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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Sep 14. 2022

달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추석 소회

3년 전 어머님이 선포하셨다.
너희들이 명절마다 차 막히는데 내려오는 것도 힘들고, 본인도 힘드시니 차례와 제사를 큰 아들에게 넘기겠다고.
거기서 가족 의견받는다길래,  절에 모시면 어떨지 의견 한번 냈다가 집안 뒤집뻔했다.
(의견 내라고 낸 나는 순진한 맏며느리)


그리고 3년이 흘러버렸다.
이번 추석부터 큰 아들 집인 우리 집에서 차례와 제사가 시작 것이다.

요리가  서툰 나를 위해 신랑은 제사음식을 시켰고, 나무로 된 목기를 치웠으며, 예전보다 간소히 차례를 지냈다.
심지어 어머님도 원래 여덟 분 정도 모시던 차례와 제사를, 아버님 제사만 남기고 절에 모시는 과감한 결단도 해주셨다.
(알고 보니 다른 집안사람도 껴 있었단다. 남의 집 제사까지 지내고 있었을 줄이야)

다들 배려가 고맙다 ~
그런데 아직도 난 그 전제가 불편하다. 제사나 차례를 며느리가 지내야 하는데 너의 일을 줄여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

나는 이 남자가 좋아서 결혼한 건데 왜 그의 집안일은 다 내 몫인 말이다.


아이들 둘이 지금도 손이 많이 가는 데다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녹초인 상태로 다시 육아 출근이 시작되는 삶 속에서 차례나 제사는 버거운 짐 하나를 더 얹는 느낌이다.

남자들은 모른다.
아무리 제사음식을 시켜도 집안 청소며 정리, 손님맞이, 상 차리기, 설거지는 오롯이 내 몫이라는 것. 동서가 와서 설거지라도 안 했으면 다 내 일이다.


티브이에 나오는 집안일 같이 하는 남편, 엄마 같이  챙겨주는 시어머니까지 바라지 않는다.  

토요일부터 아팠던 나에게 좀 쉬라고 하고 어제까지도 꿀물 먹고 따뜻하게 지내라고 전화해주신 어머님께는 감사했다.


둘 중  막내딸에 제사 없는 집에서 살았던 나는, 차례가 오기까지 정무장이 제일 힘들었다. 이 일이 내일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이겨내고 차례를 지 나에게 필요한 건 그냥 "수고했다"  이 한마디였을 뿐데 어찌 그리 그는 내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지요


100년 만의 둥근 보름달님께 혼자 중얼거렸다.





#명절 단상
#마음먹기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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