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이 생각을 늘 한다.
친구들로부터의 폭력으로 나를 방어하기 위해
나는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는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날 미워하는지
왜 날 괴롭히는지........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단지 내가 약하고 불안해 보여서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면
인간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런 폭력은 폭력으로 밖에 맞설 수 없는 건가?
드라마 약한 영웅은 이런 질문 앞에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단지 폭력의 잔인함과 본질을 보여 주면서
더 무서운 건 폭력이 아니라 폭력에 길들여지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보여줄 뿐이다.
요즘은 왕따를 둘러싼 학교폭력이 사회현상이 될 정도롤 빈번하다니...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약한 존재들.
학교 안에서 약자란, 사회성이 없는 아이들이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아이. 어쩌면 의사표현이 서툰 아이이거나,
저항의 식이 없는 아이일 수 있다.
약한 존재들을 괴롭히면서 아이들은 어떤 카타르시를 느끼기에 이렇게 아이들을 괴롭히는 걸까?
공동체의 이익과 균형, 조화가 우선이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개인의 권리와 행복이 공동체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로 접어들었다. 서점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존감을 높이는 법, 자기 개발서와 자기 위안이 되는
책들이 범람하고, 상담치유라는 직업이 각광받고 있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하는 사회는 서로 규칙과 질서를 지키면서 서로를 배려할 텐데...
그러면 당연히 폭력이 줄어들 것 같은데... 반대로 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학생들의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학생들의 인성과는 별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의 선생님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아이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게 되었는지.
아이들이 폭력적이어서 선생님들의 권위가 추락하는 건지 모르겠다.
학폭에 대비해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을 착하게 키우면 안 되고 강하게 키워야 하는가
학원폭력물의 특징을 보면 교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싸움이 벌어지는데도 선생님은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과도한 설정 이긴 하지만 선생님은 그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만 같았다.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교권의 실상을 보면, 학교폭력 뒤에는 복잡한 개인 간의 문제와 책임이 얽혀 있다.
어렸을 때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늘 언제나 드는 생각은 톰슨가젤이 가젤의 무리옆에서 사자에게 먹혀죽는데도, 왜 다른 무리의 가젤들은 그저 멀뚱하게 쳐다보는 건가였다.
네가 사자에게 당첨됐으니 이제 당분간 우리들은 안전해라는 안도감마저도 느껴졌다.
왜 사자에게 대항해 톰슨가젤을 구해지지 않는 거야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어른들은 꼬마인 나에게 설명해 주곤 했다.
교실 안에서 한 친구가 무리인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도 숫자적으로 우세한 나머지 아이들은
왜 구경만 하고 있는 건지.. 네가 당첨됐으니 우리는 당분간 안전해라는 정글의 법칙이 이곳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다. 이 또한 자연의 섭리란 말인가!
폭력으로부터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항하고, 연대하고, 맞서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것은 개개인의 본성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약한 영웅은 같은 반 고등학고 주인공 세명의 성장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폭력을 소재로 한 학원장르물인데... 미성년자 관람불가이다.
그만큼 현실에서의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출청소년 문제, 불법도박, 사회의 보호막 없이 범죄에 연루된 아이들의 문제.
사회의 부조리를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전교 1등 연시은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하는 모범생이다. 옆에서 반친구가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문제지를 풀고, 관여하지 않는다.
애초에 인류애라고는 1도 없는 건조하고 무심한 눈빛은 수학문제 풀 때만 빛이 난다.
이혼가정에서 자라나 공부만이 자신의 최고의 목표가 됐다.
전교 꼴찌 안수호
학교는 잠자는 공간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수호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밤에 알바를 하기 때문에 부족한 잠을 학교에서 때운다.
공부에 아무 관심이 없는 수호가 학교 다니는 이유는 간단하다. 할머니가 졸업장은 따라고 해서였다.
잠자는 건 외에는 그림자처럼 교실에서 지내는 안수호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
그는 이종격투기 선수빰치는 싸움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양자 아들 오범석
관계에 서툰 범석은 양아버지의 폭력에 길들여져 위축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왕따를 피해 시은의 반으로 전학 온다.
이렇게 수호와 시은을 만나게 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드라마의 빌런은 당연 같은 반 일진 무리들이다.
늘 벌어지는 흔한 풍경 속에서 여전히 왕따가 된 아이는 교실 안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아이들은 무심한 듯 공부한다.
