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렇게 서로 좋아했지만 지금은 서로가 불편하고 싫어진 관계! 쉬이 잊히려면 아직도 시간 안에서 숙성이 되어야 하는 아픔! 어느 날 누군가에게 불쑥 흥분해서 그 싫어하는 이름을 입에 올리고 마음이 혼란해진다. 초라해지고 메말라 진액이 다빠저나가는 걸 느끼며 언제쯤 이 이야기가 가벼운 바람처럼 남에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될까 생각해본다.
얼마 전 친한 친구와 관계 속 불편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본질이 무언지 한번 탐색해보자는 의미에서 각자가 싫어하고 불편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정해서 싫증이 날 때까지 한번 씹어보자고 작정하고, 둘이서 만나면 틈날 때마다 각자 대상을 정해서, 씹기 시작했다. 각자가 씹는 대상은 또 서로가 아는 사람들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싫어하는 a는 그녀와 친하고 그녀가 싷어하는 b는 나와 친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시간이 지나도 마음 안에서 없어지지 않는 불편함을 해소해보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한 그녀와 나의 씹기 게임은 되풀이 대는 시간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 난 말이야 a의 그 착한척하면서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100프로 긍정하는 그 자세가 싫어 그게 사람이니? 도대체 사람이면 싫으면 싫다고 해야지 마치 자기는 언제나 성인군자처럼 너그럽다는 오만함! 자기 생각은 없는 거야 뭐야 언제나 당신은 멋져요 당신은 대단해요. 듣기만 하면서 사람들에게 맞추어 주잖아, 난 a의 그 속을 한번 까발려보고 싶어. 정말 그렇게 모든 걸 수용하고 너그러운 건지..... 내가 서두를 꺼내면서 여과 없이 쏟아내자. 그녀도 b에 대해 한차레 불만을 토해낸다 그리고 또 나의 차례가 돌아온다.
"a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면서 사는 사람 같아! 자기 생각이라는 게 없잖아 늘 호응해주고 듣기만 하잖아! 경청을 잘한다는 것과 공감을 잘한다는 건 달라. 착한 사람이 난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결국 착하다는 건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는 거잖아,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 끄덕이며 자신을 숨기고 관계가 안 좋아지면 나쁜얘기 한마디도 안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보호하려고 입을 닫고 숨어버려! 그리고 서서히 관계를 정리해버리 잖아. 그리고 난 이유도 모른체 거부당하게 되거든. 자신은 자신속에 온화한척 하고 당하는 사람은 화를 내고 나쁜사람이 되는거야! 오만한 거야 자신만이 절대 선이라는 오만! 이런 사람은 자신이 정의 롭다는 편견 안에 갇혀서 살지.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1만 해도 얘기를 해서 소통하려고 하지 않고 도망가버리는 타입이야. 난 이런 애 하고는 대화가 안된다고 봐"
나는 열변을 토하고 나서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난 안다. 지금 내가 막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 말 안에는 억지스러움이 있다는 사실. a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했다. 지금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들을.
친구는 웃으며 조심스럽게 미소 띠며 이번에는 b를 씹지 않고 나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을 했다. " 어느 부분은 맞는 이야기야! 하지만 난 a와 대화하는 게 좋던데 그 애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리액션이 좋아서 나의 이야기를 언제나 성의껏 들어줘, 반론도 하지 않고 동감해 주는데. 너도 그건 느꼈었잖아!" 난 살짝 흥분해서 "그랬었지 알지 그건 근데 난 지금 그건 중요치 않아. 지금은 그 애가 싫어 그래서 모든 게 다싫 어 너의 이야기가 사실인 것 맞아 그렇지만 난 그것도 싫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우리의 시간은 게임 종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씹기 게임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다 보면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렇게 두 달의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
씹기 게임을 지겨울 때까지 해보면 서서히 변화가 생기는걸 스스로 느낀다. 싫어하는 데는 때로 이유가 없을 때도 있어야 한다. 그냥 모든 게 다 싫은 것이다. 이성적으로 따져서 싫어하다 보면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이 고픈 욕망이 또 또아리를 틀고 나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하나도 포용 못하면서 무슨 인간관계를 하겠다고.... 하면서 나를 공격한다.
누군가 위로할 때 그냥 판단 없이 다. 들어주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도 처음에는 그냥 다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무조건 싫어하기. 미치도록 싫어하기. 대놓고 싫어하기. 그렇게 싫은걸 마음 놓고 싫어하다가 싫어하기가 지겨워지면 서서히 나의 투명한 모습이 드러나서 불편한 마음이 약해지가 시작한다.그때 알게 된다.
불편한 싫음안에 나의 반영이 있었다는것을..... 나의 반영을 걷어내면 남의 이야기처럼 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싫어한다는 건 어쩌면 솔직한 자기표현이고 위로이다. 싫어하는 게 없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도 없다. 싫음을 통과하면 좋음이란 문이 무심하게 열린다.
또 마음 한구석에서 싫음으로 인해서 스산하게 일어나는 바람은 지루한 마음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켜서 좀 더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고 조금은 무심 해질 수 있는 바다 가까이로 나를 움직여준다.
싫어도 괜찮다. 싫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싫어해봐야지 안다. 좋아하는 게 뭔지. 또 좋아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계속 싫어해도 괜찮다.
마음 편하게 싫어할 수 있다면 그 싫음은 싫음이 아니다. 싫어하면서 내 마음이 불편한 게 문제이다. 그건 타인을 싫어함이 아닌 자신의 싫어함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자기 반영이 없는 싫음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싫어한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을 조금 즐겁게 해 준다. 마치 연예인을 싫어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흩날릴 수 있다.
어쩌면 나의 반영이 없는 싫어함은
이런 맥락인지 모르겠다.
마치 비 오는 날을 싫어하고. 헐렁한 바지를 싫어하고 김치 볶음밥을 싫어하고 물만두를 싫어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싫어하는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