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여행

과거의 기억

by 토끼

감정여행을 떠난다.

가만히 앉은 채로 눈을 감아도 되고, 마음을 집중해도 된다.

이렇게 여행은 몸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떠나게 해야 할 때도 있다.

감정 여행은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 지금 내가 느끼는

상태와 과거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전부이다.

행복했던 감정과 불행했던 감정 모두를 포함하지만 행복했던 감정은

인간들이 느끼는 모든 비슷한 상황들이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의

여행지가 아니다. 특별한 감정이란 오히려 불행했던 형태의 감정들이다.

그 감정의 결이 진짜 내가 누군지를 설명할 수 있다.

행복에 반응하는 우리 모두의 감정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의 행복은 자신의 기준이 아닌 학습된

행복의 기준에서 느끼는 동일한 감정을 강요받아왔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생일을 맞는다면 부모는 생일 파티를 해준다.

생일날 내가 원하는 맛있는, 음식 갖고 싶은 물건, 모두의 관심을 차지할

그 어떤 요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생일날 그날 하루만큼은 내가 주인공인 셈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행복이란 이런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생일잔치의

추억처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장치와도 같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재미있는 놀이들. 생전 처음 가본 아름다운 장소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더 많은 행복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님에게 맞았던 감정들. 외톨이가 돼버린 것 같던 감정들.

두렵고 무서웠던 어린 시절의 감정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망각의 강속으로 떠내려가 버린 부정적인 어린 시절의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껄까?

사라졌을까?

그것은 무의식이란 세계 속에 꾹꾹 눌러져 있다.

어린아이가 느끼는 슬픔, 분노, 상실의 감정은 어떤 모습으로 차곡차곡 쌓여있을까?

감정 여행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무의식이 지배하는 이런 어린아이의

감정들이 모여진 정신의 영역이다.


인간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감정들을

스스로 억압하고 이런 감정들을 무의식은 하나하나 저장해 둔다.

그리고 무의식에 저장된 모든 감정들은 활화산처럼 언젠가는

터져버릴지 모르는 용암 덩어리로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숱한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한꺼번에 밀려올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감정의 쓰나미를 맞기 전에 아주 조금씩

가랑비처럼 과거의 감정들을 맞으러 여행을 떠나야 한다.

마음의 여행은 혼자 고요히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 안에서 길을 잃어버렸거나,

웅크리고 있는 무수한 나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서로 나누고 오는 여정이다.

어제의 감정일 수도 있고, 수십 년 전의 감정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실수를 범하는 수가 있다.

그때 그 순간 끔찍했던 경험 속들을 떠올려 본다.

나를 덮친 사고 현장들, 타인들의 폭력들,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의

그날의 공기, 나를 소외시켰었던 사람들의 시선, 폭력이 난무했던 그 방안의 물건들, 아무렇지도 않게 사망선고 같은

질병을 이야기하는 의사들의 무심한 말들. 비수가 되어 돌아왔던 문자 메시지들.

이 모든 순간들을 그 어떤 상황들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은 상황이나 사건이 아니라.

그때 느꼈었던 모든 감정으로 인한 몸의 기억들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상황이나 , 사건, 증상들이 아니라

바로 그때 느꼈던 감정의 느낌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범하는 실수는 감정의 느낌들이 아닌 그때의 부수적인 것들을 더 많이 떠올리곤 한다.

그때의 사건들. 그때의 상황들이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을 떠올리거나, 그때 그 장소, 그때 그 시간, 그때 그 냄새, 이런 다양한 상황이나 부수적인 비슷한 상황만으로도

몸이 거부감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교통사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그날 그 사건들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타인들의 폭력에 따른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그날 그 사람의 표정과 느낌들에 마음이 반응을 한다.

기억은 시각적 이미지에 훨씬 떠 깊고 강하게 나를 끌어들이지만 내가 정작 어떤 감정을 정확하게

느꼈는지는 나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의 디테일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은 생각할 줄을 모른다.

우리는 단순하게 좋지 않은 상황의 큰 줄기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그 비슷한 상황이 오면

기억은 어김없이 반응을 해서 불안감과 두려움 공포를 일으키게 한다.


우리의 기억은 그만큼 감정이라는 것은 몸이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고,

정확한 느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대해 무지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거부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지 않은 상황을 겪었을 때 그 상황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감정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장소에 갔을 때 아름다운 광경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느꼈을 때의 감정은 무시하는 것과도 비슷한 경우이다.

내 마음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 감정의 파장과 느낌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당연한 것이고,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 만큼은 예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설명하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너무나 변화무상한 감정을 설명하는 건 쉽지가 않다.


감정의 여행을 떠나는 목적지는 행복과 불행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야 한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빛을 서 서서히 찾아나가는 여정이 올바른 여행경로이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찾을 수가 없다. 어둠 속에 빛이 더 강열하듯이

불안 속에서 평온함을 더 깊이 찾아낼 수가 있다.

내 인생을 갈라놓은 사건은 바로 7년 전 바로 그 사고 때문이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눈을 감고, 제일 처음 내 트라우마의 시작이 되었던 사고를 당했을 때의 그 순간으로 먼저 여행을 시작한다.

그때의 상황이나 날씨 장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때의 감정 속으로만 들어가 본다. 그리고, 그 사고의 후유증으로 찾아온 감정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트라우마라는 불덩이를 만들어내었던 감정들의 파편들 한 조각 한 조각들을 찾아서 떠올려 본다.

그때 그 사고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하나하나씩 찾아오는 질병들을 겪을 때마다 새롭게 만나는 감정들을 기억해 낸다.


감정의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그때 저항하고 두려워했던 나의 감정들을 내가 온전하게 느끼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그 감정들에 이름표를 붙이고,

그때 느꼈었던 무수한 나라는 자아들에게 말을 걸고. 언제 어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든 걸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깨어있는 지금의 내가 무수한 자아들을 대신해서

모든 감정들을 느껴 주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자아들까지 모두 소환해서 지금의 내가 전부 느껴 주는 것이다.

그 어떤 기준도 그 어떤 상징적인 언어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온전한 나만의 것이다.

그 감정들 안에 타인들은 초대되지 않는다. 무의식 속의 감정들은 부정된 내 모습이다.

감정의 여행은 이런 내 모습을 끌어안는다.


인간이 겪는 모든 감정은 필요한 것들이다.

이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책임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숨겨야 하고. 삼켜야 하면서 병들게 하는

나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무수한 타자들에게 있다.

지금의 나는 변한 것이 없다.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처럼 감정을 숨기고, 삼키고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이 없다.

오늘도 감정 여행을 떠난다.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무의식속 감정들에게

토닥여 준다.

지금 내가 온전하게 다 느껴 줄께

느껴도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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