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말고, 커피 자판기 좋아하세요?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길을 가다 커피 자판기가 보이면 '급' 멈춘다. 잠시 잊고 있던 자판기를 다시 만나 갑자기 흥분된다. 자판기를 천천히 스캔한다. 마음이 흡족해진다. 어릴 적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선물 받고 개봉하기 전의 설렘과 비슷하다. 과자 상자처럼 화려한 색으로 된 메뉴 선택 버튼도 보기 좋다. 미적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촌스러운 느낌이 오히려 정겹다. 하이퍼된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 소소하지만 재밌는 일이 펼쳐진다. 동그란 동전을 투입구에 넣고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다. 자판기는 누구에게도 커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윙윙 소리만을 내며 곧이어 커피를 내 앞에 '탁' 하고 떨어뜨린다. A를 넣었는데 B가 나오는 것이 장난감 같기도 하고 참 재미난 물건이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는 자판기와 비슷한 동작으로 주문한다. 손으로 자판기의 버튼을 꾸욱 누르는 것처럼 웹상에서 파트너 없이 커피의 수량, ice/hot, 컵, 사이즈, 퍼스널 옵션을 터치한다. 분명히 커피를 달라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스타벅스에 가보면 내 음료가(시간 맞춰 가면) 나와 있다. 문명 이기의 당연한 결과지만 쥐 죽은 듯 조용히 주문한 사진 속 커피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실물'로 내 앞에 나타난다. 이러한 오더 과정에 중독되어 일부러 커피를 사 먹은 적도 있다.
시즌마다 쏟아지는 MD를 사거나 '별'을 모으는 등 이벤트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난 스타벅스를 매우 좋아한다. 할인율 빵빵한 개인신용카드로 값싸게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특유의 스모키한 커피 맛도 내 입에 딱이기 때문이다.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직원들의 서비스, 낮은 채도의 매장 색상, 쾌적함 등 '별다방'을 찬양하려면 끝도 없다.
그런데 스타벅스에 열광하는 느낌은 자판기에 열광하는 느낌과 사뭇 다르다. 사이렌 오더는 사이버 공간에서 주문 후에 고정되고 지정된 장소에서 커피를 받는다. 그에 반해 자판기는 직접 손으로 눌러 주문하고 자판기의 '이동성' 때문에 사이렌 오더보다 더 생생하고 입체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자판기에 빠져있는데, 이것을 갖고 싶냐 하면 결코 아니다. 부피도 크고 고가에다 더욱이 업소용으로 생산돼 소유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설령 공짜로 얻는다 해도 집에 들여놓으면 '매우' 우스꽝스러울 것 같다. 집에 오는 손님들이 다 놀랄 것이다. 집안에 거대한 자판기라니. 생뚱맞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자판기와 가까이 있으면 더는 새롭고 반갑게 볼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작년 말쯤 어반 북스에서 <호빵 책:디 아카이브 Since 1971>이라는 귀여운 신간이 나왔다.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삼립호빵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시즌 한정판 굿즈 '호찜이'도 같이 판매한다는 점이다. 호찜이는 어릴 적 동네 가게 앞에서 호빵을 넣어 팔던 호빵 찜통를 축소해놓은 1인용 찜기다. 비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구매하지 않았다. 이렇게 '내 손안에 기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꼭 실재하지 않은 자판기라도 좋다. 시각적으로만 만족하면 되니까. 장형윤 감독의 애니 <무림일검의 사생활, 2007>에 나오는 커피 자판기는 매우 특별하다. 진영영은 강호 무림의 최강자를 꿈꾸지만, 적에게 패배 후 강철 몸을 가진 커피 자판기로 환생한다. 강철이지만 실은 강철이 아닌 너무나 연약한 마음을 가진 현대 노동사회의 슬픈 단면이자 사연 많은 자판기이다. 고작 몇백 원짜리 커피를 제공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어쨌든 훈훈하게 끝나서 다행이지만.
