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서핑(3)

Couch Surfing

by 조서형

어느덧 여행의 반인 20일이 지났고,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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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초반에 큰 돈을 분실한 슬픔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 공포심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치료되고 있는 듯하였다. 여행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카우치서핑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의 따뜻함으로부터 녹아져 나왔다. 지구 어딘가에서 온 낯선 이를 자신의 공간에 들이는 일은 넓은 아량과 함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무서울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으며 이것은 호스트와 카우치서퍼가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팔을 벌려 환영하고 기분 좋게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해 준 모든 호스트들에게 고마웠다.

“그러니까 돈을 나눠서 보관했었어야지”, “항상 정신 바짝 차리고 나온 곳을 뒤돌아 보는 습관을 가져” 처럼사실이지만 왠지 더 마음이 아파지는 충고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나누어 준 이야기는 “괜찮아, 난 한 번은 공항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은 뒤, 가방 하나를 잊어버린 채 출국 해 버린 적이 있어.”, “패기 넘치게 세계여행을 시작하고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6000 달러를 도난 당해서 이후 일정 동안 마음이 쫓겼었어. 그거 알아? 잃어버린 돈보다 소중한 건 지금 너의 한 번 뿐인 여행이야, 그리고 그것보다 더 값진 건 바로 지금 네 앞에 있는 나야(웃음)” 와 같은 바보같지만 따뜻한 것들이었다.


다음 일정은 마침 핀란드에서 교환학생 중이던 동생과 함께했다. 배를 타고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했다. 동화같은 마을에서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

유럽 국가 중에 가장 물가가 저렴한 곳이라 하여 마음껏 놀고 구경하리라 벼르고 있던 터였다. 발트 3국으로 불리우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는 아쉽게도 호스트를 구하지 못했다. 이동하는 배에서 하루를 자고 새벽에 탈린에 도착한 뒤 다시 밤 버스를 타고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로 떠나는 일정을 잡았다. 숙, 식에 들어가는 돈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이동수단과 숙박시설을 통일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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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유럽국가들이 EU의 체결로 별다른 절차가 없어 국가간의 이동이 용이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버스가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구간별, 시간대별 버스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예약할 수 있다. 넓은 좌석과 쾌적한 온도 뿐 아니라, 커피와 코코아를 마실 수 있는 무료 자판기, 화장실, 와이파이 그리고 영화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개인 스크린도있다. 가만히 혼자 앉아 한참을 평화로울 수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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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에서는 새로 오픈한 호스텔을 홍보해 주고 이틀을 무료로 숙박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객들 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사랑 받는 리가의 재래시장에서는 빵과 과일을 한국이나 베트남보다도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시내에서는 오전/오후로 나뉘어 여러 버전의 ‘팁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

‘팁 투어’는 원칙적으로 무료로 진행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과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을 콕 찝어 풍부한 이야기와 함께 잘 버무려져 여행자들에게 제공된다. 투어가 끝난 이후에 각자 성의껏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팁으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유지된다. 유럽 주요도시들에서는 대부분 이런 서비스가 마련 되어있어 도시를 둘러보고 이야기를 듣기에 좋을 뿐 아니라 여러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한다. SNS 홍보나 호스텔의 단기 스태프로 일하며 예산을 아끼고, 경험과 관계들을 풍족하게 하며 시장에서 사 온 재료로 만든 요리를 나누어 먹으며 배낭여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서로의 삶에 도움을 주며 기쁘게 하고 있었다.

