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자체에 대하여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생각한 건 어떤 순수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녀 자체와 별개로 그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라고나 할까.
그녀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가 스스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어루만지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감각에 취한다는 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난 그녀가 느끼는 방식 그대로 똑같이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나는 그녀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이 그녀와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안다 해도 단숨에 알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외적 변화만으로는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무엇이든 껍데기만 닮아서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난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삶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태도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녀 자체가 되고 싶었던 걸지도.
그녀가 방안에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다. 굴곡진 그녀의 허리에서 뻗어 나온 두 갈래의 부드러운 등선이 잔털이 난 가녀린 목덜미를 지나 말끔히 땋아 올린 포니테일 머리까지 이어졌다. 오른쪽 귀 뒤에는 작은 점이 하나 보인다.
신경을 쓴 듯 안 쓴 듯, 정돈된 듯 아닌 듯,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는 머리카락과 윤기가 흐르는 가지런한 머릿결이 대조를 이루며 묘하게 어울리는 행색을 하고 있다. 날것의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 정제된 듯한 느낌. 심지어 정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나는 황홀경에 빠져든다.
그녀 내면의 질서 안에 무질서가 몸부림치고 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익숙한 듯 감흥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게 원래 나라는 듯한, 당연하다는 표정.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마음이 요동친다. 가슴의 떨림이 온몸으로 진동을 보내고 있다.
그녀가 작은 몸짓으로 미세한 움직임을 보일 때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우아한 모양새를 갖추면 내 신경은 그 어느 때보다 곤두섰다. 등줄기를 따라 머리 뒷부분까지 이어지는 감각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나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도 놓칠 수 없었다.
내 시선은 그녀에게 계속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시선에 결코 닿지 않는다. 그녀는 내게 한 번의 시선도 주지 않는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한다. 그건 나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 움직인다. 애초부터 자신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듯이 누군가를 의식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가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그녀의 움직임은 우아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외부의 시선 때문에 경직된 상태에 머무르던 몸의 움직임이 이완된 지금 그녀의 움직임은 자유로이 흐르는 물결 같다.
이따금 나를 향한듯한 시선을 느끼지만 이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맞더라도 착각에 가깝다. 아마 내 뒤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한 남자의 사진.
분명 나는 아니지만 어딘가 익숙한 얼굴.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옅은 미소가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즐거운 감정에 머무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살짝 파인 보조개 옆으로 잔주름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이에 불만을 갖거나 화를 품지 않는다. 그녀는 나란 인간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몸은 뜨겁다. 이것이 욕정인지 질투인지 분간할 수 없다.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행복해 보이는 그녀를 향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아름다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러나 모르는 척한다. 벽에 걸려있는 사진의 남자일까?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그러다 결국 생각을 거둔다.
다시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은 두툼한 입술을 향한다. 입이 움직이는 것을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고 있다.
그녀의 어떤 것도 내게 닿지 않는다.
나의 어떤 것도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결국 나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것에 만족한다. 행여나 혹시라도 닿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손을 뻗어보고 소리도 질러보지만 닿지 않는다. 나는 체념하며 한숨을 깊게 내쉰다.
그녀는 대화를 하다 멈추더니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뭔가 찾는 시늉을 한다. 그녀는 하늘거리는 오프화이트 실크 캐미솔 하나를 걸친 채 침대 주변을 일어나 두리번 거린다. 불현듯 뭔가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어디다 뒀는지 생각하다 뭔가 떠오른 듯 방 한구석을 향해 재빨리 움직인다. 하지만 이내 실망하는 표정을 짓고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붉은색 카펫 위에 멈춰 그 위에서 춤을 추다 부엌으로 향한다. 두 손을 싱크대 위에 얹고 스트레칭을 한다. 그녀 앞에 놓인 커피포트에서 뜨거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그녀는 향을 맡고 입을 작게 오므려 짧게 호로록 마신다. 그러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침대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옷장을 열어 갈아입을 옷을 고르기 시작한다. 여러 옷가지를 살피더니 마음에 든 속옷과 겉옷을 침대 위로 툭 던져놓는다.
그녀는 카페인을 섭취하고 커튼을 젖힌다. 입고 있던 캐미솔을 벗어 놓고 샤워를 하러 간다. 내 시선은 욕실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보지만 닫힌 문 너머를 볼 수 없다.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물소리뿐이다. 닫힌 문 너머로 물소리와 희미한 콧노래만이 흘러나온다.
그녀가 들어간 샤워실 문 앞으로 희미한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다시 물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얼마 뒤 물소리가 멈춘다. 헤어드라이기 소리가 한동안 들려온다. 마무리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방 안을 향해 눈을 돌렸다. 잘 정돈된 침대 위를 지나 침대 옆 화장대 위에 놓인 스킨과 각종 로션, 그리고 자주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검은색 화장품 파우치 지퍼가 반쯤 열린 채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립 라이너와 빨간색 틴트가 연필을 모아놓은 것 마냥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다.
이어 내 시선은 원을 그리며 주변을 살핀다. 방은 지나치게 정돈돼 있다. 채워진 공간보다 비어있는 공간이 더 많다.
철컥 소리와 함께 욕실에서 문이 열렸다. 그녀가 나오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욕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한자리에 고정된 채 시선을 돌릴 수 있을 뿐 움직일 수가 없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욕실 안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던 수증기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순간 방 안이 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번쩍이는 섬광이 한 번 방 안을 휩쓸고 지나간 뒤 눈을 비비며 방 안을 살폈다.
그녀의 모든 물건들이 사라졌다.
위화감이 들어 화들짝 놀라 사진이 걸려있던 벽을 바라봤다.
한 남자의 사진이 담긴 액자도 사라지고 없다.
그녀와 함께 사진 속의 남자가 사라진 것이다.
방 안은 고요했다.
그 순간,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