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어느 미용사의 고단한 하루
삶의 고단함
by
에너지드링크
Jan 12. 2022
아래로
한 달 전쯤 일이다. 반차를 내고 미용실에 갔다.
가끔 아이들 앞머리를 자른다고 데려갔었는데 내 얼굴을 기억하셨다.
"오늘은 웬일로 혼자 왔어요? 애들 없이?"
"저 머리 자르려고 해도 휴가일 때나 와야 해요. 애들이 아직 손이 많이 가고 둘만 둘 수가 없어서요. 아이
다 키
워서 손 갈 일 없으시죠?"
나의 아주 작은 질문에 미용사 선생님의 말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분은 아들이 둘인데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라
고.
"나 네 시간밖에 못 잤잖아요"
"네? 아니 왜요?"
A 선생님은 밤 10시에 퇴근하면 11시에 집에 도착한다. 그때 아들이 벗어둔 교복 빨래를 하고(거의 매일 하신다는데 단독주택이나 교외인가 보다. 소음 때문에라도 아파트는 그 시간 빨래를 안 하는데)
나머지 집안일을 한다.
거기다가 큰 아들이 개를 키운다고 데려왔는데 정작 그 아들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개는 둘째와 A 선생님이 돌본다.
그런데 그 시간에라도 집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 개 산책을 시켜야 해서
피
곤한 몸을 끌고 나간다.
이 개가 자주 아픈데 비보험 치료나 수술을 여러 번
해
서 심지어 돈도 너무 많이 든다고 하소연이다.
가끔은 밤 12시에도 아들
이
고기를 구워달라면
고
기를 구워
주
는데 그러다 보면 새벽 두세 시나 돼야 잠이 든다.
마지막에는 이 말을 덧붙였다.
"가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어요. 미쳐버릴 거 같아"
낯선 이의 질문 하나로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속 감정을 토해내신 것 같다.
어느새 머리를 다 잘라서 더 이야기할 틈도 없
이
대화가 종료되었다.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는 직업, 그리고 집에 가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집안일. 아무도 돕지 않는 상황, 듣기만 해도 얼마나 답답
한
지.
개 산책은 둘째를 시키고 빨래나 청소도 매일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자기 인생을 너무 혹사시키는 느낌이라 꼭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자기 시간은 자기가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음에는 내 책 [미라클 루틴]을 주면서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그런데 그로부터 2주 뒤
지
나가며 보니 미용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미용실 주인은 더 나이 드신 분인데 폐업했다고 옆 미용실에서 전해 들었
는
데 A 선생님은 어딜 가셨을까도 궁금하다.
어디 계시든 제발 괜찮길. 삶의 무게, 조금만 내려놓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keyword
미용사
엄마
일상
57
댓글
40
댓글
40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에너지드링크
글쓰기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인생
직업
약사
이 약 같이 먹어도 돼요?
저자
아르바이트, 계약직,정규직, 파견근무, 회사원, 전문직 두루두루 경험하고 있는 직업 체험인. 현재 병원 근무중
구독자
382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낀세대의 슬픔
핸드폰이 꺼진 세 시간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