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뽀나스 : 남편이 친구들과 골프 여행을 간다면

by 운동화

필리핀으로 출발하는 날은 금요일 밤이었다. 탑승 게이트에서 줄을 서면서 나는 놀라움을 넘어서 어떤 공포를 느꼈다. 탑승하려고 줄을 선 189명의 승객 중 여성은 나와 내 아이, 단 두 명 뿐이었다. 다른 승객은 20대부터 70대까지 성인 한국 남자들이었다. 목욕탕과 산후조리원을 제외한 어떤 장소에서 이렇게 성비가 분명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적은 처음이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막 퇴근한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고 평상복으로 입긴 했으나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 든 남자들은 골프웨어로 잘 차려입고 있었다. 온통 성인 남자들로 둘러싸인 그 공간이 개방된 공공장소였음에도 왜 나에게 두려움을 주었는지 생각해보니 그렇게 동질적으로 느껴지는 집단 속에 나만 이질적인 존재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나마 승무원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이 손을 잡고 다시 돌아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탑승구에서 승무원에게 보딩패스를 건네며 조용히 물었다. ”왜 이렇게 남자들밖에 없어요? 오늘 클락에 무슨 회의 같은 거 열리나요?“ 승무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금요일 밤 비행기에는 퇴근하고 골프치러 가는 남자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세요..항상 그런 편이에요“ 낯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는 아이 손을 꼭 잡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는 저녁 식사가 펼쳐졌다. 저가 항공이라 식사는 돈을 내고 먹어야 하니 보통 시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안 먹는 우리가 이상할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이 저녁이든 컵라면이든 시켜서 먹었고 많은 수의 사람이 술을 같이 주문했다. 이건 비행기인지 호프집인지 모르게 떠들썩한 술판이 벌어졌다. 회사 업무 이야기, 오늘 어떻게 조퇴하고 간신히 비행기 시간을 맞추게 됐는지 하는 이야기, 마누라한테 뭐라고 하고 나왔냐고 물으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불편함이 점점 차올랐다. 삼겹살 불판만 있으면 영락없는 회식자리 고깃집 풍경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비행기 안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 남자들과 눈이 가끔 마주쳤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어린 여자아이랑 함께 탄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른 눈길을 돌렸다. 그 사람들 역시 우리를 보며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클락 공항에 새벽 한두 시쯤 도착해서 입국 심사의 긴 줄 뒤에 서 있는데 공항 직원이 내 옆에 선 아이를 보더니 우리를 줄에서 나오게 해 맨 앞줄에 세워 주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린아이는 이 아이 단 한 명뿐이라 다른 승객들도 뭐라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심사를 빨리 받고 나와서 우리는 공항 대합실에서 마중 나오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클락 공항은 규모가 작아서 대합실이 외부와 유리벽으로 막혀 있지 않고 트여 있어서 마중을 나오는 차량과 사람들이 그냥 눈앞에 보이는 구조였다. 친구 차가 들어오는지 보려고 맨 앞 줄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장면이 펼쳐졌다. 수십 대의 벤 차량이 줄줄이 들어와 대합실 앞 차도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차문이 열리는데 그 벤 안에는 누가 봐도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보이는, 화장을 진하게 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필리핀 여성들이 둘셋 씩 이미 타고 있었다. 모든 차들이 똑같이 그런 구조였다. 이게 뭐야? 생각하며 입을 떡 벌리고 보는데 이제는 턱이 빠질 장면이 시작됐다. 우리 뒤에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온 한국 남자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그 벤에 차례로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인원을 채운 벤은 떠나고 또 다음 벤이 와서 다음 남자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그렇게 기가 막힌 장면을 한참 보고 있는데 유일하게 다른 차인 SUV 한 대가 도착하더니 아는 얼굴이 내렸다. 친구였다.


반가운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차에 타자마자 나는 친구에게 방금 본 장면을 흥분하며 묘사했다. 친구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기막히지? 나도 처음에 와서 보고 놀랬어. 여기 한국 남자들 그런 식으로 여행 많이 와. 나이 불문하고 그렇게 끼리끼리 와서 몇 박씩 골프 치고 놀면서 밤에는 풀빌라 잡아서 필리핀 여자들 끼고 노는 거야. 진짜 더러워. 나도 앞으로 남편이 친구들하고 골프 여행 간다면 절대 안 보낼 거야. 여긴 그래서 필리핀 여성하고 한국 남성 사이 혼혈 아이도 많아. 아빠 없는 애들이지 뭐.“ 이 대사는 친구의 말 중 육두문자를 거르고 어느 정도 순화해서 전달한 것이다. 나도 욕지기가 목구멍으로 넘어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아이 보기에 부끄러웠다.


이후 시내를 돌아다닐 때도 한국 남성의 팔짱을 끼고 다니는 필리핀 여성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카페에서는 오빠가 뭐 해줄 거라는 다짐과 뭐 사달라고 조르는 여성의 대사도 옆자리에서 너무 많이 들렸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말을 하면 흠칫 놀라서 금방 자리를 뜨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 앉고는 했다. 그들은 왜 우리를 피했을까.


비행기 사고가 난 뒤 사후 처리가 늦어져서 공항 탑승장에 무작정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귀국 비행기에는 필리핀 사람들, 그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고 새댁인 한국 여성도 있어서 남성으로 가득 찼던 필리핀행 비행기보다는 분위기가 덜 어색했다. 골프치러 와서 필리핀 여성들과 성매매를 하던 남성들, 입국할 때는 아이와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피하던 많은 한국 남성들이 사고가 난 뒤에는 나와 아이에게 세상 다정한 사람들이 되어 우리 모녀를 챙겼다. 지금 상황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너도 나도 와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고, 물이랑 샌드위치도 받아다 주었다. 샌드위치는 하도 여러 사람이 챙겨다 주어서 가방에 몇 개씩 들어찰 정도였다. 나쁜 짓을 할 때는 가족 생각이 나서 우리의 눈을 피했을 것이다. 사고가 났을 때는 사고가 난 가족을 돌보듯 우리를 누구보다 먼저 챙겼을 것이다. 죽을 뻔한 사고 뒤 자기 가족들도 누구보다 보고 싶어졌겠지.


부다 그들이 이 사고를 계기로 자기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에게 상처가 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놀다가 버리다시피 한 필리핀 여성돌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소중한 자녀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그들에게 돈을 쓰는 것이 그들을 돕는 길이라고 얘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다른 길은 얼마든지 존재하지 않는가. 사고 뒤 세상 누구보다 우리에게 다정했던 그들의 마음이 어느 누구에게도 떳떳한, 배려하는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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