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이 떠난다.

관계

by 토끼

연락이 뜸해진지 꽤 오래된 사람들을 생각한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보다는 이성적인 조언을 더 많이

하는 사람.

미리 약속을 잡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가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관심 없는 이야기에는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는 사람.

무언가를 해야지만 인정해 주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따끔하게 지적하는 사람.

나에게 늘 질문을 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나를 분석하는 사람.

현실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사람.

예스보다는 노라고 이야기하고 비판을 하려 드는 사람.



우리는 서로 마음만 먹으면 바로 연락해서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어색함과 불편함이 자꾸만 고개를 들더니 이제는

무관심해져 버렸다


한때 서로의 기쁨이 될 만큼 깊은 관계였지만,

삶의 관심 밖으로 멀어져 가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또 하나의 시절 인연이 떠나가고 있는 중이다.

시절 인연과의 이별은 달라진 내면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모든 관계가 다 끊어져 나가도 외롭지 않을 만큼

인연을 붙잡지 않아도 충분히 단단해져 있는 내가 보인다.


사람을 믿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보다.

대화를 즐기고, , 느낌을 즐기고,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을 좋아했던 그때 그 시절.

모임도 많이 하고, 시간만 되면 늘 약속을 잡았다.

안부인사는 관계를 유지하고, 돈독하게 하는 하나의 형식이자 관심이었고,

어떤 특별한 날이면 사람들에게 비슷하지만 정성된 안부 문자를 보내는 걸 빼먹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잊히니까. 마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문자로 존재감을 서로 확인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끈끈한 관계는 나의 시간 속에 든든하게 일상을 채워주고 있었다.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중요한 건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관계였다.

왜냐하면 관계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생일을 챙기고, 힘든 일이 생기면 관심을 갖고, 대소사를 챙기고, 정기적인 이벤트 행사를 기획하고, 능력이 닿는 데까지 성실하고 꾸준하게 관계를 위해 신경썼다.


이 모든 행위들은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고, 중독시키고, 편하게 찾게 만든다.

그렇게 사람들이 나를 찾거나 나에게 의존할 때 은근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늘 관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에게 관계는 정서적인 이익을 주는 가장 큰 자산이었다.

이렇듯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정서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 싶은 욕망이고,

정서적 이해관계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인정 욕구를 채우고 싶은 욕망이다.

단순하게 외로워서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우주와도 같다고 한다. 그 우주를 알고 싶고, 그 우주 속으로 들어가서

그 우주를 공유하고 싶어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 우주 같은 마음을 얻고 싶은 것이다.

그 마음이 탐나는 것이다. 그 우주가 멋지면 멋질수록 가지고 싶다.

나의 우주를 동경하는 그 누군가는 또 그런 나의 마음을 나를 가지고 싶어 한다.

불처럼 뜨겁게 한 번에 다 가지고 싶기도 하고, 아주 조금씩 천천히 오래 가지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왜 어째서 그렇게 공들이고, 신뢰하고, 노력하고, 믿었던 그 관계들은

아주 작은 오해, 아주 작은 무관심, 아주 작은 갈등에도 무참하게 깨져 버리는 걸까?

왜 언제나 유효기간이 존재하고, 서운함과 섭섭함으로 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걸까?

우리는 도대체 상대의 무엇을 소유하고 있었던 걸까?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타인들의 무수한 마음 안에 사랑이라는

진짜 마음은 몇 프로나 될까?


서로를 진짜 좋아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뭔가 관계 속에서 불안감과, 결핍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관계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관계는 서로 다른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영향을 주고,

그 과정안에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감동하고, 때로는 실망하고

서로 관계의 히스토리 안에서 사람은 조금씩 변화한다.


그 변화를 누군가는 상처라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성숙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배신이라고도 한다.

그 사람이 변했어.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애정이 없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변화를 통해서 서로의 인연이 끝나는 시절 인연이 되는 것이다.

시절 인연들이 아련한 이유는 내가 변하는 격동의 시간 속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번 지나간 인연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이제는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지금의 변화된 내 모습이 충분히 좋은데 굳이 과거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하나 얻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을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깊이 알면 그 누군가의 사랑도 보이고, 그 사랑의 깊이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않아도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람에게 갇히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외로움을 가치 있게 해 준다.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대화가 어떤 것인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시간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솔직한 대화가 가능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어느 날 그런 대화가 자꾸 어긋난다면

누군가 한 사람은 다르게 변화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또다시 시절 인연 하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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