회색 벽과 차가운 돌바닥에 서린 슬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 주는 현지인 가이드들은 그래도 다가 올 좋은 날들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아팠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더 차분하게 아름다웠던 발칸국의 도시들이었다. 무자비한 개발에서 벗어났기에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유려한 자연의 맨 얼굴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곳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여러 얼굴을 한 발트 국가를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기 위해 꼭 다시 찾아와야겠다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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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도착한 곳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에 시내에 내려졌다.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길에서 마주친 취객들에,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차가운 눈빛을 가진 바르샤바의 분위기에 이미 잔뜩 주눅이 들었다. 많은 여행자들의 추천을 받은 ‘크라쿠프‘로 바로 이동할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발트 국가에서 일정이 짧게 끝난 터에 바르샤바에서 역시 카우치서핑을 구하지 못했다. 당일에 급하게 보낸 메세지에 방은 이미 찼지만, 시내 구경도 할 겸 점심을 같이 먹자거나, 자신의 파티에 놀러 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들의 상냥한 마음을 위안 삼아 약속 시간까지 도미토리에서 가만히 영화를 보며 오전시간을 보냈다.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는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차분하게 서술한다. 유대인 관점을 통해 전달되는 담담함은 마치 희미한 갈색이나 회색쯤의 어딘가에 위치한 폴란드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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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맨투맨 위에 집업을 겹쳐입은 채 잔뜩 움츠리고 숙소를 찾아왔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 약속장소인 구시가지에 도착할 때는 민소매를 입고도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큰 일교차만큼이나 내가 바르샤바에 대해 느꼈던 인상도 크게 뒤바꼈다. 축구경기가 진행 중이었던 오후에는 팀 유니폼을 맞춰 입은 가족들이 흥겹게 길거리 응원을 했다. 피어싱과 타투, 직접 염색한 티셔츠 차림의 젊은 예술가들이 알록달록한 시가지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시기를 이겨내고 사진가, 기타리스트, 악세사리 디자이너, 연기자, 스케이트보더 등 자신이 가진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바르샤바 시민들을 바라보며 나는 70년 전 과거에서 온 사람이 되어 감동받아 눈물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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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폴란드에서 감동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평소 블로그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던 포토그래퍼가 베를린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접했다. 바르샤바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독일의 수도로 향했다.새벽의 어둑한 지하철과 개구진 벽의 그래피티들이 낯설게 느껴졌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길을 한참 헤맸다. 아침 일곱시에 베를린에 도착하여 호스트의 집까지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나는 오전 열 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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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해 보이는 인상의 중년의 호스트가 문을 열어주었다. 늦어진 나를 기다리다가 음식이 조금 식었다며 안내해 준 거실에는 식탁이 넘치도록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호밀빵과 각종 치즈, 버터, 우유,쥬스, 과일을 정신없이 입에 쑤셔넣으며 지하철이 복잡해서 찾아오느라 무섭고 서러웠던 얘기를 두서없이 했다. 가만가만 얘기를 듣고 껄껄 웃다가 대중교통은 자기도 어렵다며 자연스러운 위로를 건냈다. 그러다가 서랍에서 베를린 전도를 꺼내어 박물관, 쇼핑몰, 맛집 등을 꼼꼼히 적어주는 그는 ‘프로’ 카우치서핑 호스트였다. 혼자살고 있지만 넓은 집을 구해 여러 명의 카우치서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며 열쇠와 수건을 비롯한 개인 물품까지 제공해 주었다. 그는 카우치서핑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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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길거리음식을 사랑하는 베를린 사람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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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동물원을 내려다보며 베를린 맥주와 고구마튀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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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세상엔 아직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것의 그의 바람의 전부라고 했다. 고개를 돌리자 거실의 장식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들러간 카우치서퍼들이 고마움을 표시한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심과 호스트 집에서 만난 다른 카우치서퍼들 그리고 드디어 베를린에서 만날 수 있게 된 포토그래퍼 언니까지 베를린에서의 일주일은 ‘더할 나위 없었다.’


