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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Dec 23. 2021

요구르트 젤리를 먹다 눈물이 났다.

배고픈 자의 변명

아이가 언어치료를 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시작했으니 10개월쯤 되었다.


첫 시작은 가족 모두가 엄마 칠순 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어어어 엄마~~"


4살치고는  말도 빨리했고 못 하는 말이 없던 녀석이 갑자기 말을 더듬었고 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오늘 말할 때 긴장했나 보다.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하지만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은 말 더듬은 5살 초까지도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했다.

처음으로 동네 근처 언어센터에 방문했다. 예약을 잡기도 힘들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 언어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무척 많다는 걸 내 아이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곳 언어센터 선생님이 대뜸 말씀하신다.


  " 요즘에 더듬는 애가 어디 있어요? 옛날이나 그런 애들 많았지. 왜 늦게 데려오셨어요?"


 선생님의 딱딱한 표정과 나를 비난하는 듯한 어투에 상처 받았다. 그곳에서는 어떤 치료를 해도 아이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곳은 한번 가고 다시 가지 않았다.

한편, 남들은 아이 언어 때문에 걱정이라 하면 이해를 못 했다. 밖에서는 자세히 듣지 않으면 아이가  더듬는지 조차 를 정도인데 매일 듣는 나는 자주 신경이 쓰였다.

집 근처 센터 말고 다른 곳은 일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니 마음을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올 초 내가 일하는 병원에 <언어센터>가 생겼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언어 상담사 선생님은  인상도 좋고 진심으로 아이와 소통하려는 열린 분이었다.

또 일이 끝나고 아이를 데려와서 치료하는 게 번거로우면 점심시간을 빼서 아이와 상담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나는 주 2일, 점심시간을 틈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고 40분간 언어 치료 후 다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이가 직장 어린이집을 다녀서 가능하다.)

그런데 사건은 그제 발생했다.

아이가 언어센터 수업이 끝난 후 사달라는 요구르트 젤리를 사줬다.

"엄마도 하나만 줘"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한알을 더 달라고 했다. 아이도 흔쾌히 한 개를 준다는 게 그만 요구르트 젤리 두 개가 붙어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눈치 없이 덥석 요구르트 젤리 두 알을 먹었고, 아이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자기는 분명 젤리를 하나만 먹으랬는데 엄마가 두 개를 먹었다며.


"엄마가 미안해. 하나 더 먹어서."

가까스로 아이를 달래 어린이집에 보내고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난다.


점심시간을 내서 언어 센터에 가다 보니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점심을 못 먹는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미리 양해를 구해 일찍 밥을 먹고 나오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점심을 제시간에 못 먹으니 아이 언어 치료 시간에 늘 배가 고프다.


일도 지치고 밥은 못 먹어 허기지고, 일주일 두 번의 점심을 포기하며 언어치료를 하러 오는데 아이의 언어 변화가 크지 않다.

그래서 눈물이 났나 보다. 그래서 더 슬펐나 보다.


약국으로 들어가기 전 다시 눈물을 닦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을 한다.

삶은 그런 것이다. 힘들고 지친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힘내고, 언젠가 뒤돌아 봤을 때 그런 추억이 있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게 삶이다.


#말더듬

#언어치료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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