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우리 둘의 대화법

받아들임

by 토끼

"내가 요즘 사는 법은 망각인 거 같아. 사람도 안 만나고, SNS도 전혀 안 해

심지어 카톡도 잘 안 봐 .

이외에 하는 거라곤 미드 보는 게 전부야,

밤에 아무 생각 없이 미드를 보는 휴식시간이 그냥 나에게는 천국이야."


그녀는 책을 읽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텍스트가 개입되지 않는 시간의 느낌은 나에게는 산이 보이지 않는 도시에 사는 느낌과도 같다.


" 너에게는 미드는 보는 시간이 어쩌면 명상 같은 시간이구나, 미드를 보면서 망각의

시간을 보낸다. 역설적이지만 적절한 표현 같다. 드라마를 보는 뇌는 생각을 멈추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근데 자막을 읽어야 하니까 생각은 하는 거잖아"


" 그런 생각은 다르지 익숙해진 연산처럼 언어를 이해하기만 하는 거니까, 언어도 무의식이 다

이해해 마치 조건 반사적으로.... 난 이렇게 사는 게

심플하고 좋아."


그녀의 하루하루는 늘 똑같아 보였다.

과거 섬세하고 예민하고, 자기 맘에 안드는 말에 충고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지금 내가 보기에는 조금은 두리뭉실해졌다.

그녀는 이제 충고보다는 질문을 주로 했다.


" 매일매일 글을 쓰면 어떤 이야기를 쓰는데?"


" 그거야 늘 다르지... "


" 주로 쓰는 글 있을 거 아냐"


" 마음에 대한 글을 많이 쓰는 거 같아"


" 그런 글을 쓰면 뭐가 달라지는데?"


" 글쎄 대화하는 법이 좀 달라진다고 할까. 마음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거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와 비슷한 룰을 가지고 대화하는 사람.

그 사람과 오랜 시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우리 둘 사이에는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익숙한 대화법이 있었다.


그것은 누가 먼저 정한 것도 아니고,

서로 마음공부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면서 만들어진 룰 같았다.

하지만 딱히 룰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애매한 그 어떤 룰이었다.

우리는 이 룰을 아무 말 대잔치라고 한다.

맥락이 맞지 않고, 추상적이다.

상상력이 동원되며, 자기 주관적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견해를 이야기할 때조차

비슷한 지점을 찾아서 만나곤 한다.

처음부터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출발하기 때문에

늘 변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 경제 종교 이런 이야기조차도 나와 관련지어하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물론 기본적인 사상이나 가치기준은 비슷하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포털 뉴스를 장식하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도 결국은 나를 주인공으로

가져오는 길을 만든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감정의 흐름의 물줄기를 따라가는 걸 좋아한다.

서로의 고민이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상황이나 사람,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 내면의 자아들에게 집중한다.


두 사람사이에 연결된 자아들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나와 관련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머리로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이야기들인데도, 내면의 감정상태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상대의 이야기에 내 내면의 자아들이 반응하면서

열 열하게 반응하는 걸 느낀다.

이 느낌은 따뜻하고, 생기 있으며, 활기차다.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고. 공감하고, 아픔과 슬픔까지 느낀다.

하지만 슬픔과 고통에 잠식당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치유하려는 에너지가 있다.

우리의 대화법이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불편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속내를 드러내보기로 하고,

서로의 시간 속에 솔직해 지기로 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고,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사람이 만나지만 철저하고, 나인체로 나 자신 안에 몰입하는 시간을 허락했다.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서

우리 안에 무수한 자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아닌 그 자아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가진 참나는 똑같이 동일하다는 걸 알았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서로의 자아들은 완전하게 달랐다.


우리의 참나가 같음을 안 순간 우리의 자아들 또한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과 본성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것은 각각 그 어떤 상황에 모든 자아들이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자아들이 그 상황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런 다른 자아들이 만들어 놓은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우리들의 대화였다.

우리는 그런 다양한 자아들이 만나서 서로 연약함과, 부끄러움, 모자라고 지질함, 안쓰러움

당당함, 비열함, 수치스러움, 외로움 이런 것들 속에서 끌어내어 솔직함 감정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때 한 자아가 또 다른 자아에게 반응하고,

참나는 서로 같은 자아들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마음공부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했던 대화는 아니었다.

서로가 하는 이야기의 결을 따라가다 보니 뭔가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고,

그런 내면의 변화들이 신기하기도 해서 이름 지어진 것이 마음공부였다.


서로의 내면을 따라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자기 발견이기도 하며

치유이며, 힐링이며, 위로받는 시간임을 경험했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대화법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대화법을 만들어 간다는 건 관계의 진화이며 창조와도 같다.

그녀가 두 눈을 반짝이며 다시 질문을 했다.

" 마음공부 그런 걸 하면 상처받고, 우울한 그런 생각들을 새롭게 바꾸고, 하는 그런 법도

터득하는 거네? 그런 방법 있으면 나한테 좀 가르쳐 줘!"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 그런 방법은 없어. 마음공부는 말이야 상처받고, 우울한 내면을 바꾸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거야. 받아들이기 위해 대화하고, 글을 쓰는 거야.

마음은 받아들이는 게 안되면 아무것도 변화하는 게 없어."


친구야! 너는 바보같은 질문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지만

나도 오랜시간 너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단다.

그리고 정말 그런 방법같은게 있는줄 알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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