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권도인이다. 나는 할 수 있다.
"갑자기 태권도장에 다닌다고? 너?"
"오 태권도 귀여워!"
태권도는 갑자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늘 마음 속으로 스스로 태권도인이라 생각해 온 내게는 갑자기가 아니었다. 나는 만 스물 아홉. 아홉 수라면 아홉 수인 시간을 겪고 있었다. 스쿼시처럼 헛 둘 헛 둘 몰아치는 일을 쳐내는 데서 인생의 보람을 느끼던 나에게 그게 끊긴 것이다. 답답하고 막막하고 혼란스러웠다. 거리두기 4단계로 헬스장에서 달리기가 금지되면서 그나마 규칙적으로 하던 운동도 멈췄다. 나는 바짝 말라 타들어갔다. 세상만사 시들시들한 이 방구석 뚱이는 아마 국내 ENFP 중 가장 소극적이고 비관적일 터였다.
그러다가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의외의 윤기가 나한테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파란 매트 위로 전자 호구를 찬 맨발의 선수들이 리드미컬하게 뛰고 있었다. 도복이 언제 저렇게 타이트하게 바뀐거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선수들 이름도 쳐보고 지난 경기도 다시봤다. 어느새 그 일에 푹 빠졌다. 하얗고 통이 큰 도복 바지에 띠를 느슨하게 매듭은 바짝 묶고 도장에 살다시피 하던 때를 떠올렸다. 10대의 내가 가장 번쩍번쩍하던 순간도, 20대의 나의 가장 짜릿한 순간도 이 파란 매트 위에서가 아니었던가. 정작 한 번도 시범단이나, 선수나, 주전이었던 적은 없지만 태권도는 내가 못하는 것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못하면서 좋아한 일은 태권도 뿐이었다.
10살에 처음 태권도장을 등록한 다음, 도복은 제2의 피부 같았다. 그때 나는 태권도장을 하루에도 두 세번씩 드나든 데다가 놀이터에도 영어학원에도 입고 갔다. 띠까지 묶은 채로 하루종일 밖에 있다 들어오기도 했다. 가족 모임에 태권도장의 점퍼를 입고 기합을 넣으며 옆돌기를 시전하는 나를 보고 삼촌은 '태권터프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당시에 유행하던 만화 '파워퍼프걸'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그 별명이 마음에 쏙 들었다. 터프한 게 뭔지 정확히 몰라도 좋았다. 나는 동네에 있는 '드래곤 체육관'에 다녔는데, 관훈이 특히 멋졌다. "밝은 마음, 강인한 체력" 어린 나는 터프한 건 우리 관훈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리라 추측했다. 당시 포털사이트에 내 닉네임은 모두 '터프걸'이었다.
드래곤 태권도장에서는 줄넘기와 피구를 하고, 품새와 발차기를 익히고, 친구랑 울지 않고 잘 싸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단단한 인간이 되는 법도 알게 됐다. 방법은 오래달리기와 팔굽혀펴기다. 숨이 턱에 차고 목에서 피맛을 느끼면서도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다가를 반복한다. 몸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엎드려서 팔을 굽혔다가 편다. 팔을 구부릴 때는 온 몸이 따라 내려간다. 서른 번이 넘어가면 이마에 땀이 흐르고 팔과 배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런 때 이렇게 주문을 외운다. '나는 태권도인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이 유치하고 아무것도 아닌 주문은 나의 기초 체력이 되어줬다. 책상에 앞에서 몸이 배배 꼬일 때도, 집체만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를 걸을 때도, 하다 못해 오줌을 참아야 할 때도.
20살엔 대학에 갔다. 과활동은 제쳐두고 태권도 동아리에 올인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여섯시에 학생회관 3층에서 태권도를 했다. 도복 바지에 동아리 바람막이를 입고 강의를 듣는 나를 태권도학과 복수전공자라고 생각한 친구도 있었다. 그 무렵 겨루기 시합에 처음 나갔다. 아마추어 대회였는데 이 악물고 몸무게를 빼서 43kg 이하 핀급에 출전했다. 대진운이 좋아 128강부터 8강까지 올라갔다. 태권도는 동메달이 두 개니까 이번 판만 이기면 첫 시합에 메달을 받게될 터였다. 경기는 맘같지 않았다. 안 먹고 감량하느라 힘이 달렸고, 능숙한 상대에 비해 기술도 부족했다. 여기까지 기어올라오느라 집중력도 체력도 다 떨어진 참이었다.
상대가 공격해 오는 게 눈에 보였다. 내 몸은 피하지 못했다. 공격 찬스가 생겼다. 나는 다리를 들어올릴 수 없었다. 피곤했다. 몇 번의 공격을 더 받아냈고 더는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피곤해졌다. 결국 나는 1회전에서 K.O 패했다. 공격이 보이는 데 피할 수 없던 그날의 기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체력이 부족하면 인생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로 시합은 나가지 못했지만, 그 깨달음은 늘 안고 살았다. 헬스장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멈추고 싶을 때면 그 순간을 떠올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차기를 한 번 더 할 수 있으려면 지금 더 뛰어야해. 체력이 있어야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발차기를 할 수 있어!' 업무가 지루해 딴짓을 하고 싶어질 때도 그 순간을 떠올렸다. '이게 너의 일에서는 기본기와도 같은 일이야. 기본기가 없으면 상대와 마주한 순간에 결국 바닥 난 실력이 들통날거야.'
그러니까 갑자기는 아니였다. 태권도는 큰 줄기로 내 인생을 지탱하고 있었다. 10살의 서형도, 20살의 서형도, 이년 째 아홉수 타령을 하고 있는 30살의 서형에게도 태권도는 어떤 계기가 되어줄 터였다. 나는 돌아온 태권터프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