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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y 17. 2019

불행이 필요한 시간

행복의 다른 말

행복한 시간은 고요하다.
호수에 비치는 나무처럼....
그렇게 고요한 시간에는 말이 필요 없다.  숨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안정되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과는 별개의 시간이다.
로맹 가리는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라는 소년을 통해 행복을 이야기한다.
나는 행복해지려고 그렇게 안달하지 않는다.
나는 삶을 더 좋아한다.
행복이란 감미로운 오물 덩이오, 횡포한 것이다.
그러니 그놈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놈의 행복이란 것과 나는 전혀 연대가 맞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까닥하지 않는다.
 
자기 앞의 생  中  


행복에 둔감해진지가 오래되었다.
행복을 덜어내고
평온을 유지하는 시간이 더 좋은 날들이다.
요즘은 평온하게 책 읽기에 몰두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을 읽고 있을 때는 쓰고 싶은 욕망이 줄어든다.


나에게 글은  불안정한 순간에
쓰여진다. 불행이 엄습할때 어두운 그림자를 붙잡는다.
 불편함이 질문으로 던져질때

  이상한 느낌의 마음이 들 때
뭔가 불편한 사람을 만났을 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을 때
마음을 흔들어놓은 사람을 만났을 때,  뭔가 써야지만 마음이 정리되는 걸 느낄 때
써 내려가는 작업이다.
책 속에서 감동을 받고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 느낌이 글로 이어지지 않는 걸 보면.
나의 글쓰기의 출발점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과정 중 하나였었던 같다.  즐거움의  표현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푸는 용도로 글을 써 왔다.
나라는 내면은
삶이 안정적이고 행복할 때는 글 따위를 쓰지 않는다. 그 느낌만으로 충분하니까!
행복한 마음을 글로 쓴다는 건 행복을 붙잡으려는 마음 같고, 그 표현들이 행복한 마음을 반감시키고, 또 우쭐한 마음을 느끼게 해서 행복의 본질이 파손되는 것 같아서 싫다.
행복은 마음으로 평온하게 느낄 때 훨씬 더 차고 넘친다.
그렇게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행복은 조금 고약한 녀석이라서 행복에게 말을 걸면 걸수록 행복이란 녀석은
오만하고 까다롭지만 불행이란 녀석은  잘만 다독거리면 온순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불완정한 순간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다보면

불행은 씹으면 씹을수록 오묘한 맛이 나서 인생의 다양한 면을 맛보는 쌉싸름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과정이  행복을 단순하게 느끼는 순간보다는 짜릿하고 강도가 세서 불행과 행복의 이면을 같이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행을 행복으로 변형시켜서 나에게로 온 행복은 순간적으로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니다.

의미가 있기에 마음속에 저장되어 은근한 평온함과 묵직한 즐거움을 준다.

가벼운 즐거움과 묵직한 즐거움이 함께 있어야지

즐거움의 발란스가 채워진다.

안정적이고 행복한 것들을 글로써 쓰면  조금은 허무하다. 안정적인 것들은 언제 어느 때고 사라질 것들 이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열망 때문에  맘이 조급 해지지만,

 불편하고 변화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쓰고 있을 때는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자연스레 내 안에 머무는 순간이 많다. 잡고 있지 않은데 자연스레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변화하고 있는 과정을 보면서 자유롭다.

행복은 가벼워서  형태가 없고, 불행은 무거워서 형태가 있어 나를 짓누른다.  난 불안정한 삶을 더 사랑한다.


불안정에 대해 쓴다는 건 무거운 형태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창조적 시간이다.

행복한 시간은  오래 머물지않지만 불행한 시간은 오래 머무른다.

불행을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고 행복과 차별하지 않는다면
오랜시간 속에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

책 읽기의 즐거움은 이렇게 즐거움으로 흩날린다.
하지만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가벼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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