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던 말 또 하고

꼰대

by 토끼

회사 내에서 이십 대 여자 애들이 나에게 선생님이니 감독님이니 이런 호칭을 쓸 때면

불편하다. 그래서 언니라는 호칭을 쓰라고 얘기한다.

딸뻘 되는 사람에게서

언니라는 호칭을 들을 때면

오글거리면서도 주제 파악 못하게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내가 그리 편하게 대하는 데도 나를 보면

어려워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걸 느낀다.

밥 사준다고 데려가서 애들 얘기 듣고 싶은데

도통 지들 얘기는 하지도 않아서

또 내 얘기만 잔뜩 하고

식당을 나온다.


그럴 때면 왠지 내가 꼰대가 되는 느낌이다.

농담으로 꼰대라고 내치지 말고

우리 편하게 자기 얘기들 좀 하며 지내자

라고 말을 힌지만,

스스로도 꼰대임을 인정해 버린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르기보다 꼰대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식과 경륜이 쌓이고 인격이 높아질 거라고

젊은 시절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보니 절대 아니다.

점점 더 공부는 하기 싫고, 머리 쓰는 일은 질색이라, 무식이 늘고.


모임이나 술자리에서도

과거의 다양한 경험들 속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그 기억을 꺼내어 쓰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래서 쉽고 임팩트 있는 스토리만을

기억 창고에서 인출한다.

그래서 했던 얘기를 자꾸 한다.

주변이야가 와 맥락이 전혀 없는데도

기억창고에서 꺼낼 에너지가 빈약하니

또 쉽게 인출가능한 했던 얘기를 또 한다.

그러다 분위기에 파악 못해서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혼자 삐지기 일쑤고, 절제를 하기 시작하면

폐쇄적이 돼 버리고 조금만 풀어놓으면 탐욕이 생겨 공짜만 끝없이

바라게 되어 부끄러움도 모를 때가 있다.


몇십만 원을 잃고 나면 머리를 싸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어딜 가서도 나이가 들었다고 대우받기를 바라는 맘만 자꾸 생긴다.


하지만 나이로 내세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나이는 그냥 먹지만 인격과 품위는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복잡한 생각이 싫다고 사고를 하지 않게 되면.

생각이 정체되어 흐르지 않고 고인다.

꼰대로 가는 지름길이다.

꼰대는 가만히 앉아서도 되지만

어른은 가만히 앉아서 될 수 없다.



나이만 많은 꼰대는 과거 자신의 지식만 내세우며

권위의식으로 무장하고 젊은 세대를 억압한다.

아들 같아서 딸 같아서 그래 라며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이제는 없는 세상이다.

이제는 하나의 답이 아니라 각자의 스타일로 여러 가지 답을 안고 사는 세상이다.

요즘 것들은 말이야라고 하면서....

하나의 답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끝났다.



어른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성찰하는 한

꼰대는 피하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최소한 그래도 얘기는 통하는 꼰대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꼰대가 되더라도 최악은 면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자기 자신한테는 관심이 없어진다.

내가 행복하고 나 자신에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타인의 일에 함부로 관여하는 일은 줄일 수 있다.

나 자신으로 행복하면서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때로는

엄격한 꼰대가 되고 싶다.


후배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상대가 자신의 얘기를 하기 전 까지는 아무리 궁금해도

나이 든 이름이든 아무것도 묻지 말고

기다려 줄 줄 아는 인내력을 가지고

함부로 상대의

문을 열어젖히고 답을 강요하는 꼰대는 되지 말자.



가장 위대한 여행자는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사람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자다.라고

간디가 말했다.



기억창고에서 꺼낼 기억에 에너지가

딸린다고 매번 인출하기 편한

레퍼토리만 꺼내 다가는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는다.

기억이 딸리면 독서라도

하고 일기라도 써서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이런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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