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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Jan 20. 2022

핸드폰이 꺼진 세 시간

핸드폰도 굶고 나도 굶고.

지난 일요일. 친구와 만남을 가졌다. 약속한 지하철역 도착 한정거장 전 친구에게 다급한 카카오톡 문자가 왔다.


"나 지금 배터리가 없어. 롯데 백화점 00 매장 앞에 있을게"

'배터리 충전을 까먹었나?' 생각하고 지하철 역을 올라가 백화점 입구에 갔는데 그녀가 보인다.

"나 배터리가 꺼져서 QR 인증이 안되니 백화점에 들어갈 수도 없어서 입구에서 계속 기다렸어."


맞다. 이제 전화기가 꺼지면 어딜 들어갈 수 조차 없구나!

어디라도 QR 인증을 해야 들어가니 백화점도  못 들어갔다. 더군다나 점심 약속을 했는데 식당도 QR코드를 찍으라고 하니 점심도 못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와 나 둘 모두 이제 서로 핸드폰 번호도 모른다.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해 두니 굳이 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고, 결제도 삼성 페이,  지하철도 핸드폰을 이용해서 탄다. 한마디로 핸드폰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것이다.

친구는 전날 충전 케이블이 잘못 연결된 걸 나오기 전에 알았단다. 배터리는 2% 밖에 안 남았고 부랴부랴 나에게 연락 후 조마조마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나마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카드는 들고 나와서 지하철은 탔나 보다.

지하철에서 급하게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 고개를 돌리니 전동 휠체어 충전소가 있는데 윗부분에 전화기 충전 케이블도 같이 있었다. 충전기를 찾았다는 반가움에 충전기에 전화기를 꼽고 이십 분간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되어 이제 몇 프로라도 충전이 되었을 거라고 떠들며 다시 가보니 웬걸.. 아까와 똑같이 1%!

알고 보니 여러 명이 쓰는 케이블이라서 그새 망가진 것이었다.

이제는 지하철 밖을 나와 친구가 쓰는 KT 통신사 대리점에 들어갔다. 핸드폰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만져보더니 직원 하는 말이 충전단자가 고장 났다며 핸드폰을 새로 장만하라는 게 아닌가!

마음의 준비 없이 핸드폰을 바꿀 순 없으니 최후의 방법으로 핸드폰이 1-2%라도 켜졌을 때 백화점 입장은 될 것 같다는 친구 말을 믿고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극적으로 핸드폰이 켜져서 겨우 통과.

백화점 안 식당가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그걸 또 끝까지 해낸 우리.


남은 것은 이제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는 일. 먹을 것 많은 지하 식당가도 모두 QR을 찍어야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오히려 냄새 때문에 배가 더 고파졌다.

그러다가 백화점 고객센터에서 혹시 충전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다행히 백화점 안에 전화를 맡기고 충전을 도와주는 곳이 있어서 속는 셈 치고 전화기를 맡겼다. 혹시 또 충전이 안될까 봐 10분이 지난 후 전화기를 봤는데 다행히 17%나 충전되었다.

내 밥은 못 먹어도 핸드폰 녀석의 밥을 먹인 게 얼마나 뿌듯하던지.

아까 대리점 직원이 충전이 안된다는 것은 뭐였는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충전이 되었다.

만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서 겨우 식당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는데 원래 이 집 밥이 맛있는 건지 배가 고파서 인지 점심이 꿀 같다.

핸드폰과 함께 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놔두고 오는 날은 불안할 때도 있지만 이 정도로 밥 한 끼도 못 먹을 줄 몰랐다.

코로나 시국에는 별게 다 사람을 귀찮게 한다.

핸드폰의 노예 아닌 노예가 되었지만 나도 이 녀석도 밥은 확실히 챙겨주자.

밥 안 먹으면 나도 포악해진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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