나의 자판기 사랑은 해외에서도 계속된다. 부다페스트 뉴가티역에 도착하니 해가 떨어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체크인 시간이 늦어 호스트에게 양해를 구해놓은 상태였다. 빨리 숙소로 가야 할 판에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 먹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 낯선 헝가리어와 캔디 칼라로 된 기계를 보고 마음이 흡족해졌다. 물끄러미 한참을 쳐다보고는 머릿속에 꼭꼭 눌러 담고 숙소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헝가리 여행 중 대학교 안을 구경하는데 푸른 바다처럼 시원하고 짙은 파란색 자판기가 보여 발걸음을 멈췄다. 일루미네이션이 장관인 연말의 화려한 거리처럼 반짝거리는 터치식 자판기였다. 고도로 미니멀화 돼 있어 내가 선호하는 장난감 같은 자판기 느낌은 아니었다. 미래적인 느낌이 들어 그저 전자기기에 다를 바 없어 조금 서운했다. (자판기 커피맛은 어느 나라나 다 비슷했다)
2년 전쯤 어느 지하철역에서 본 커피 자판기는 꽤나 '신박'했다. 개화기 때 커피를 비롯해 신문물이 들어왔을 때 조선 사람들의 충격이 이러했을 거다! 인스턴트커피에 쓰이는 원두는 최하 등급을 사용하는데, 이 자판기는 생두를 로스팅한 원두커피를 제공하는 카페의 축소판이었다. 이제는 인스턴트 커피시장에 고급화 바람이 불어 충분히 그럴 만도 했지만, 믹스커피 자판기에 익숙해서인지 놀라웠다. 러시아워 때,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제 길을 가는데 혼자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기다렸다. 손으로 눌러 선택하는 메뉴사진과 버튼도 기존 자판기보다 더 큼직하게 만들어 놓아 꼭 눌러보고 싶었다. (원두커피 비슷한 맛이 나긴 했다.)
난 이렇게 자판기를 예찬하고 있지만, 자판기와 내 관계는 좀 이상하다. 자판기 커피는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특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얼마나 믹스커피를 좋아하는가. 내 주변 사람들도 참 좋아한다. 300원의 행복이다. (고급 커피는 400원) 동전 몇 개만 넣으면 몇 초 만에 나오고 프림, 설탕, 커피가루의 조합은 또 얼마나 오묘한지! 커피에서 황금비율을 찾아낸 맥심을 찬양한다. 나도 초등학교 때 엄마가 숨겨놓은 커피를 의자를 딛고 올라가야만 겨우 손이 닿는 찬장에서 꺼내 맥심 커피를 마셨다. (난 여자아이였으니까) 옴므파탈처럼 매혹적인 까만 커피가루는 보들보들한 프리마와 투명한 눈 결정 같은 설탕을 만나면 부드럽고 순한 밀크커피로 반전되었다. 한잔을 마시고는 이제까지 맛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맛에 연거푸 다섯 잔을 들이켰다.
이렇게 자판기의 목적은 싸고 간편하고 달콤한 커피의 제공이다. 분명 목적성 뚜렷한 어엿한 기계다. 사람 손도 필요 없다. 큰 몸뚱이 하나만 적절한 곳에 세워놓으면 자판기의 존재감은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위용이 부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자판기에서 나오는 달콤하고 싸고 간편함을 제공하는 자판기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다. 자판기의 입장에선 내가 이상하고 갸우뚱할만한데, 겨울을 제외하곤 거의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인스턴트보다 비싸고(생두를 볶은 원두) 전혀 간편하지 않고(핸드드립) 하나도 안 달콤한(아메리카노) 커피를 더 좋아한다. 자판기에서 나오는 결과물 커피보다 그것 자체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자판기 입장에선 기쁘려나. '너(자판기)를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너 (자판기) 자체를 좋아하니까!'
요리보고 저리 봐도 확실히 자판기와 내 관계의 숨은 의미를 잘 모르겠다. '잘빠진' 드롱기나 스매그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네모 모양. 또 무미건조하게 '툭'하고 서 있는 모습에는 예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자판기 사랑은 계속될 것 같다. 무분별하게 키치한 물건에 탐닉하는 심리는 퇴행과 고착의 증거라는데, 좀 찔리긴 하다.
<플레이스/서울>에서 피터 페레토는 천편일률적으로 유럽 캐슬을 모방해 만든 한국 웨딩홀의 모습에서 특별한 의미를 건져낸다. 키치한 웨딩홀이 주변 환경에 스며들어 기묘한 '진정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나와 자판기 사이를 '한큐'에 정리할 수 없지만, 어쩌면 페레토의 웨딩홀처럼 자판기는 나에게 들어와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낸 건지도 모르겠다.
* 자판기 일러스트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