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무의식의 세계 (1편)

어린시절

by 토끼

눈 뜬 아침 이 알 수 없는 행복감은 뭐지?

간밤 꾼 꿈 때문인가.



가수 혁오꿈을 꿨다.

신혼집.

라면 냄새가 진동하는 주방으로

잠옷을 입은 혁오가 곤한 잠을 자고

거실에서 걸어 온다.

기지개를 켜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시며 등뒤로 다가온다.


나는 계란을 깨서 끓는 라면 속에 넣는다.

두팔을 벌려

금방이라도 백허그를 할 것 같은

혁오가 다정하게 말한다.



"장모님? 이제 먹어도 돼요?"


기억이 가물거린다. 잠깐 와이프가 아니었나? 근데

왜 이리 기분이 좋은 거지.....



장모면 어떠랴... 혁오인데


매일

라면 백 그릇도 끓일 수 있다.



혁오노래를 가끔 듣는데 좋아하지도 않는

대상이 꿈속에 나온 이유는 뭘까?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데...

혁오는 단지 이미지의 조합일 뿐

그 어떤 동경이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언젠가 한번 보았던 혁오의 노래하는 얼굴.

행복했던 일상 속 풍경 속에 혁오라는

동경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내면은 잠깐 행복감을 느낀 것이다.

꿈을 꾸는 동안에도 호르몬은 분비되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가위눌린다거나

악몽을 꿔 본 적이 없다. 늘 어드벤처 환타지 장르의

꿈이 다수를 이루었다.


스스로 낙천적이라 생각했기에

타인들의 말에 신경을 별로 쓰지는 않았지만.

타인들이 원하는걸 충족시키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안과 밖의 부조화로 내면은

예민함 그자체 였다.


그것은 나의 지나친 방어기제로, 사실 어쩌면

타인들의

말에 휘둘리고 더 잘 무너지는 나를 경계하기위해 훈련된 나를

더 강하게밀어붙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내 청춘은 정말 치열했었다.

자발적 노예역할에 충실해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기꺼이 입닫고, 귀닫고, 적당히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내면에서는 용암이 끓고 있는지도 모르고.

타인들에게 나를 맞추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해서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기분, 내 생각,

내사고, 내 느낌. 난 이런 나의 마음을 한 번도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삶만을 향해서 달렸다. 꿈과 성공을 하나의

선상에 두고 나를 채찍질하며, 강한 인간이라면 이래야만 한다라는

공식 속에 나를 끼워 넣고, 터질듯한 불꽃을 안고 있으면서, 언제나

자신감 있는 듯 평온한 미소를 짓고 살았다.

내 안에는 정말 복잡한 유형의 자아들이 살고 있는 줄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8년 전 큰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그 사건은 이후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변했다기보다는


그 무언가 양가적 자아가 깨어났다는 표현이

올바를 것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자아를 세분류 한다.

자아 초자아 이드.


어쩌면 난 그때 사고로 초자아와 이드를 조절하는

자아의 붕괴로 그 어떤 곳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내 자아는 두려움과 절망 불안의 끝에 서서

헤매고 있었다.

그때 그 어떤 새로운 자아를 찾은것이 아니라

바고 그 자아가 나를 찾아냈다.

나는 그 자아를 참나라고 부른다.


인간은 나약하지 않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내 안에서 살고자 하는 그 어떤 힘이 나를 살린다.


자아가 경험하는

참나는 신성이고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생명의 근원 무 또는 공이라는 단어

지금 이 순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가진다.



지금부터는 정신분석학의 이론이 미칠 수 없는 영역 불교속으로 접어든다.



무의식의 정화는 명상과 자기 성찰

내면아이 받아들임 놓아주기

내맡김 이 모든 마음의 알아차리기라는

깊은 정신 영역으로 들어간다.



일생을 살면서 어떤 불의의 사건사고를 한 번쯤은 경험한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비교적 난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가족들을 떠나 일때문에 타국에서 살기도 했었다.

또한 고향을 떠나 꿈을 찾아서 서울이라는 곳에 정착했다.

운이 좋게도 내 젊은 나날은 정신적으로는 피폐했으나

육체적으로는 사고하나없이 축복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40대 후반 사고로 몸을 다치고,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나는 죽음이라는 상상이상의 두려움과 공포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 두려움은 내 삶을 망가뜨리고.

정신을 다치게 했다.



왜 이렇게 죽음 앞에 취약한 존재가 되었는지

나의 무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죽음의 공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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