시작은 이렇다.
키도 작고, 왜소하며, 공부밖에 모르는 시은이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진대장 전영빈이 시은을 손봐주기로 하고 타깃으로 점찍는다.
전영빈은 전학생 범석이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왕따였다는 걸 이용해 범석을 협박하고, 시은을 괴롭히는데 끌어들인다.
범석은 시은의 목에 벌레가 있다며 케타민마약밴드를 붙이게 하고,
시은은 시험도중 심한 구토와 어지럼을 겪으며 시험을 완전히 망친다.
늘 언제나 고개 숙이며 공부만 하고, 왜소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시은은 일진들무리에게 경고한다.
"날 건드리지 마라고 했을 텐데... "
일진들을 상대로 체력적으로 열세인 시은이 서서히 세상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가 싸울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는 두뇌 플레이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싸움의 기술을 하나하나 선보이며 새로운 영웅의 등장을 알린다.
처음에는 시은 혼자의 싸움이었는데.... 학교에서 잠자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수호가 남의 일에 참견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낀 범석이 시은과 수호의 편에 서면서 이들은 서로 연대하면서 서로서로를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아웃 사이더였던 세 사람이 공공의 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대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친구를 만들 이유를 느끼지 못한 시은은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친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범석은 사람에게 욕심이 생기고 ,
타인들에게 관심이 1도 없던 수호는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 해피엔딩으로 끝났더라면 그저 그런 아이들의 성장드라마로 끝났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약한 영웅이자 수호천사였다.
시은은 일진 무리들에게 맞으면서도 이렇게 외친다.
" 니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내 영혼은 다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를 지키기 위한 순수하고 어리고 서툰 감정들이 오해와 질투로 엮기면서
서로 화를 부르고 만다. 그들이 함께 나누었던 우정은 외부 환경에 의해 너무나 취약하고
쉽게 부서지고 만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결핍덩어리 범석의 배신은 관계의 집착과 증오 때문에
스스로를 망치고 모두를 망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범석을 비난할 수가 없다. 수호는 범수의 배신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시은은 수호의 병원을 다녀온 뒤 범석에게 주먹을 겨눈다.
범석은 말한다.
" 너는 나 이해해야지 시은아"
시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한다.
" 어 이해해 그러니까 너도 나 이해해"
하지만 시은은 범석을 때리지 못하고 주먹을 내린다.
시은은 언제나 왕따였던 자신과 같은 처지의 범석을 이해했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아웃사이더였고, 그 외로움, 고독, 아픔, 상처를 공감하기에
수호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주범인
범석을 폭력으로 응징하지 못한다.
"넌 잘못한 거 없어" 이 대사는 어른들과 아이들
중요한 순간마다 자주 등장하는 대사인데....
아무도 잘못한 것이 없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왜 이렇게 잔인할까?
범석이 아이들을 배신하고 폭력적으로 변한 건 피해의식 때문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해서, 스스로를 지키고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돈이 많은 범석은 돈으로 누군가에게 맞춰주거나 군림하면서 살았다.
아이들은 서로를 구원하고서도 모든 게 실패로 끝나고, 엔딩은 처참하다.
연시은이라는 나약한 소년이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을 뜬 범석이 오해와 증오로 괴물이 되어
파국을 향해 끝까지 나아가는
무시무시한 스토리 전개 앞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결말을 끝으로 내몰릴 수 있을까! 싶지만
이 망한 엔딩 속에서 슬픈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카타르시스를 통한
비장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약한 영웅에서 연시은이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강한 주먹도 아니고 명석한 두뇌도 아니다.
바로 " 니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내 영혼은 다치지 않는다."라는 대사다.
우리는 흔히 폭력 하면 생각한다.
싸움을 잘하면 강한 거라고. 강함이란 물리적으로 힘이 세다는 뜻이다.
주먹이 세면 강하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강자를 연상하고,
자신을 지키는 무기로 폭력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짜 강함은
무엇에 견디는 힘이 생겼을 때다.
또한
대처하는 능력이 하나둘 달라지는 걸 경험할 때이다.
약한 영웅의 서사는
망한 엔딩이지만,
서로를 결핍과 공허로부터 구원하는 데는
서로의 관심과 사랑밖에 답은 없다고 하는데.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모르는 왜곡된 마음이 또 다른 폭력을 만든다.
하지만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어떻게 사랑을 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