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츤데레 같은 그녀를 기억하며.

마음으로 이해하는 사이

by 에너지드링크

집에서 10분쯤 걸어가면 세탁으로 유명해 전국적으로 지점이 있는 크린토0아가 있었다. 다른 지점과의 차별점이라면 주인아주머니가 옷 수선 경력이 오래인지라 몸에 잘 맞게 수선을 잘해주셨다는 것.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있는 주인아주머니는 대부분 표정이 무표정이고 사무적으로 '얼마입니다'를 이야기하는 분이시지만, 나도 단골인지라 그분 성격을 잘 안다.

계산은 정확하게, 본업은 충실하시고, 마음을 안 쓰는 것 같으면서도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마음을 써주시는 분이었다.

신랑이 와이셔츠를 맨날 입는 직업이라 셔츠를 몰아서 한 번에 맡기는데 찾는 걸 깜빡 잊어 입을 것도 없다고 혼자 중얼거리면, 아주머니가 툭 던진다.

" 아휴, 그냥 와이셔츠 여러 벌 사서 입혀요. 우리 딸도 셔츠 10벌로 돌려 입히던데 뭘 수고스럽게 맡겨?"

그리고 어느 해인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이불 빨래를 맡기며 나도 모르게 울음을 삼켰는데, 특별한 말 없이 같이 조용히 울어주셨던 분이다.

여러 말보다 같이 울어주셨던 그 마음, 타인의 위로 때문에 그날 나는 마음을 많이 회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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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휴직을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셔츠를 맡기고 찾는 번거로움 보다는 내가 다림질을 해서 조금이라도 살림에 보탬(?)이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가던 발길이 뜸해졌다. 그런데 요 며칠 계절이 바뀌어 여름 양복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해 크린토0아를 한번 가야겠다고 벼르던 차였다.

마침 지인에게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오랜만에 그곳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이게 웬일인가.

[9월 27일부로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합니다. 못 찾은 옷은 OO지점으로 이관되니 찾아주세요.]라는 종이와 함께 그곳이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가끔씩 늦게 문 열 때 여쭤보면 남편 병원 갈 일 때문이라 하시던 건강해 보이시던 분, 여름휴가를 길게 다녀오실 때는 딸이 외국에 사는데 한 번씩 거길 간다고 하셨던 분, 일본 원전 방류 사건으로 소금 대란이 일어났을 때 소금을 대서 먹는 곳이 있다며 언제까지나 그곳에 계실 것 같던 그분이 거기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신 걸까? 남편이 아프신가?

물건을 받은 지인에게 혹시 크린토0아 주인 소식을 아냐고 여쭤보니 아주머니가 글쎄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쓰러졌는데 목숨은 건졌으나 요양을 위해 아주 먼 시골로 내려가 계시단다.


무뚝뚝하지만 참 성실하고 츤데레 같은 위로를 내게 선사한 그분.

그 어디서든 얼른 몸이 나아져서 건강해지시길 빌어본다.


"아주머니, 어디 계시든 아프지 마시고 어서 나으세요. 다시 그 무뚝뚝하지만 마음 쓰던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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