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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May 24. 2021

세탁소에서 감정도 씻어준다면 좋겠다.

낯선 이의 위로가 필요한 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한동안 춥고 덥기를 반복하다가 서서히 여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주 모처럼 이불을 정리했다.  

한 짐처럼 느껴지는 두꺼운 겨울 이불들은 집에서 빨기에는 버거워 동네 세탁 편의점에 맡기기로 했다.

이럴 때는 꼭 알뜰하고 싶어서 전화를 해본다. 매주 수요일, 토요일만 이불 할인이 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불 두장에 두꺼운 패드를 맡기려 보니 혼자 들기에는 너무 무겁다. 마침 토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은 신랑에게 같이 가기를 부탁했다.

하지만 전날 늦은 퇴근 후 늦게 잠든 신랑은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침을 먹고 또 누워 버렸다. 옆에 있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놀다가  싸움이 붙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내 안 깊숙이에서 불이 올라온다.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불 세 개와 핸드폰 하나만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이불 세 개가 꼭 내 마음의 짐 같았다.

최근 아침 등원을 도와주던 돌보미 선생님도 사정이 생겨 계속 못 나오고 계시다. 돌보미 선생님 남편이 확진자와 점심을 한 덕분에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었다. 2주간의 자가 격리 기간 동안 돌봄 센터에서는 가족인 돌보미 선생님도 우리 집에 오지 않는 게 낫다고 하셨다.

다행인 건 눈 수술 차 우리 집에 와 계신 어머님이 2주간 등원을 도와주시기로 했다.

하지만 아침에 모든 식사 준비를 마치고, 등원 준비까지내 일이 되니 평소보다 몇 배로 바빠졌다.


거기다 어머님이 계시니 음식 솜씨가 없는 나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남들이야 먹던 밥과 반찬에 숟가락만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요리 고자인 나는  밥을 차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반찬은 기껏 국 몇 종류라 반찬을 사 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 먹는데도 한계가 있고 우리끼리 대충 먹던 식사에 왠지 반찬 하나라도 더 올려야 할 것 같은 부담이 가득하다.

남편도 반찬은 상관없다고 하지만 최근 잇몸이 불편한 어머님은 아무거나 드시질 못한다.


신랑은 평일도 늘 늦게 온다. 자주 늦게 와서 퇴근 후 집안일과 육아는 거의 내 몫이다.  요즘따라 자기들끼리 더 싸우는 아이들, 어머님의 크게 틀어놓는 티브이 소리가 힘들다.

아이의 자잘한 문제나 여러 가지 의논할 거리들을 말하고 싶은데 언제나 꼭 필요할 때 그가 없다.


지금의 모든 것들이 나를 짓누르는 이불 같았다. 무거운 이불을 낑낑대고 앞도 안 보이게 걸어가는데 두 뺨을 타고 눈물이 살짝 흘렀다.


이불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내 삶이 너무 힘들다. 일도 하고 살림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고, 거기다가 나를 찾겠다며 이것저것 하고 있는 내가 참 바보 같다.

겨우 낑낑 거리며 세탁소에 들어간 순간 아주머니가 말한다.


"그 무거운 걸 어떻게 혼자 들고 왔어요?"


그 말 한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자주 왔다 갔다 하지만 말을 나눠 본적은 거의 없던 무뚝뚝한 인상을 가진 주인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이불을 받아 들며 조금  훌쩍거리시며 말한다.


"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울다가요. 나는 내 딸 생각이 나서."

"네, 고맙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크린토피아 주인아주머니 앞에서 조금 훌쩍거렸다.

그냥 정말 몇 분인데 마음이 진정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는 사람 앞이라면 오히려 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상황에 대해 모르는 낯선 사람한테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스 카페라테 한잔을 사서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나는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끔 큰 상처를 받는다.  

삶은 나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싶은가?


집에 돌아가니 아직도 집안은 폭탄 맞은 것처럼 지저분하고, 빨래는 쌓여 있었으며 아이들은 투닥거리고 있었다.


<상처 받지 않는 영혼>의 저자 마이클 A. 싱어가 말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을 닫지 말라고.

닫히려는 마음에 오늘도 작은 책 한 권이라도 구겨 넣어 마음을 달래 본다.



그림: PNG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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