을 생각했지만 그녀는  무언가에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여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한참을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던 노인의 얼굴이

갑자기 험상 굳은 얼굴로 변했다.


"맞아 네가 그랬어. 네가 어제 예삐 음식에다가 독을 넣은 거야!"

안 그러면 우리 예삐가 아까부터 저렇게 토할 리가 없어. 숨도 못 쉬고 죽어가고 있어.

도대체 우리 예삐 음식에다가 뭘 탄 거지 이년아?"


순식간에 노인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달려들어 소리를 질렀다.


전갑련은  저항 없이 순순히 머리채를 잡혀 주고 있었다.


머리채를 잡고 흔들던 노인은 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멈칫거리면서 숨을 고르었다.

그리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독한 년 뭐하는 물건인데 이렇게 돌부처 같은 거야? 우리 예삐한테 뭔 짓을 했는지

빨리 말해"


노인의 엄포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른 일어나 안방으로 갔다.

방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강아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문 여세요 할머니 강아지 상태를 봐야죠.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거 아니에요."


"너도 그놈하고 똑같아! 내 돈 갖고 도망간 그놈 하고 한 통속이지?"

노인은 갑자기 힘이 빠졌는지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 이이고 내 돈 그 돈이 어떤 돈인데..."


"할머니 강아지가 죽어요 빨리 여세요."


노인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전갑련은 다해에게 전화했다.


"구선생님. 할머니 댁에 문제가 생겼어요. 부탁이 있는데요.

강아지가 죽어가는 거 같아요!

여기서 가까운 동물병원이 어디죠?

제가 오면서 봤는데 가까이서는 보지 못했어요.

미안하지만 차로 김광숙 할머니 댁으로 좀 와주시겠어요?"


"할머니 강아지 살릴 수 있어요. 어서 문부터 여세요."

그녀는 거실을 살폈다. TV 옆에 열쇠 꾸러미가 눈에 띄었다.

다행히 맞는 열쇠가 있었다. 방문이 열리자, 방안에는 여기저기 강아지가 싸 놓은 똥과 토한 분비물로 악취가 진동했다.

강아지는 꼼짝 않고 누워 얕은 숨을 쉬고 있었다.

작은 교자상에는 물김치가 한 그릇 놓여있었고

바닥에 죽그릇이 떨어져 있었고 죽이 방바닥에 흩어져있었다.


순간 그녀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전날 베란다에서 본 가성소다가 생각났다.



그녀는 강아지를 한쪽에 누이고 빠른 동작으로 죽그릇을 치웠다.

방을 닦고 죽을 담아 화장실에 버렸다.


그때 벨소리가 울리고 구다해가 들어왔다. 노인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들은 강아지를 안고 노인을 진정시킨 후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노인을 혼자 두고 가면 안될 거 같았지만 강아지가 위독했다.


그들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아지는 숨을 거두었다.

의사는 뻣뻣해진 강아지를 살피면서 말했다.


"강아지가 독극물을 먹은 것 같네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갑련은 의사에게 거짓말을 했다.

"제가 옆에 있었는데. 강아지가 밖에서 쥐약 같은걸 잘못 먹은 것 같습니다."


개 주인인 할머니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

이 일은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강아지 시신은 병원에 두고 그들은 일단 병원을 나왔다.


차 안에서 전갑련은 말이 없었다.

구다해는 영문을 몰라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정황상 제 생각에는 할머니가 자살을 하시려고 한 것 같아요.

그 음식을 강아지가 먹은 거 같고요"


"네?"


구다해가 놀라 핸들을 멈추었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빨리 할머니 집으로 가요.

할머니 상태가 안 좋은데 지금 강아지가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들이 도착했을 때 노인은 같은 자세로 그대로 앉아있었다.


전갑련은 베란다로 가서 가성소다 통을 들고 나왔다.

쓰레기통에 전부 쏟아 버리고 안방으로 가서 청소를 시작했다.


구다해가  다가가 노인에게 말했다.


'여사님 강아지는 며칠 병원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목숨은 건졌어요.'


노인은 정신이 들었는지 마른눈을 깜박이며 일어났다.

그녀는 침착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정말!  다행이야. 이젠 됐어. 우리 예삐 방을 청소해야지"

자네들은 이제 그만 가봐 애썼네!"

노인은 위엄을 갖추려고 거울앞에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구다해를 배웅하면서 전갑련은 말했다.

"오늘은 제가 여기 저녁까지 있을게요. 할머니 정신이 오락가락해요.

사무실 들어가면 가족분들 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반지하방에 오후가 되자 연한 가을 햇살이 창문 틈 사이로 새어들고. 전갑련은 간단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노인은 신경안정제 한 알을 복용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번호를 하나하나 누르면서  점점복잡해지는 마음으로

그녀는 노인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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