마지막 일정지는 최근 그 매력이 알려지면서 각광 받고 있는 동유럽 관광의 중심지, 체코와 헝가리였다.야경을 보기 위해 프라하에 하룻 밤을 묵은 뒤, 다음 날 ‘체스키크롬로프’ 로 이동했다. 도시전체가 호이안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 도시에선 때 마침 다섯 꽃잎 장미 축제(FivePetalled Rose Celebrations)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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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중세 골목들을 따라 전통 복장을 한 주민들이 구워 내는 달콤한 굴뚝빵의 향기를 즐긴다. 중세 상공업의 도시였다가 쇠퇴한 뒤 한참을 역사 속에서 묻혀있었다는 체스키크롬로프에서는 어디서 카메라를 꺼내도 동화의 장면이 연출된다. 무거운 철갑 옷에 꼼꼼하게 가죽을 덧대어 만든 의상을 입고 바에 앉아 허리 춤에 걸린 주석 잔을 꺼내면 주인은 직접 담근 술을 잔에 가득 담아 준다. 이는 여행객들을 위한 쇼가 아니었다. 찬란했던 예전 도시의 모습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스스로 자부심을 확인하는 주민들의 축제였다. 체스키크롬로브에서 머무는 3일 내내 밤 낮으로 진행된 축제는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모두 벅차오른다. 가족 여행객들은 쭈뼛쭈뼛 아이를 앞세워 같이 사진을 찍자고 부탁한다. 움직일때마다 철컹거리는 투구가 신기해 아이가 눈을 떼지 못하면, 기사 복장을 한 남자는 아이를 호기롭게 들어안는다. “이 기계는 뭐니?” 카메라를 가리키며 중세의 사람인 양 능청스럽게연기를 하고 아이의 동심과 함께 동화 속 동유럽의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봄이 오면 도시를 둘러 흐르는 강물을 따라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국제 음악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일정을 짤 때 이러한 이벤트를 검색해보고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어쩌다가 딱 맞춰서 여행하게 된다면 더더욱 체스키크롬로브를 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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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감동을 고스란히 안고 하노이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있는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성공한 사업가 부부가 사회 환원의 의미로 카우치서퍼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프로필이었다. 부다페스트의 부부의 보금자리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와 넓은 거실을 가진 시원한 곳이었다. 통곡물과 자연 발효등으로 건강하게 구워 낸 빵과 쿠키 그리고 유기농 두유로 든든하게 아침을 대접 받았다. 부부는 바쁜 개인 스케줄 중에서도 아침 조깅과 계단 사용으로 건강을 챙기고 주말에는 직접 농장에서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고 했다. 미래의 멋진 사업가를 꿈꾸는 세계의 청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주기 위해 강의를 다니고 나와 같은 여행자들을 위해 공간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멕시코와 중국에서 온 엘리트 소녀들과 마침 기간이 겹쳐 거실의 커다란 소파를 공유했다. 저녁이면 부부는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들에게 와인과치즈를 제안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여행할 돈이 부족해서 시작했던 카우치서핑이었다. 혼자 보다는 같이 보내는 시간들이 좋아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 선택하기도 했다. 호스트들 역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당장 여행을갈 수는 없지만 다른 문화를 알고 싶어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했고, 받은 은혜를 돌려주고 싶기도 했으며 가끔은 넉넉하고 가끔은 소박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이 넓은 세상에서 그 많은 시간 중에 서로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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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서핑을 단순히 여행 중, 공짜로 잠을 잘 공간을 구할 수 있는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여행일정에 맞추어 도시를 검색하면, 해당 기간에 카우치 (couch:소파)를 제공하는 호스트들이 검색된다. 이 때 조건에 맞는 호스트의 페이지를클릭하여 호스트가 직접 작성해 업로드 한 소개글을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 관심사, 취미, 가치관 그리고 카우치서핑을 하는 이유들까지 알게 될 수 있다. 진지하게 누군가의 소개글을 읽은 뒤에야 정중하게 카우치서핑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소개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호스트에 맞게 적어 보내는 것이 좋다. ‘난 한국에서 온 서형이야,22일부터 이틀동안 너희집에 머물고 싶어’ 처럼 통보와 같은 신청서는 무례하게 받아들여져 오히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일로 그 도시에 가게 되었으며, 상대의 프로필의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는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만나게 되었을 때도 덜 서먹하게 된다.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성의 표시는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간단한 요리를 해 준다던지, 자국에서 준비해 간 작은 기념품을 나눈다던지, 특기를 발휘해 직접 만든 선물 등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 는방법은 참 많다. 여행을 마친 후에 그의 페이지에 후기를 남기며 감사표시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얻는다는 생각보다 나눈다는 생각이 커질 때 그 경험은 더 대단한 것이 될 것이며 감동은 몇배로 불어날 것이다.

오늘도 세상의 사람들은 카우치(소파)를 나누기위해 카우치서핑 사이트에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헤엄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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